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둘러싼 공기는 편안했다. 진솔하고 담백했으며 여전히 팔딱팔딱 뜨거운 청춘의 온도가 느껴졌다. 질문을 던지면 곰곰이 생각했고, 자신만의 언어로 거짓 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본디 그런 사람이었다.
올해 연기 10년 차가 된 그는 소년처럼 맑았다. 웃음과 진지함이 수차례 교차한 인터뷰였다. 연기관부터 열애설까지 속 시원히 털어놨다. 자, 지금부터 '로이방 타임'이다.
연기 10년, 이제 물러설 곳 없다
성훈이 스크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성훈의 두 번째 영화 출연작인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사랑의 해답을 알려주는 기묘한 책을 만난 후 마법처럼 뒤바뀌기 시작한 두 청춘 남녀의 특별한 사랑을 그린 판타지 로맨스 영화다. 3년 전에 촬영됐고 이제야 빛을 보는 작품이다. 김하늘과 유지태 주연의 영화 <동감>의 김정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성훈과 김소은이 출연했다. 성훈은 사랑에 서툰 까칠한 카페 사장 '승재' 역을 맡았다.
<사랑하고 있습니까>를 선택한 이유는요?
대본이 가볍게 잘 넘어갔어요. 휴식같이 볼 수 있는 편안한 작품이라 좋았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로맨스에 특화돼 있는 분이세요. 여러 가지 이유로 끌렸어요. 2년 반 전에 촬영한 작품이라 걱정도 되고 설렘도 있어요. 사실 걱정되는 부분이 컸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괜찮은 것 같아요.(웃음)
두 번째 영화예요. 항간에 떠도는 얘기로는 너무 주연만 고집한다는데 맞나요?
전혀요! 저희 대표님 마인드가 좀 구식이에요.(웃음) 저는 작은 역할도 상관없어요. 함께하는 배우들의 인지도나 플랫폼도 크게 안 따져요. 단지 작품을 찍으면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출연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대표님과 진지하게 상의를 한번 해봐야겠어요.(웃음)
오랫동안 예능을 하고 있어요. 어때요?
예능 프로그램 속의 이미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징징거린다고 변하는 건 없어요. 받아들여야죠. 물론 드라마나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예능 속의 제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연기하는 건 재미있나요?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죠. 현장에서 피드백이 좋으면 날아갈 듯이 기쁘고, 뭘 해도 느낌이 살지 않으면 지옥 같죠. 항상 행복하거나 항상 나쁘지만은 않기에, 그래서 연기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실 줄곧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이 갈증을 시원하게 한번 터뜨려서 풀어봐야지 하는 생각도 있고요. 속된 말로 '또라이'라는 말을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연기한 지 10년이 됐으니 핑계 댈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어요. 정면 승부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그 평가에 대해선 제가 책임을 져야죠.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도 지금의 성훈 씨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저도 기회가 되면 하고 싶어요. 배우들과 함께 연습하는 한두 달도 제게는 의미가 있을 거예요. 무대에 서는 느낌도 느껴보고 싶고요. 연기적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어요. 코미디 쪽을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게 힘든 일이고 그래서 더 재미있을 것 같고요.
함께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나 연출가가 있나요?
첫 영화 <돌아와요 부산항애(愛)>(2017)를 함께했던 배우 조한선 씨와 다시 호흡을 맞추고 싶어요. 당시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호흡을 맞추지 못했거든요. 늘 아쉬움이 남아 있어요. 그 외에도 너무 많죠. 조진웅 선배님도 계시고…. 한 공간에서 한 신 한 신 같이 찍는다는 생각만 해도 설렙니다. 아, 개인적으로 아이유 씨 팬이에요. 연기와 노래, 둘 다 잘하는 만능이잖아요. 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나이와는 별개로 연륜과 내공까지 보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예능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평소 생각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
엄청요. 그래서 일상이 피곤해요. 몸이 힘든데도 머리가 안 비워지니 불면증도 있고요. 스스로에게 박한 편이에요.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저를 객관화하죠. 제 직업이 대중성이 중요한 일이잖아요. 아무리 혼자 잘나봤자 대중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그래서 연기가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죠.
힘들 때도 흔들리지 않고 잘 버티며 살았어요. 인생 자체를 놓고 보면 스스로 칭찬해줘도 될 만큼 성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해요. 이제 배우로서 인정받으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TV를 돌리다 보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어요. 얼굴은 잘 모르는데 연기가 들어오는 사람요. 그럴 때마다 더 긴장하게 되고, 좋은 자극제가 돼요.
스스로에게 칭찬을 좀 해주세요.
그게 잘 안 돼요. 그래서인지 불면증이 생겼어요. 다크서클이 심해져 메이크업해주는 친구가 병원 가서 시술 좀 받으라고 권해요. 일단 자는 시간이 들쑥날쑥해요. 이틀 정도 잠을 못 이루다가 하루 기절해 잘 때도 있어요. 잠이 안 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요.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다 보니 예민해지죠. 저도 알고 보면 열심히 살아온 사람입니다.(웃음) 한데도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것, 하나 생각해봐요.
힘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잘 버텼어요. 인생 자체를 놓고 보면 스스로 칭찬해줘도 될 만큼 성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해요. 이제 배우로서 인정받으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이병헌 선배님 보면 언제나 소름 돋는 연기를 보여주잖아요. 좋은 자극제예요. 그러면서 배우로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니까 또 생각이 많아지죠. TV를 돌리다 보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어요. 얼굴은 잘 모르는데 연기가 들어오는 사람요. 그럴 때마다 더 긴장하게 되고, 칼이 더 갈리고, 이 칼을 빨리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배우로서 갈 길이 멉니다.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 있나요?
임수향 씨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SBS <신기생뎐>(2011)이라는 작품요. 사실
그 전에는 신인이라 현장에서 기가 많이 죽어 있었거든요. 동등한 입장에서 감독님들과 상의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무척 좋았어요. 그 작품을 하면서 현장에서 임하는 자세도 바뀌었고요. 제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최종 꿈은 뭔가요?
편하고 싶어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전에 품었던 욕심이나 꿈들이 크게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그저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안하게, 소박하게,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어요. 아,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여건이 된다면 뉴질랜드에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제가 별 보는 걸 좋아해요. 살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별이 <정글의 법칙> 촬영 때 뉴질랜드에서 본 별이에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나이 먹으니 서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개봉하는 영화가 사랑 이야기예요. 어떤 연애를 하고 싶나요?
성의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함께 게임하는 데이트를 하고 싶어요. 제가 게임을 워낙 좋아해요. 아, 저는 예전부터 귀여운 여자가 이상형이에요. 저와 반대되는 성향에 끌리는 것 같아요. 대화가 통하고 저를 이해해주는 착한 여자에게 끌려요.
그래서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주어진 일에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답니다.(웃음) 사실 연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여자를 힘들게 하는 타입이에요. 그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 뒤로는 누군가를 옆에 두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오늘도 반려견 '양희'와 함께 인터뷰 장소에 왔어요. 자주 함께 다니나요?
여건이 되면 현장에 데리고 나와요. 상처가 있는 아이라 제가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제는 양희도 살 만해졌어요.(웃음) 처음에는 내숭을 떨었나 봐요. 요즘 보면 성격도 까칠하고 낯도 가려요. 주인을 닮는다고 하죠? 어릴 때 딱 제가 그랬거든요. 밥 먹고 똥도 얼마나 많이 싸는데요.(웃음) 요즘은 너무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포털 사이트에 '성훈'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박나래'가 떠요.(웃음) 열애설도 있었죠?
연말 시상식 때 나래를 안아준 것 때문에 열애설이 불거진 것 같은데, 그냥 말로 하는 게 쑥스럽잖아요. 제 표현법이에요. 시언이 형이나 기안84였어도 그렇게 안아줬을 거예요. 괜히 나래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어쨌든, 정말 아닙니다. 좋은 친구고 아끼는 동생이지만 아닌 건 아닌 겁니다. 하하.
영화에서 바리스타로 나오는데, 평소 커피를 좋아하나요?
사실 커피를 안 마셨어요. 써서 안 마셨어요. 근데 아침에 운동할 때 관장님이 한 번씩 주더라고요. 지금도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왜 커피를 마시는지는 알겠어요. 카페인이 들어오면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요즘엔 저도 꽤 많이 마셔요.
영어도 계속 배우나요?
해외에 나가 일하는 경우가 많으니 간단한 건 통역 없이 소통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열심히 배웠죠. 그러다가 잠시 공부를 스톱했는데, 다시 '아이 엠 어 보이'로 돌아간 상태입니다.(웃음)
그가 해맑게 웃었다. 그 웃음 안에 숨겨진 그의 수많은 고민과 생각이 스친다. 성훈은 그렇게 오늘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