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이가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어린 주안이와 함께 배를 타고 어두운 동굴을 지나는 놀이 기구를 탔다. 그런데 주안이는 그 놀이 기구를 타며 무서웠던 기억이 선명한 탓인지 그 후 어두운 곳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우리 부부는 막연하게 시간이 흐르면 주안이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시기가 온 듯하다. 최근 주안이가, 내가 출연한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봤기 때문이다. 주안이의 유치원 친구가 부모님과 함께 공연을 보러 와 대기실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즐겁게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주안이는 며칠 뒤 자신도 아빠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 놀라워라! 내 아들이 맞나? 처음이었다. 극장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보자고 설득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녀석이 친구가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뮤지컬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아들이 뮤지컬을 처음 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주안이가 아주 어렸을 때, SBS <오! 마이 베이비> 촬영을 하거나 리허설을 감상하며 응원한 적이 있지만 정식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 부부는 공연 전날 공연 에티켓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고, 공연 중에 화장실에 갈 수 없으니 휴식 시간 20분 사이에 다녀와야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의자에 앉아 몸을 많이 움직이거나 떠들면 안 된다고 알려줬다. 주안이는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걱정했는데 공연 직전 화장실에 다녀오고 공연 중에는 가능하면 물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작전을 세웠다.
드디어 공연 당일. 공연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주안이는 대기실에 들어와 ‘아더’의 칼 엑스칼리버를 들고 사진을 촬영했다. 또 ‘아더’ 역의 김준수를 만나 “엑스칼리버를 뽑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하고, ‘랜슬럿’ 역의 이지훈과 대화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객석으로 자리를 옮긴 후엔 엄마 김소현 씨가 내게 이야기를 전해줬다. 주안이는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바람 소리 같은 효과음이 나자 긴장하고 무서워했단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며 무대가 밝아지고 대기실에서 만났던 ‘아더’와 ‘랜슬럿’ 그리고 아빠가 무대에서 칼싸움을 하는 등 멋진 장면이 이어지자 엄마에게 “엄마, 별거 아니네. 정말 재미있다”라고 속삭였단다.
주안이는 그동안 <어벤져스>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요즘 <어벤져스>를 이길 수 있는 특별하고 강력하게 사랑하는 작품이 생겼다. 바로 <엑스칼리버>다. 주안이는 아빠가 마법사 ‘멀린’으로 출연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모든 사람이 뽑지 못했던 바위에 박힌 검을 ‘아더’가 뽑았다는 사실을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토르’의 망치나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들고 다녔던 주안이가 요즘엔 엑스칼리버만 들고 다닌다. 아들이 아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지 몰랐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는 나인 것 같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