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조각이 만들어낸 K5 장총과 수류탄, 우아하게 빚어낸 파스텔 톤의 항아리들, 역시 거울 조각으로 완성한 상징적인 ‘조던’ 농구화, 그리고 강렬한 슬로건을 담은 거울 액자들. 올해 많은 주목을 받았던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소장품>전에 작품을 올린 젊은 예술가 유지인 작가의 작업실은 낯설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곳곳에 무심한 듯 놓여 있다.
하나로 트여 있는 이 공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작가의 작업대가 놓여 있다. 두껍고 무거운 상판이 놓인 넓은 작업대는 유지인 작가의 거울 공예 작품이 탄생하는 공간이다.
“작업 도구 외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 공간이라 다소 민망하다”던 그녀의 수줍은 미소가 무색하게 공간의 모든 벽면과 작업대 주위는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작업에 임하는지를 알려주는 무언의 증거가 가득했다. 작업대 바로 옆의 유리를 갈아내는 폴리싱 기계 위에 그녀가 직접 설치한 물병에는 물이 조금씩 떨어지게 돼 있다.
“유리를 갈아내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폐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유리 가루가 미세하게 흩어지기 때문에 나름의 DIY로 폴리싱 작업대를 습식으로 바꾼 거죠. 물병을 하나 설치해 그 부분에 물이 조금씩 떨어지도록 했어요.”
도자와 금속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지만, 최근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컬래버레이션이 이뤄지는 것은 거울 예술이다. 날카로운 물성을 지닌 거울이라는 소재를 아찔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해낸 그녀의 작품은 다양한 형태로 메시지를 전한다. 거울 조각 오브제는 물론, 거울을 통해 여성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향해 슬로건을 던지는 것으로서 예술가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개인적이면서도 사회로 연결되는 이슈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한국에서 여성이자 작가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해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죠. 결국 그 문제는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 대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자신을 설치미술가로 소개하고 싶다는 그녀는 약 5~6년간 집중해온 거울 공예 작업 외에도 다양한 물성을 지닌 소재를 이용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거울 작업은 대학 시절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배우던 과정에서 착안한 것이다.
거울 공예는 현재 그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고 있지만, 고충이 적지 않은 작업이다. 손을 베는 것은 예삿일이다. 자주 다치는 작업이다 보니 긴장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작업실에서는 일 이외의 휴식이나 여가 시간을 갖지 않는다.
덕분에 작업실에서의 일과는 굉장히 단조롭다. 오전에 도착하면 커피를 마시며 환기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는데, 작업에 들어가기 전 치르는 그녀만의 독특한 의식이 있다. 좋아하는 ‘팔로산토’ 스틱을 반드시 하나씩 피우는 것. 약 30~40초의 짧은 시간 동안 스틱이 타 들어가는 향을 맡으며 잠시 휴식한 뒤에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 일종의 개인적인 의식 같은 시간이다.
전시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일하는 기간에는 점심을 먹는 15~20분을 제외하고는 내내 작업대에서 일만 한다고. 책을 읽거나 문서 작업을 하는 법도 없다. 향을 피우는 시간과 짧은 점심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작업에 쏟고, 귀가해서야 휴식을 취한다고.
“작업실 안이 어수선하긴 하지만 작업대 앞에 서면 놀랍도록 집중이 잘돼요. 남들이 보았을 때는 그저 어수선하고 어지럽혀 있는 공간이지만 사실 이 안에는 저만의 질서와 체계가 있어요. 나름 최소한의 동선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배치돼 있죠. 이 정돈되지 않고 휑한 작업실 안은 제겐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섬과 같은 곳이에요.”
날카로운 거울 조각을 부드럽게 이어 붙여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 유지인에게 작업실이란 그녀만의 창작 세계를 품은 일종의 섬이자, 치열해서 더 아름다운 한 예술가의 투쟁의 현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