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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무혐의 그 후, 김흥국의 심경 고백

김흥국이 2018년 불거진 ‘미투’ 논란 후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On January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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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서지연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촉발된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되던 가운데 그 불씨가 김흥국에게도 튀었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한 여성이 김흥국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김흥국은 이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고, 사람들의 시선이 그랬다. 따가운 눈총 속에 정상적인 방송 활동이 불가능해졌고, 김흥국은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그 사이 모든 의혹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미투 연예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김흥국에겐 다소 억울한 논란이었다.

이후 유튜브 채널 <김흥국 TV>를 개설하고 대중과 만나고 있는 김흥국을 <우먼센스> 카메라 앞으로 불렀다. 인상적인 건 그의 표정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거였다. 논란 속에서 활동을 중단한 방송인답지 않은 씩씩한 에너지가 풍겼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간의 한을 토해내듯 매사에 열심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그가 입을 열었다. "카메라가 그리웠습니다." 진심이 느껴졌다.


오랜만입니다.
섭외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작년에 앨범을 냈지만 이렇다 할 활동은 하지 못했거든요. 성폭행 혐의를 벗으면 다시 활동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녹록지 않더군요. 그 후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앞으로 방송 활동을 못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섭외 연락을 받았으니 놀랄 수밖에요. 이렇게 기회가 주어지니 촬영장에 오는 동안 얼마나 설레었는지 몰라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사건 전에는 방송을 '아주'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힘들면 퇴근해버리는 연예인으로 유명했죠.(웃음) 그런데 본의 아니게 활동을 중단하면서 앞으로는 예전처럼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방송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달라진 거예요.

긍정적인 변화군요.
지난 2년간 쉬면서 틈나는 대로 절에 갔어요. 자연스럽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았죠. 그 끝에 '그동안 너무 많은 걸 누렸다'는 생각에 닿았어요. 데뷔하자마자 '호랑나비'가 대박 났고, 그 후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인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당연하게 여겼다고 할까요. 지금은 아닙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오면서 높은 곳에 있을수록 베풀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고,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런 걸 알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네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처음 일이 불거졌을 땐 황당했습니다. 나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의 음해라고 생각했어요. 억울하고 분했지만 결국 내가 자초한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 지인들이 떠나가는 걸 지켜보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인간관계가 많이 정리됐어요. 사람을 좋아하는 저로선 아주 큰 변화입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마신 술만 해도 족히 한 트럭은 넘을 텐데 위기에 처해보니 그런 것이 다 부질없더군요. 힘들 때 "한잔하자"고 연락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제가 '연예인 김흥국'이니까 친했던 것뿐이라는 사실이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고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그래, 버리자' '그 인연에 미련 갖지 말자'고 생각했죠. 그날로 휴대폰에 있던 수많은 번호를 지워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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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 지내던 동료들, 지인들이 떠나가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한잔하자'고 연락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게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고 힘들었습니다. 마음고생 끝에 휴대폰에 있던 수많은 번호를 지웠어요. 이 일을 계기로 인간관계가 정리된 셈이죠.

원망스럽나요?
그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아요. 잘못 살아온 자신을 탓하게 됐죠. 사람들에게 기대고, 믿고, 의지하고, 웃고 떠들던 그 시간이 아쉽기는 하지만 괜찮습니다. 사사로운 인연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나를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그럼에도 가장 고마웠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사건 후에 새로 알게 된 지인들이 가장 고마워요. 저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도 제 일에 공감해주고, 함께 울어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자기 일처럼 고민해준 사람들이 있어요. 혹시나 제가 어떻게 될까 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시간을 내달라"고 신신당부했던 동생들에게 가장 고맙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이에요. 저와 잘 어울리는 브랜드를 론칭하려고요. 주변 지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에 가능했죠. 아직 살 만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가족이 받았을 충격도 상당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오랜 시간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생긴 내공 같은 거였을 겁니다. 아내는 오히려 저보다 더 충격적이었을 거예요. 말 못 할 고통이었을 텐데…. 제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침묵해준, 끝까지 저를 믿고 가정을 지켜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30년을 함께한 부부이기에 가능한 믿음이었을까요?
알다시피 기러기 부부 생활을 오래 했어요. 서로에 대한 신뢰, 가정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었죠. 그 시간들이 우리 부부를 끈끈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굳이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응원할 수 있는 그런 사이랄까요. 일이 다 해결된 후 아내에게 "기다려줘서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아내분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웃으면서 "그 말이 진짜일까?"라고 하더군요. 평소에 그런 말을 한 번도 안 들어봐서 그렇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그랬죠. "해병대는 거짓말
못 한다"고요.

평소 어떤 남편인가요?
전에는 이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아내가 힘들지 않게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냈고,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참 많이 부족했었구나 싶어요. 돈만 보내는 남편이었지 가정적이지 못했거든요. 나는 가족을 위해 일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와 자식들 입장에선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아내 혼자 아등바등 아이들 키울 때, 저는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보낸 셈이잖아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환갑이 넘었네요. 앞으론 모든 걸 가족을 위해 하면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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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아내가 더 충격적이었을 거예요. 제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침묵해준, 끝까지 저를 믿고 가정을 지켜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일이 다 해결된 후 아내에게 '기다려줘서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평생 그 빚을 갚으며 살 겁니다.

내일(1월 9일) 딸을 만나러 미국으로 간다고 들었어요.
딸이 올해 대학생이 됐어요. 그동안 엄마와 함께 지내다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독립했고,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왔죠. 타지에서 홀로 있는 딸이 그립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둥이 딸이거든요. 이번 일이 있었을 때도 딸에게 "아빠는 꼭 다시 재기할 거니까 흔들리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라"고 말했어요. 하루라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해왔죠. 잘 커줬어요. 속이 깊은 아이입니다.

아들은 어떤가요?
올해 서른이 됐어요. 저를 닮아 자유분방한 스타일입니다. 그림을 좋아하는데, 아빠로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를 바라죠. 지난 일을 겪으며 아들딸에게 어떤 아빠가 돼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존경하는 아버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를 위해 열심히 산 아버지' 정도의 말은 듣고 싶어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살려고요.

기러기 아빠 생활을 오래 해서일까요. 이혼했다는 루머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부부는 자식을 위해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눈에는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색안경이 조금 불편하기는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기러기 부부 생활을 추천하지는 않아요. 부부는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하죠. 아이들 유학이 고민이라면 부부가 함께 가야 합니다. 이제는 둘이서 손잡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고 싶고, 좋은 거 보러 다니고 싶어요. 무엇보다 지난 시간 동안 가정을 위해 고생만 한 아내가 원하는 걸 하게 해줄 겁니다. 뭘 배우고 싶다고 하면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면 용돈도 아낌없이 줄 겁니다. 아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지할 거예요.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이었던 셈이군요.
아내와 아들딸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힘들 때 아들과 딸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 아이들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아빠인 내가 정신 못 차리면 안 된다고요. 힘들어하고 좌절할 시간이 없었어요. 하루빨리 혐의를 벗고 다시 활동하는 것만이 가족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이었고, 남편으로서의 도리였습니다.

모든 게 무혐의 처분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저와 제 가족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솔직히 미워요.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스토리 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와 제 가족에게도 그 나름의 사연이 있는 것이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뿐입니다. 댓글을 찾아 보는 편은 아니지만 입에 담지도 못할 악플을 보면 속상해요. 무엇보다 저를 미투 범죄자로 첫 보도한 방송사와 해당 기자에게 사과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거잖아요. 정식으로 사과받고 싶어 방법을 알아봤는데 절차가 복잡하더군요. 그러던 중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사과받아 뭐 하겠나' 하는 생각요. 이미 다 끝난 일이고 다시는 연루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지금 가장 절실한 건 뭔가요?
방송 복귀입니다. 카메라가 그립고, 방송이 그립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방송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최근에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어요. 마냥 손 놓고 있기가 힘들어 지인의 도움을 받아 시작했는데 얼마 전에 구독자 수가 9만 명을 넘었습니다. 특별한 콘셉트는 없어요.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다니고, 하고 싶은 걸 하러 다닙니다. 그래도 제 근황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나요.

힘든 세상입니다. 위기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한마디, 부탁드려요.
세상이 끝난 게 아닙니다. 쫄지 마세요. 똑똑하고 현명하게, 그리고 씩씩하게 대응해서 헤쳐나가기 바랍니다. 진실은 통하는 법이니까요.


김흥국을 성폭행범으로 몰았던 여성은 현재 구속 상태다. 김흥국의 말에 따르면 "다 끝났다". 툴툴 털고 일어선 김흥국은 이제 직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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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
이대원
스타일링
전금실, 강지연
2020년 02월호
2020년 02월호
에디터
이예지
사진
이대원
스타일링
전금실, 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