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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도시

작가들의 인생도시 #코펜하겐

On July 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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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겨울은 오후 3시만 되면 해가 진다. 비도 잦다. 코펜하겐에서는 그 어둡고 거친 빗속에서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자주 본다. 그것이 몹시 용감하고 신기해 보였다. 코펜하겐 중심가에 처음 들어섰을 때 엄청난 수의 자전거가 죽 늘어선 걸 보고 나는 놀랐다. 함께 간 딸도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여긴 한국과 격이 다른 거 같아. 모든 게 친환경이야.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몸이 바로 따라가.” “몸이 바로 따라간다”는 딸의 말이 좋았다.

SBS <세계도시樂여행>에 딸과 함께 출연자로 갔다가 만난 코펜하겐은 내게 ‘인생 도시’가 돼버렸다. 지치도록 일하고, 아픈 사건들 속에서 나는 많은 추억을 잊어갔다. 떠나지 못해 못 본 내 안의 나. 사느라 덧씌워진 껍질들이 한 꺼풀씩 벗겨졌다. 비로소 둘로 갈라진 내가 하나가 된 듯 안심했다. 마치 사랑할 때처럼.

혼자 애를 키우는 동안 시집을 세 권, 8년마다 냈다. 정리할 시간이 나지 않아 가슴이 많이 아팠다. 멀리 코펜하겐에 나 자신을 묻고 다시 태어난 날을 떠올리며 자주 힘을 낸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울음을 어딘가에 쏟으려는 것이다. 울고 새까매진 속을 비우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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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코펜하겐과 가까운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잊지 못할 향기가 됐다.
코펜하겐 곳곳마다 내면으로 향하는 불빛이 보여서일까?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도 이상하게 춥지는 않았다.

코펜하겐의 하루. 그 긴 어둠과 적막감은 신비스럽게도 내면으로 향하게 했다. 이 작은 나라가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거목을 키운 것이 이 어둠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이 어둠 속에서 태어난 철학가로는 키르케고르가 있다. 그리고 작가 ‘안데르센과 아이작 디네센이 있다. 백 년이 지나 국민 화가로 떠오른 기묘한 침묵과 신비의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가 있다. 잠시, ‘우리나라 국민이 내가 바라는 만큼의 책을 안 읽는 이유가 날씨가 좋아서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날씨가 좋으면 다들 밖으로 나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곳 추운 계절은 길고 어둡기에 음식 색감에까지 신경을 쓰고, 더 깊고 달큰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코펜하겐에서 안데르센의 향기를 찾아가면서 먼저 코펜하겐의 심장이랄 수 있는 니하운 운하 근처에서 안데르센이 머문 18세기의 집을 만났다. 이곳은 동화 속같이 고풍스럽고 이뻤다. 그날 숙소로 돌아와 덴마크까지 가져온 <안데르센의 자서전-내 인생의 동화>를 읽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괴테의 <시와 진실>, 루소의 <고백록>, 크로포트킨의 <크로포트킨 자서전>과 함께 서양 문학사가들에 의해 세계 5대 자서전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안데르센의 자서전에는 나폴레옹의 등장과 퇴장, 증기기관차와 증기선의 대두, 급속한 산업 발전, 민족국가의 등장, 전쟁과 시민혁명의 발발 등 삶의 방식을 바꿔놓은 당대의 의미까지 알 수 있는 뜻깊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이후 나는 안데르센의 고향 오덴세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꽃을 보기도 했다. 코펜하겐 서쪽 베스테르브로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길게 이어진 모습과 왕립 도서관 블랙 다이아몬드를 돌다가 만난 기념 조각상도 인상 깊었다. 전통 가정식 요리 스뫼레브뢰는 한 학생의 집에서 맛보았다. 어느 날 밤에는 문 닫은 가게 유리창 너머로 본 생활 그릇들에 바로 몸이 따라간 듯 내 것이 됐다. 그럴 만치 기분이 좋았다. 비가 내리면 젖을까 봐 두려웠던 마음이 사라졌다. 아주 강해지는 나 자신을 느꼈다. 다리는 더 단단해졌고 발걸음은 더 힘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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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신현림(시인, 사진작가)
사진
칼럼니스트 제공, 하은정,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07월호
2019년 07월호
에디터
하은정
신현림(시인, 사진작가)
사진
칼럼니스트 제공, 하은정,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