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 평당 1억? 다시 요동치는 집값
정부가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이후 서울 주택 시장의 열기는 어느 정도 식는 듯 보였다. 실제로 매매 거래가 사라졌고 집값도 소폭이지만 32주 연속 하락하며 서울 주택 시장은 안정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택 시장의 에너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수요자들은 규제의 영향을 지켜보며 다시 매수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잠잠하던 에너지는 지난 6월 들어 폭발했다. 상승세로 돌아선 부동산은 최근까지 20주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감정원은 서울 아파트값이 11%, KB국민은행은 20% 오른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 출범 당시 6억원이던 서울 중위권 아파트값은 지난달 8억 7,500만원으로 44%나 뛰었고, 지난 8월 서울 반포의 아크로리버파크는 실거래가가 3.3㎡당 1억원을 찍기도 했다.
마지막 카드 ‘분양가상한제’
정부는 재빨리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이하 ‘상한제’)라는 강력한 규제를 꺼내 들었다. 부동산 정책의 마지막 카드인 셈이다. 상한제는 택지비와 건축비 이하로 분양가를 책정하도록 한 제도로 민간에서 정해지는 주택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이다. 우선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마용성(마포·용산·성동), 강동, 영등포의 27개 동을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번 규제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건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다. 서울의 새 아파트 공급은 대부분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 정비 사업을 통해 이뤄지는데, 초기 단계에 있는 지역은 사실상 사업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철거 단계에 있지만 6개월 안에 입주자 모집공고를 신청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단지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상한제 시행 후 6개월 안에 입주자 모집공고를 신청할 수 있는 사업장은 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사업 속도를 올리고 있다.
눈여겨볼 만한 건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대부분 이번 정부 임기 이후 일반 분양이 나올 만한 곳이라 당장 분양가가 시장에 반영되는 지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남구와 송파구, 영등포구, 용산구 일대가 그런 곳이다. 정부가 이들을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한 건 주택 시장에 ‘불똥’이 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건설사가 재건축 아파트를 임대주택으로 통매각하는 시도를 하면 투자 심리를 자극해 일반 분양가가 폭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 시장 변화 시나리오 3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가 책정되면 이에 맞춰 주변 구축 아파트 시세가 오르고, 또다시 오른 가격을 기준으로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정해지는 일이 반복되며 올랐다. 이를 막기 위해 상한제가 시행됐지만 집값 상승을 제지하는 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재개발·재건축은 대형 면적 비중을 높이고, 소형 면적 비중을 최소화해 일반 분양을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 분양을 통해 기대하는 수익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토지 시세를 통해 얻는 개발이익에 집중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공급 물량 감소에 대한 우려로 주택 시장을 들썩거리게 할 우려를 낳는다.
한편 청약 시장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로또’가 된 서울 분양 아파트를 노리는 수요자가 몰리는 것. 일례로 11월 11일 1순위 해당 지역 청약이 진행된 서울 강남구 ‘르엘 대치’는 31가구 모집에 6,575명이 몰려 212.1대 1의 이례적인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LTV)이 40%로 막혀 있어 수억원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부자들이 이 물량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가진 사람만 또 갖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의미다. ‘풍선 효과’ 우려도 있다.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경기도 과천이나 분당, 광명 등의 집값이 들썩일 수 있다.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부산 같은 지방에 투자 수요가 옮겨갈 우려도 있다. 최근 부산은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하루 만에 호가가 1억원씩 오르는 단지도 나오고 있다.
서울 집값, 떨어질까?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 서울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올랐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3억원, 강남은 6억원가량 폭등해 역대 정부 중 최고를 기록했다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경기 부양책으로 2014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집값에 부동산 규제로 제재를 건 것이라고 반박한다. 또 이번에는 선별적으로 상한제를 시행하고, 사업성 확보가 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공급 위축으로 인한 집값 상승 우려가 크지 않다고 본다. 그뿐만 아니라 집값이 요동칠 기미가 보이면 즉각적으로 추가 규제를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긴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단기적 효과 후 곧 집값이 다시 튀어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인 곳 ▲아직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상한제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은 곳 ▲신축급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1월 6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 엘스’ 전용 59.96㎡는 16억 8,000만원에 매매돼 올해 최고가를 달성했다. 잠실동의 경우 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이지만 수요자가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곳이다. 이 아파트 거래는 9월 21일 한 달 보름여 만에 이뤄진 것으로, 직전보다 1억원 이상 올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상한제 실시로 기존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는 건 한계가 있다. 최근 준공 5년 이하 새 아파트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상한제 적용에 따른 공급 축소 우려가 과도하게 선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라고 말했다.
과거 분양가상한제 왜 실패했나?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참여정부는 2007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경기와 상관없이 주택 공급 물량이 널뛰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건설사들이 받은 인허가만 55만 6,000가구. 전년보다 18.4% 증가한 수였다. 이 때문에 주택 가격이 하락했는데도 분양 물량은 급증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2008년 민간 사업자들은 공급에 나서지 않았다. 집값은 단기간 안정됐지만 2014년 말 상한제가 폐지되면서 누른 만큼 튀어오르는 ‘용수철 효과’가 발생했다. 2015년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33% 넘게 올랐다. 반면, 상한제를 시행한 이듬해인 2008년도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3.2% 오르면서 전년 상승률(3.57%)과 큰 차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