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여행하는 삶이 이어질 줄 알았다. 방송 작가로 살면서 잠시의 틈만 생기면 떠나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 꿀맛을 잊지 못해 또 열심히 일하며 20대 시절을 보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 죽기 전에 가봐야 한다는 여행지는 또 어찌나 많던지 그런 기사를 보며 설레었던 30대 시절.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가 둘이 되고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족 네 명의 스케줄을 맞추기엔 늘 역부족이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어’라는 마음이 ‘언젠가는 가게 되겠지’라는 체념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는 치열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며 바쁜 하루를 보낸 후 찾아드는 밤이 오면, 지구상 가장 잔잔한 해안을 가진 나라,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 마카르스카를 떠올린다.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바다 옆에 아름답게 낡아가는 마을을 보던 즐거움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마음이 시큰해지는지.
금요일 밤부터 올드 팝이 커다랗게 울려 퍼지고 축제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 덕에 유일하게 노트북을 열지 않았던 곳, 마카르스카. 수영복을 입고 맨발로 오가는 사람들이 어색하지 않으며 건강하게 잘 탄 까만 얼굴로 싱싱한 과일을 쉽게 구해 먹을 수 있는 곳. 지구상 가장 잔잔한 해안을 가져서인지 여유 있고 다정한 웃음이 있어 사랑하지 않기가 더 어려운 곳. 바로 그곳.
지구상 가장 잔잔한 해안을 가져서인지 여유 있고 다정한 웃음이 있어 사랑하지 않기가 어려운 그곳, 마카르스카.
맨발로 걸어 다니고 배고프면 과일을 사서 한입 베어 먹으며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안을 바라보았던 그 순간이 자꾸 떠오르는 걸 보면, 내 몸이 그 마을의 감성을 오롯이 기억하는 것만 같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하루에 몇 번이나 그곳 해변을, 시끄럽지만 이내 익숙해지는 올드 팝을, 돈을 조금 내면 배 타고 떠날 수 있었던 피시 피크닉을, 맨발로 걸으며 구김살 없이 보내던 시간을, 잔잔한 바다 냄새를 하릴없이 그리워하게 된다. 늘 긴장 상태로 살았던 나에게 완벽한 무장해제를 선사해준 마을이었기 때문이리라.
크로아티아에 어렵게 가서 유명한 곳들을 둘러보고 오거나 고속도로를 달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느릿한 해안도로를 지나며 쏟아지는 햇살 아래 반짝이는 아드리아해를 가슴에 담는 일이 더 설레는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남들이 모두 찾는 ‘핫플’에서 떠밀리듯 인증샷을 찍기보다는 다소 촌스러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에서 보내는 날들은 우리를 또 살아가게 하니까 말이다. 다카하시 아유무의 글처럼, 작가인 나에게도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컴퓨터 앞이 아니라 파란 하늘 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