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건강보험 서비스에 주저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병원의 문턱이 낮고 선택의 폭이 넓은 나라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오스트리아는 조금 다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선 치료비나 수술비를 받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 수납 창구가 없다. 일부 사설 병원이나 치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료비는 의료보험으로 커버된다. 한국만큼 신속한 의료 서비스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의료비 걱정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질병의 예방을 위해 노력한다. 아프기 전에 건강을 미리 지키는 것이 경제적이면서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가 지원하는 메디컬 힐링 호캉스, ‘쿠어(Kur)’다. 3주간 온천과 병원, 호텔이 결합된 의료복합단지(스파 메디텔)에 머무르면서 건강검진을 받고 식이와 운동 요법을 관리받는 프로그램이다. 5년을 주기로 2회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몸이 아프지 않아도 심신의 휴식이 간절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쿠어를 신청할 수 있다. 총 비용은 3,000〜4,000유로(400만~500만원)이지만,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170~400유로(20만~50만원)다.
쿠어 참여자는 의사 등 전문가의 소견에 따라 맞춤형 스케줄을 제공받고 매일 등산·걷기·수영·마사지·테라피 등 운동과 치료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한다. 운동을 게을리하거나 기타 문제를 일으킬 경우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하거나 귀가 등의 페널티를 받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 전역에는 온천과 연계된 70여 곳의 쿠어 지역이 있다. 보통 바트 블루마우(Bad Blumau), 바트 이슐(Bad Ischul), 바트 피가운(Bad Vigaun) 등 온천(Bad)이 있는 지역은 대부분 쿠어와 결합된 스파 휴양지다.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는 ‘레하(Rehabilitation)’가 있다. 쿠어가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면 레하는 재활이 목적이다. 따라서 쿠어에 비해 관리 범위가 훨씬 넓고 엄격하며 운동 강도가 세다. 회복 경과에 따라 머무는 기간도 달라진다. 업무 중 팔이 절단된 한 지인은 대수술 후 8주 동안 레하에 다녀왔다. 이후 신경 접합, 피부 이식 등 크고 작은 수술을 여러 번 거치면서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재활의학이 국민 건강을 톡톡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충분한 휴식 후 일터로 돌아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일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 국민 건강과 경제를 동시에 지키는 오스트리아의 영리한 복지제도다.
글쓴이 임성준
워커홀릭의 생활을 내려놓고 '셀프 선물'로 떠난 스페인 카미노에서 인생의 반쪽을 만나 오스트리아 린츠 외곽에 정착했다.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의 현지 코디를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