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화산1914문화창의산업원구 (華山1914文化創意産業園區)’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관광지로 유명한 융캉제 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곳은 도심 속 녹지 공간과 함께 각종 문화 예술 공연이 열리고 소품 숍, 독립 영화관,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있어 타이베이의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낡은 창고 건물을 초록의 넝쿨식물이 감싸 안아 대만 특유의 빈티지한 매력을 뽐내는 이곳은 원래 과일주를 만들던 양조장이었다. 현재 이곳은 신진 작가들의 실험 정신 가득한 전시가 열리고 아이디어 넘치는 소품 숍, 각종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있으며 날마다 거리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담배공장을 활용해 지은 ‘송산문창원구(松山文創園區)’는 디자인 시티로 잘 알려진 타이베이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예전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조성된 이곳은 디자인과 관련한 각종 전시 및 엑스포가 상시 열린다. 타이완 디자인 박물관을 비롯해 세계적인 권위의 디자인 회사인 iF 디자인 아시아, 타이베이 문화재단 등도 이곳에 있어 크리에이티브 허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만의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해서 모두 예술과 관련된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이베이 101을 비롯한 고층 건물이 즐비한 신의(信義) 지구에 위치한 ‘쓰쓰난춘(四四南村)’은 뉴트로 감성을 품고 있어 인생샷을 찍기에 좋은 곳이다.
본래 1949년 이후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군인들과 그 가족이 살던 이곳은 한때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타이베이 시 정부와 주민들의 노력으로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해 관광지 및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낡은 촌락 안에는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 소품을 그대로 간직한 갤러리와 레트로 감성의 카페, 레스토랑, 리빙 소품 숍 등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말에는 시민들이 여는 ‘심플마켓’이라는 이름의 벼룩시장도 열린다.
타이베이 곳곳에 위치한 이런 복합 문화 공간은 개인이나 기업이 아닌, 대만 정부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대만 정부는 지난 2002년부터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고적들을 대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징이 있다면 모두 없애고 새로 짓는 ‘재건축’이 아닌 ‘재생’이라는 점이다.
타이베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은 도시의 이런 변화가 무척 반갑다고 말한다. 정부의 다양한 시도가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서다. 이와 같은 대만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타이베이를 비롯해 대만 제2의 도시인 가오슝, 타이중, 타이난으로 범위를 넓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대만의 도시들은 앞으로 또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
글쓴이 유미지
<코스모폴리탄> <M25> 등의 매거진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글을 썼다. 대만에서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삶의 터전을 옮긴 뒤, 이곳저곳에 글을 기고하며 디지털 노매드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