TV조선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최종 순위 10위를 기록한 김수찬. 그는 올해로 데뷔 9년 차의 농익은 프로 트로트 가수다. 일찌감치 그의 진가를 알아본 이는 바로 트로트의 대부 남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인천 청소년 가요제>, KBS1 <전국노래자랑>, SBS <내가 진짜 스타> 등을 휩쓸며 '리틀 남진'으로 불리던 그에게 남진이 먼저 연락을 해왔던 것. 이후 그는 남진의 도움으로 크고 작은 무대를 경험하며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배움을 얻었다. 데뷔조차 안 한, 히트곡 하나 없는 아마추어 가수에겐 감히 꿈 같은 이 스토리가 바로 김수찬의 데뷔 스토리다. 그렇게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으로 트로트계에 뛰어든 그에게 쏟아지는 지금의 관심은 어쩌면 당연한 일. <미스터트롯>에서 보여준 독보적인 끼와 재치, 주현미의 눈물을 쏙 빼놓은 주옥같은 성대모사는 대중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뜨겁게, 혹은 차갑게 8년간 수도 없이 온도 차를 경험했다는 그의 인생에도 드디어 화창한 봄이 온 것이다.
듣던 대로 '끼수찬'이네요.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임하려 해요. 아무리 많은 걸 갈고닦아도 당당하게 뽐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오늘 화보 촬영을 오면서도 많이 긴장했는데, 사진이 잘 나와서 다행이에요. 제가 중간이 없는 성격이라 극단적인 포즈나 표정이 많았을 텐데, 적절히 수위를 조절해주신 것도 감사하고요.(웃음)
<미스터트롯>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많이 바빠졌죠.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도 훨씬 많아졌고요. 출연 전에는 이렇게 화보 촬영이나 인터뷰를 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요즘은 절 보고 싶어 하는 곳이 많아져 행복해요. 사실 방송을 통해 이토록 큰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안일했죠. 전 현역으로서 계속 트로트 가수로 활동을 해왔으니, 오디션 프로그램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점점 촬영 날이 다가오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고요. 결정적으로 제 무대가 사라질까봐 출연을 결심했어요. <미스터트롯>이 대박 나 '내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들면 어쩌지'라는 고민 때문에요.
출연하길 잘한 것 같나요?
과정과 결과는 하나라지만 저는 충분히 만족해요. 10위를 한 것도 크게 개의치 않고 많은 사람에게 제 매력을 다양하게 어필했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해요. 처음부터 제 목표는 1등이 아니었거든요. 다채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였어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뷔페 같은 매력을 보여주자'랄까요. 뷔페엔 맛있는 음식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열심히 여러 메뉴를 준비해도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고, 아닌 음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맛이 떨어지는 음식을 올리는 건 제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과제고요.
참가자 중 친분 있는 동료가 많았죠?
(장)민호 형이나 영탁이 형 그리고 (양)지원이 외에는 거의 초면이었어요. 촬영장에 가서 새롭게 깨달았죠. 우리나라에 이렇게 노래 잘하는 남자 트로트 가수가 많구나 하고요. 그들의 무대를 보고, 또 팀 미션을 같이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느꼈어요. 가장 나답게 가야겠다고요. 제가 좋아하고 또 잘하고,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무대를 보여드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어요.
임영웅과의 일대일 매치가 인상적이었어요.
요즘 어딜 가나 영웅이 형과의 대결에 대해 물으세요. 영웅이 형을 상대로 300:0으로 졌는데, 그 당시 기분이 어땠냐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쉬움보다는 후련했어요. 그렇게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랑 두 번 다시 없을 멋진 무대를 꾸몄는데 어떤 아쉬움이 남겠어요. 저는 무조건 이기자는 생각보다 또 한 번 멋진 무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대결에 임했기 때문에 결과 역시 겸허히 받아들였어요.
울지도 않았고요.
원래는 눈물이 굉장히 많은 편이에요. 어렸을 땐 울보였어요. 엄마 말씀에 따르면 아기 때는 12시부터 6시까지 울었대요. 그냥 응애응애 하며 아기처럼 운 게 아니고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자지러지면서요. 오죽했으면 성당 다니시는 저희 할머니가 제게 성수를 뿌리셨겠어요. 그래서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데, 좀 크면서 저 혼자 다짐을 했죠. 방송이나 많은 사람 앞에서 울지 말자고요. 제 눈물을 보는 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어서요. 근데 여전히 혼자 있을 땐 잘 울어요. 심지어 (홍)잠언이를 보고도 울어요. 잠언이가 울면 이상하게 같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어쩔 수 없나 봐요.(웃음)
10위, 만족해요?
만족해요. 그저 감사하죠. 이미 결과가 나온 마당에 미련이나 후회는 가지지 않으려고요. 로또를 왜 사나요? 혹시나 하는 설렘과 기대 때문에 사는 거잖아요. 그러다 당첨되면 좋은 거고, 안 돼도 어쩔 수 없는 거고요.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그걸로 만족해요.
벌써 9년 차 가수예요.
중학교 2~3학년 때쯤 우연히 남진 선생님의 무대를 보게 됐어요. 너무 멋있어서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며 노래를 시작했죠.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많은 사람 앞에서 제대로 노래를 할 일이 생겼어요. 담임선생님의 결혼식이었는데 제가 축가로 남진 선생님의 <둥지>를 불렀죠. 이후 절 눈여겨보신 교장선생님의 추천으로 <인천 청소년 가요제>에 출전했고 대상을 받았어요. 또 KBS1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SBS 추석 특집 프로그램 <내가 진짜 스타>에서 1등을 했고요. 그러다 남진 선생님께 연락을 받았는데 이 모든 일이 고등학교 1학년, 그 1년 동안 이뤄진 일들이에요. 3월에 축가를 불렀고, 그해 10월에 남진 선생님을 만났으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제게 크고 작은 다양한 무대 경험의 기회를 선사해주셨어요. '리틀 남진'이 거의 없던 시기에 선생님을 따라 하는 절 보고 유독 많이 예뻐해주신 거죠.
트로트에 푹 빠진 이유가 있나요?
좋으니까요. 멋있잖아요. 저는 트로트만 들으면 이상하게 가슴이 마구 뛰어요. 멀리서라도 트로트 멜로디가 들리면 긴장되고 떨릴 만큼요. 그 정도로 트로트를 사랑한다는 거겠죠? 저는 어릴 때부터 트로트를 올드하거나 비주류의 장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게는 절 가장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최고의 장르였으니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주류의 음악이었던 거죠.
요즘, 말 그대로 '트로트 열풍'입니다.
트로트는 끊임없이 지속될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이렇게 큰 인기를 얻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제가 감히 평가하자면 <미스터트롯> 이후 트로트에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부르는 음악, 퇴보된 장르, 후퇴된 문화라는 틀에 박힌 편견을 <미스터트롯>이 깨줬다고요. 개인적으로도 감사하고, 또 한 사람의 트로트인으로서도 감사한 프로그램이에요.
8년간 슬럼프는 없었는지 궁금해요.
떨어질 곳이 없는데 슬럼프가 어딨겠어요.(웃음) 제 별명이 라이징 스타예요. 8년째 라이징 스타요.
한 날은 라디오에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안녕하세요. 8년째 라이징 스타, 트로트 가수 김수찬입니다"라고 소개했어요. "계속 떠오르다 보니 이제 대기권을 벗어날 정도"라고.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한번 추진력을 받아 우주로 나가면 영원히 쭉 떠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떠오르고 있는 지금, 제가 더 잘해야겠죠.
트로트에 푹 빠진 이유요? 좋으니까요. 멋있잖아요. 트로트만 들으면 가슴이 마구 뛰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트로트를 올드하거나 비주류의 장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게는, 절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주류의 음악이었던 거죠.
인간 김수찬은 어떤 사람인가요?
일할 땐 일하고, 놀 때는 또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장소는 싫어요. 몇몇의 좋은 사람들과 만나 술 한잔 기울이는 시간을 사랑하죠. 그래서 집에 '술장고'를 마련했어요.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요. 일명 '수찬바'에 오는 이들을 위한 유니폼도 준비해뒀어요. 흔히 찜질복이라 부르는 찜질방 옷인데 술 마시면 배가 나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105 사이즈까지 야무지게 마련해놓았답니다.(웃음)
주량이 센가 봐요.
체력은 부족한데 정신력으로 버티는 스타일이에요. 주량은 소주 3~4병이고요. 술버릇은 별로 없어요. 말이 어눌해지는 정도? 그리고 기분이 업돼서 잘 놀아요.
실제로도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상대방을 재미있게 해주는 게 좋아요. 상대가 웃으면 저도 좋으니까요. <미스터트롯> 신동부 동생들은 저를 '츤데레'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아닌 척하면서 다 챙겨주는 스타일이라나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선물하는 것도 좋아해요. 사실 이기적인 생각일지 몰라도 제가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이유는 주는 내가 더 행복해서예요. 저도 무명일 때나 어려울 때 바라는 것 없이 도와주고 잘해준 사람들이 워낙 많았거든요. 잔고가 가벼워지더라도 지금의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생각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최대한 베풀고 싶어요.
연애 스타일은요?
데뷔하고 나서 정식으로 교제한 사람은 없어요. 정말이에요.(웃음) 물론 기회는 여러 번 있었죠. 썸을 타기도 했고요. 그런데 굳이 누군가가 절실하다거나, 외롭지는 않더라고요. 지금 제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 요즘은 팬들이랑 연애 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새벽, 팬들이 팬카페에 올려준 편지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 KBS2 <아침마당>에서 절 '비혼주의 대표'로 부르셨던 걸까요?(웃음)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뭐 굳이 피할 이유는 없지만 아직까지 전 지금의 제 생활이 좋아요.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누구겠어요? 당연히 남진 선생님이죠.(웃음) 그 누가 묻건, 누구 앞에서건 남진 선생님이라고 대답할 거예요. 제겐 교과서 같은 분이고, 절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은인이니까요. 얼마 전에 선생님이 출연 중이신 SBS <트롯신이 떴다>를 보는데 저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더라고요. 선생님께서 뭘 하신 것도 아니에요. 그냥 묵묵히 앉아 계신 장면이었는데 괜히 울컥해서 혼났어요. 제게 선생님은 그런 분이세요. 생각만 해도, 바라만 봐도 수많은 감정이 교차해요.
예쁨을 많이 받았나 봐요.
의외로 나훈아 선생님을 따라 하는 친구는 많은데 남진 선생님의 노래를 따라 하는 가수는 드물어요. 남진 선생님 노래가 불러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되게 어렵거든요. 저도 선생님의 무대를 수없이 보고 들으며 연습한 거지만, 리드미컬한 가창력은 물론 제스처나 특유의 무대 매너까지 흉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 부분에서 선생님께서 절 예쁘게 봐주시지 않았을까요. 사실 제 능력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주신 거지만요.
기억에 남는 조언이 있나요?
나이가 어리다 보니 트로트를 해석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희로애락을 모두 담는 장르인데 제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까요. 그런 고민을 하는데 남진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노래도 연기다. 배우가 직접 사람을 죽여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지 않느냐. 진한 사랑 없이도, 강렬한 헤어짐 없이도 충분히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터치할 수 있다"고요. 제겐 정말 힘이 된 명언이라 항상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해요.
부르는 사람도 행복하고 듣는 사람도 행복한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사실 이 꿈에는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오랜 시간 사랑받는, 롱런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전 정말 트로트가 좋고, 트로트가 있어 행복해요. 제가 행복해서 하는 음악이니만큼 듣는 사람 모두 이 행복함을 느끼길 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