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책방
어떤 일도 너무 늦지 않았으므로
일본 작가 이바라기 노리코는 50살 즈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젊을 때부터 배우고 싶었어요. 언제부터? 글쎄요, 패전 직후 무렵인가. 그렇지만 시간도 나지 않고, 어디로 가야 배울 수 있는지도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쉰이 되어버렸죠. 무시무시할 정도로 만학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공부는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았다. 한글을 배우면서 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남편의 죽음 이후 슬픔의 밑바닥에서 떠오르기 위해 공부한 이 언어로, 수많은 아름다운 글을 만나게 된다. 한글의 매력을 <아사히신문>에 연재해 <한글로의 여행>이라는 책을 내고, 한국의 명시들을 번역해 <한국현대시선>을 출간했으며 그 책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바라기는 국가권력 등의 권위를 싫어해 문학상은 족족 거절해왔는데, 이 책으로 받은 문학상은 기쁘게 수락했다고 한다. 자신을 위한 상이 아니라 '한국 시인들을 위한 상'이라며. 이바라기 노리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윤동주를 빼놓을 수 없다. 윤동주 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그는 윤동주에 대한 에세이를 썼고, 이후 이 글은 일본 고등학교 현대문 국정 교과서에 실렸다. 그의 정의감은 일본의 권력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는 시 <장 폴 사르트르에게>에서 "조선인들은 대지진이 난 도쿄에서 왜 죄 없이 살해되었는가" 묻고, 시 '총독부에 다녀오마'에서 한 노인의 표정을 묘사하며 "천만 마디 말보다 강렬하게 일본이 저지른 일들을 거기서 보았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바라기를 그저 지한파 작가 중 한 명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1926년 6월에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전후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평에 어울리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1945년 일본이 패전했을 무렵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32살에 일본 현대시의 걸작이라 평을 받는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발표한다. 이 시는 이후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노래로 만들어져 카네기홀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8권의 시집을 발표한 그가 살아 있을 때 출간한 마지막 시집 <기대지 않고>는 15만 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가 발표한 작품은 한결같이 단단한 신념과 강력한 저항의 힘을 보여준다. 여자로서 느끼는 부조리한 현실과 차별당하고 박해받는 인간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의 솔직담백한 시들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댄다면 / 그건/ 의자 등받이뿐"('기대지 말고' 중),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 자신이 지켜야지 / 바보 같으니라고"('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중)와 같은 시원시원하고 분명한 언어는 위선과 무기력을 깨는 청량한 파열음이었다.
무시무시한 만학도인 그는 시 '이웃나라 말의 숲'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사전을 베개 삼아 선잠을 자고 있노라면 /'왜 이리도 늦게 들어왔느냐' 하며 /윤동주가 부드럽게 꾸짖는다. / 정말 늦었습니다. / 그렇지만 어떤 일도 / 너무 늦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새로운 언어가 내게 가져다줄 세계를 생각한다. 이바라기가 발견한 것 같은 낯설고 생생한 아름다움을 맞이하리라. 어떤 일도 너무 늦지는 않았으니까.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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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속 식당들의 문제점과 솔루션을 한 권으로 정리한 식당 경영 비법서. 식당 운영자에게 '교본'과도 같은 책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제작팀, 서울문화사, 1만5천8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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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동안 잡지 편집장을 지낸 저자가 파리, 뉴욕, 런던, 스위스, 독일 등을 여행하며 체득한 글로벌 트렌드를 엮은 책. 유럽의 색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민희식, 크리에이티브워크, 1만4천9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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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생전에 그가 기록해온 트위터의 글을 모았다. 제목으로 삼은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라는 문장은 생전에 저자가 자주 했던 말이다. 황현산, 난다.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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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톡스:마음의 주름살을 펴주는 책>
보톡스에서 착안, 마음 주름살을 펴주는 책 <포톡스>는 포토 톡 스토리(Photo Talk Story)를 줄인 말이다. 책갈피를 넘길수록 휴식과 안정을 주며 작가의 따뜻한 감성이 묻어난다. 한종인, 품,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