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에디터로 10년을 일하다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한 달 살기’를 실현하려고 무작정 사표를 냈다. 그리고 방콕으로 떠났다. 이전에도 방콕은 여러 번 여행했지만 그곳이 나의 인생 도시가 된 건 그때부터였다. 나는 3개월 꼬박 그곳에 머물렀다.
방콕은 여유로운 휴양지 무드와 에너제틱한 도시 분위기가 공존하는 곳이다. 쉬고 싶을 땐 호텔 수영장을 오가며 하루 종일 뒹굴 수 있고, 어딜 가든 초록 식물이 가득하다. 반면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이벤트와 밤늦게까지 화려하게 빛나는 거리는 굉장히 익사이팅하다. 그리고 동남아의 저렴한 물가와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로컬 시장에서 1,500원짜리 팟타이를 점심으로 먹고 특급 호텔 뺨치는 세련된 카페에서 디저트로 1만 5,000원짜리 와플을 먹는 요상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야시장에서 흥정하는 재미와 초대형 쇼핑몰에서 보내는 쾌적한 쇼핑 타임의 대비는 또 어떤가? 그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태국 음식을 매일 먹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부담 없이 마사지를 받을 수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쏨땀과 랍무, 코코넛 수프에 푹 빠진 나는 급기야 쿠킹 클래스를 찾아가 만드는 법을 마스터했다.
단골 마사지 숍 쿠폰은 어느새 도장으로 빼곡해졌다.
방콕에서 살려면 마스터해야 할 생소한 교통수단이 두 가지 있다. 바로 랍짱(오토바이 택시)과 수상버스다. 지독한 교통 체증 때문에 혹은 더 지독한 더위 때문에라도 오토바이는 필수 선택이 된다. 다음은 수상버스다. BTS 사판탁신 역에 내리면 사톤 선착장에서 투어리스트 보트나 수상버스를 타고 짜오프라야강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방콕은 요즘 강변이 계속 개발되고 있어 주변에 볼거리가 가득하다. 아이콘시암, 롱1919나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아시아티크 등 방콕의 핫 플레이스는 전부 강가에 있다. 특히 왓 아룬이 보이는 루프톱 바(수파니가 이팅룸, 촘아룬 등)에서 선셋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은 정말 환상 그 자체다. 아이콘시암 G플로어에 있는 수상 시장 모티브의 푸드코트도 끝내준다.
내가 방콕에서 애정하는 또 한 지역은 실롬이다. 룸피니 공원이 있는 BTS 살라댕 역에서 쭉 이어지는 거리인데, 로컬 분위기를 경험하기 좋고 맛있는 로컬 식당도 많다. 특히 ‘시암하우스(Siam House)’라는 로컬 음식점, 그 옆의 과일 노점, 길 건너에 있는 판단 크림빵 맛집 아마 ‘베이커리(ama bakery)’까지. 방콕에 갈 때마다 아무리 더워도 꼭 들르는 곳이다. 세련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날엔 센트럴 엠버시 5층에 있는 시위라이 시티클럽을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든다. 방콕 최고의 패션 편집 매장인 시위라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음악, 야경, 분위기, 음식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세련된 곳이다.
살아보니 방콕을 제대로 알기엔 3개월도 부족했다. 그만큼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도시다. 나는 방콕에 다녀온 후 완치하기 어렵다는 ‘오라오라병’을 앓고 있다. 아무래도 앞으로 몇 년간은 방콕이 나의 ‘최애 도시’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