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자라면서 발이 커져 신발이 맞지 않는다는 주안이에게 새 축구화를 선물했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축구화가 도착한 날 주안이는 택배 상자를 뜯으며 진심으로 좋아했다. 집에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새 축구화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며 자랑하는 통에 부모님께서도 "주안이가 축구화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다"고 이야기하실 정도였다.
축구화를 보자마자 주안이는 잔디밭이 있는 옥상에 올라가 축구 연습을 하자고 했다. 주안이는 축구 연습을 하면서 그동안 속상했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주안이도 또래 아이들처럼 축구를 좋아하는데 아빠인 내가 볼 때 실력이 뛰어나진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축구를 잘하는 아이들끼리 모여 축구 시합을 할 때, 그룹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나 보았다.
주안이는 그 사실을 속상해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나의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운동 실력이 특출하진 않았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편에 속해 운이 좋을 땐 어떤 종목에서 반 대표로 뽑히곤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욕심을 부린 종목은 계주였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반 대표 선수로 뽑히지 못하면 속상한 마음이 상당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아들이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나도 속상해졌다. 그래서 주안이에게 "연습하면 더 잘할 수 있어! 아빠랑 열심히 연습하자"고 용기를 복돋았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야. 아빠, 난 축구를 잘 못 해서 학교에서 시합에 자주 나가지 못하는걸. 그냥 아빠랑 마음껏 축구를 하고 싶어."
주안이는 축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걸까? 아니면 마음껏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싶은 걸까? 아들의 마음을 알지 못해 내 심정도 복잡해졌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축구는 공놀이 반, 주안이 상상 속 플레이 장면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이 반이 됐다.
주안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마음껏 하게 해주고 싶은데 참 쉽지 않다. 쉽고 간단한 일이라도 실천하고 반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머피의 법칙일까? 며칠 전에는 주안이의 사촌, 교회 친구들과 함께 한강에서 축구를 하기로 약속했다. 한강에서 우리 집이 제일 가까워 공을 챙겨 가기로 했는데, 아뿔싸! 공에 바람이 부족했다. 펌프로 바람을 넣기 위해 공에 바늘을 찔렀는데 바늘이 부러지면서 바람을 넣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우리의 축구 만남은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타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진 아빠와 노는 시간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아들과 공을 들고 밖으로 나가곤 한다. 하지만 아들의 속상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 때문일까? 요즘 유난히 어린이 축구 교실이 눈에 띈다. 축구 교실에 다니면 주안이가 축구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유니폼을 입은 멋진 아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아들도 행복하고 아빠도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기대되는 미래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