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온라인상에 공개하고 목표금액과 모금 기간을 정하여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 받는 크라우드 펀딩. 미국 '인디고고' 회사에서 처음 시작한 이 크라우드 펀딩은 국내에도 착륙하여 와디즈,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오픈했다. 크라우드 펀딩의 열풍은 비단 IT나 기술분야, 전자제품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자본이 없어 빛을 보지 못했던 독립영화나 서브컬처를 다룬 예술 작품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세상 밖에 나오고 있다.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며 다방면의 창작자와 이를 후원하는 후원자들이 만나 새로운 문화 예술의 방향을 만들어낸다. 2020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작지만 큰 변화들이다.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한 투개월의 김예림
어떤 조직이나 시스템 속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의 예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그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다. 창작자 고유의 신념과 취향을 지키며 세상 밖으로 나오는 예술작품은 예상외로 큰 인기를 끌기도 하고 새로운 예술적 방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추세 탓일까. 지난해 우리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슈퍼스타K 출신 투개월의 김예림이다. 매력적인 보이스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김예림. 그녀가 새로운 음반 작업을 하며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한 것은 오래전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그녀의 이미지로는 상당히 이색적인 일이었다. 여섯 곡의 신곡을 수록한 EP를 발매하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해 펀딩을 시작한 그녀는 크라우드 펀딩을 선택한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 방향'을 꼽았다. 인기가 있어야 하고 대중성을 갖춰야 하는 주변의 요구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는 것. 그 목적 하나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외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 김예림만의 정체성, '오리엔탈리즘'을 음악에 담았고, 그녀의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완성하고자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했다. 자신이 한 새로운 시도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을 또 다른 방식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더 강인하고 단단한 자신만의 예술을 들고 세상 앞에 나섰다.
#26억의 후원액을 달성한 달빛천사
지난해 가을, 무려 26억원의 후원액을 모으며 크라우드 펀딩 계에 큰 이슈를 몰고 온 사람이 있었다. 바로 2004년 방영된 달빛천사의 주인공 루나역을 맡았던 성우 이용신이다. 지난해 이화여대 대학 축제에서 달빛천사의 삽입곡을 부르며 많은 이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그녀가 달빛천사 OST 앨범을 정식 발매하기 위해 본격적인 펀딩에 나선 것이다. 대학 축제 현장에서 그녀가 몰고 온 OST의 바람은 상당히 강력했다. 현장에 있었던 이대생들의 소름 돋는 떼창은 물론이거니와 그녀의 라이브 직캠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계속해서 조회수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달빛천사 OST 음반 발매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은 3일 만에 10억이 돌파했다.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추억의 힘이 얼마나 큰지 말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한 시대를 공유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자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돈을 기꺼이 투자할만한 최고의 상품 가치를 자랑한다.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음악이나 소품뿐만 아니라 필름사진, 오래된 레코드판과 같은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도 펀딩 사이트의 꾸준한 인기 프로젝트 중 하나다. 같은 시대를 공존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시대 감성이 비로소 크라우드 펀딩을 만나 빛을 밝혔다.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전통’도 인기상품
매번 신선한 것, 독창적인 것만이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 알지 못했던 전통문화와 유산을 다시금 꺼내 놓음으로써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젝트도 상당하다. 무려 600%의 모금 금액을 달성한 김서울 작가의 <MUSEUM SEOUL>이 그 증거이다. 이번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세상에 내놓은 <MUSEUM SEOUL>은 조금은 뒤틀리고 이상하지만 기묘하게 관심을 끄는 한국 문화유산 기록 사진을 모으고 분류하며 엮은 콘텐츠이다. <MUSEUM SEOUL>을 통해 김서울 작가는 6주 동안 6회의 콘텐츠가 연재하였으며 다소 접근하기 어려운 박물관과 유물, 전통 콘텐츠에 어려움 없이 다가서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따분할 거라고 생각했던 주제의 콘텐츠가 매 프로젝트마다 높은 인기를 끌며 성황리에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의미가 있는 이유는 또 있다. 기존의 것을 탈피한 구매방식과 주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6주 동안 1주에 1번씩 6회의 콘텐츠 연재 상품을 팔고 따분하고 교과서적인 전통을 다시 재미있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통해 우리는 선입견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를 이뤄내는 문화예술의 힘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