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꿋꿋이 헤쳐나가는 들장미 소녀 캔디. 배우 이영은이 분하는 캐릭터는 밝은 가운데 인내하고, 고뇌 가운데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는 마음대로 웃고 떠드는 철부지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그녀는 현명함과 자유분방함 그 중간 어디쯤에 안온하게 안착해 있다. 화보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방문한 날에도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소탈한 모습에서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붙이고 사는 그녀 특유의 담백함이 묻어났다.
오늘 화보 촬영은 어땠나요?
즐거웠어요. 원래 화보 촬영을 즐기거든요, 이 옷 저 옷 새로운 옷을 입고 스타일 변신하는 재미가 있잖아요. 평소 매니시한 분위기의 룩에도 관심이 많아 오늘 스타일링도 마음에 들어요. 요즘 딸아이는 한창 '공주님 놀이'에 빠져 내복 위에도 '샤랄라한' 드레스를 입고 돌아다니는데, 어쩜 그렇게 제 취향과 다른지 몰라요. 엄마도 공주 같은 드레스를 입길 바라는 것 같은데…. 그래도 오늘 제 사진을 보고 딸아이가 '엄마 멋있다'고 해주면 좋겠어요.
열연 중인 드라마 <여름아 부탁해>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이제 두 달 정도 남았어요. 올 2월부터 촬영을 시작했으니 한 해를 꽉 채운 셈이죠.
일일 드라마는 촬영 기간도 길고 촬영 분량도 많아 쉽게 지칠 것 같은데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기간이 길다 보니 오히려 촬영이 체계화되거든요. 초반 한두 달, 자리 잡히기 전까지는 정말 고생이었는데 이제는 스태프와 배우들의 손발이 맞춰지면서 편안해졌어요. 직장에 매일 출근하는 기분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촬영 현장은 설렘이 있어 좋은 반면 스트레스도 많은데 <여름아 부탁해> 같은 경우는 스트레스보다 안정감이 훨씬 커요.
본래 설렘이 주는 짜릿한 자극보다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더 선호하나 봐요?
맞아요. 설렘이라는 건 불안함도 동반하잖아요. 금세 사그라지기도 하고요. 그보다는 안정적인 게 좋아요. 짜릿하지는 않아도 은은하게 오래가는 익숙함을 사랑해요. 남편과의 연애도 그랬어요. 그런 연애를 한 덕에 결혼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인간관계도 깊고 좁은 관계를 선호하나요?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지 않은 대신 오래도록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에요.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동료들끼리 깊게 가까워지기 어려워요. 그래서 신인 시절에 가까워진 유인영, 안선영 등의 친구들이 굉장히 소중하죠.
<여름아 부탁해>와 같이 촬영 기간이 긴 경우에는 가까워질 기회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건 촬영이 끝나봐야 알아요.(웃음) 촬영 중에는 당연히 사이좋게 잘 지내는데요, 촬영이 끝난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지는 그때가 돼야 알 수 있더라고요.
설렘이라는 건 불안함도 동반하잖아요. 금세 사그라지기도 하고요.
그보다는 안정적인 게 좋아요. 짜릿하지는 않아도 은은하게 오래가는 익숙함을 사랑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 아닌 것 같아요. 쿨하다고 해야 하나요?
스트레스를 받긴 하는데 금방 잊어버려요.(웃음) 20대 시절에는 스트레스에 전전긍긍했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거죠. 당시엔 촬영 전날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하루 종일 대본만 봤어요. 촬영 전날에도 외출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결혼한 선배들을 보면 잘 이해가 안 갔죠. '선배들은 불안하지도 않나?' 싶었고요. 그런데 이제 알겠어요. 욕심을 버려야 편안해진다는 걸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잘해야 하는데, 실수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오히려 카메라 앞에 서면 더 어색해지기도 했어요. 지금은 촬영 전날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여유롭게 지내요. 대신 대본은 완벽히 숙지하죠. 그 덕분에 카메라 앞에서 많이 여유로워졌어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것이 안정감을 찾는 데 도움이 된 걸까요?
확실히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결혼 전에는 쉴 때도 불안했어요. '이렇게 그냥 놀고 있으면 안 되는데, 계속 일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뭐라도 해야 했죠. 그런데 지금은 쉴 때는 오로지 쉬는 것에 몰두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어요.
<여름아 부탁해>의 '왕금희'로 올 한 해를 보내고 있어요. 이영은에게 '왕금희'는 어떤 의미일까요?
'왕금희'는 연기를 시작하고 제가 처음 맡은 부모 캐릭터예요. 전에는 한 번도 아이가 있는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이를 향한 사랑, 모성애를 연기하면서 '내게 아이가 없었다면 이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웠겠구나' 싶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며 제가 느낀 감정과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돼 더 의미가 깊어요.
육아 경험 덕에 '여름이'를 대하는 것도 훨씬 자연스럽겠어요
그럼요. '여름이(송민재 분)' 역할을 하는 아역 배우와도 많이 친해졌어요. 키우는 아이가 없으면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저는 딸하고도 친구처럼 지내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대하는 게 더 편해졌어요.
딸이 이제 5살이잖아요. TV에서 다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모습이 신기할 것 같아요.
아, 우리 아이가 정말 귀여워요. TV를 보고 나면 '여름이'를 그렇게 질투하거든요. "엄마, 왜 여름이는 업어주고 나는 안 업어줘요?" "엄마 왜 여름이랑만 캠핑 가? 나랑은 안 가잖아" 이러면서요. 그 투정에 못 이겨 아이를 업고 돌아다녔어요. 정말 힘들었다니까요.(웃음) 한번은 제가 따귀를 맞는 장면을 보고 "왜 엄마를 때리냐"며 펑펑 우는 거예요. 저건 진짜가 아니라고 해도 오열을 했어요.
남편과 아이 모두 '엄마 이영은' 외에 '배우 이영은'에게도 든든한 지원군이 돼줄 것 같아요.
아이는 아직 어려서 TV 드라마가 현실이 아니라는 것, 배우라는 직업 자체를 다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나오는 드라마는 열심히 보죠. 남편의 경우에는 많이 응원해줘요. 다음 스토리를 궁금해하면 제가 스포일러가 돼 살짝 알려주기도 해요.(웃음)
연기 모니터링을 해주는 일도 있나요?
절대 그러는 일은 없어요. 연기는 철저하게 제 영역이라는 생각으로 존중해주고 터치하지 않으려 조심하죠. 제가 남편의 업무 처리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일을 응원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격려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20대 시절에는 스트레스에 전전긍긍했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이제는 욕심을 버려야 편안해진다는 걸 알았거든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린 덕분에 카메라 앞에서 많이 여유로워졌어요.
일일 드라마 주연에 5살 딸 육아까지,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에 부칠 것 같아요. 평소에 체력 관리도 하나요?
사실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30대가 된 후 꾸준히 운동을 하려고 노력해요. PT를 받기도 하고, 요가도 하고, 지금은 필라테스를 해요. 시간이 없다 보니 자주는 못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하려고 노력하죠. 더 젊을 때는 제가 먹어도 살이 안 붙는 체질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살이 좀 붙었다 싶거나 촬영을 앞두면 식단 관리도 해요.
바쁜 가운데 식단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요.
제가 귀찮은 걸 못 해요. 그래서 요즘에는 식사 대용 셰이크를 먹고 있어요. 살이 좀 붙었다 싶을 때 2~3일 밥 대신 셰이크를 먹는 방법을 쓰는데 효과가 좋더라고요. 최근에 살이 쪄서 어떻게 빼야 할까 고민이었는데 역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 물론 근력 운동도 필수고요.
드라마 촬영이 없는 날의 일상도 궁금해요.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쉬는 날에는 아이와 많이 놀아주려고 해요. 별다른 취미 생활 없이도 아이와 있다 보면 시간이 금세 가거든요. 그 외엔 운동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나가기도 하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시간이 빨리 가는 기분이 들어요.
올 한 해는 드라마 촬영으로 쉴 새 없이 달려왔잖아요. 이번 드라마가 끝난 뒤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쉬어야겠죠? 아직은 계획을 세우고 싶지 않아요. 드라마가 끝나도 엄마라는 역할은 끝나지 않으니까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동안 촬영하느라 못 간 여행도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철부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처음 <여름아 부탁해> 대본을 받았을 때도 제가 맡은 '금희'보다는 자유분방한 '금주(나혜미 분)' 역할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이제까지 항상 밝지만 착하고 또 순종적인 역할을 했으니까 이제 드라마 안에서 사고도 치고 멋대로 하고 싶어요. 남편은 드라마의 '금희'를 보면서 우스갯소리로 "원래 성격이랑 너무 다른 것 아냐?"라고 말해요.(웃음) 제 성격요? 글쎄… '금희'와 '금주' 둘의 모습을 모두 갖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