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에게 술을 마시며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바'라는 공간의 이미지는 전형적이다. 대부분 건물 1층에 있고 테라스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건물 2·3층, 혹은 지하에 있는 바는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파리지앵에게 시크릿 바는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계단을 올라가고, 운영 중인 식당의 뒷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지하로 내려가야 하는 공간에 바가 있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참신한 것이다. 자유로운 밀레니얼 세대 파리지앵에게는 금지된 것을 몰래 할 때의 스릴감이 더욱 큰 듯하다.
영어로는 '스피크이지(Speakeasy)'라 불리는 비밀 바들은 원래 미국에서 1920년대 금주령이 내려지면서 사람들이 몰래 숨어 술을 마시고 자유롭게 정치적인 토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 데서 유래한다. 물론 2019년 파리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오늘날 파리의 비밀 바들은 더욱 예상치 못한 공간에 숨어 있고, 고객들은 수수께끼를 풀듯이 찾아내야 재미가 있다.
요즘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크릿 바는 세탁소에 숨어 있다. 입구는 파리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동 세탁소, '라보마틱(lavomatique)'과 똑같이 생겼다.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중에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비밀 문이 숨어 있다. 그 비밀 문 뒤로는 어두운 계단이 숨어 있고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분위기의 아늑한 바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세제통을 의자 삼아 이곳저곳에 앉아 있다. 인테리어만큼이나 색다른 칵테일 등 모든 것이 놀랍다. 요즘은 인기가 너무 많아 줄을 서지 않고는 비밀스러운 문에 접근할 수가 없다.
아는 사람만 알고 찾아가는 바 중에는 인디언 레스토랑 뒷문에 숨어 있는 '바라난(Baranann)'이라는 인디언 바가 있다. 바라난이 숨어 있는 인도 음식점은 정작 영업이 잘 되지 않아 비교적 텅 빈 분위기다. 게다가 사방에 그려진 호랑이와 코끼리 벽화를 보면 선뜻 들어갈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호랑이가 그려진 벽에 무거운 철문이 있다. 그 문을 열어보면 시끌벅적한 발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바가 펼쳐진다.
'프랑스스러운' 유머가 담긴 바로는 '르 생디카(Le Syndicat)'가 있는데, 프랑스어로 '노조'라는 뜻이다. 실제로 지나가다 언뜻 보면 파리 거리 곳곳에 있는 노조 사무실 입구처럼 생겼다. 다만,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유리창 뒤로는 현대적인 디자인 바가 숨어 있다. 게다가 웅장한 칵테일 바 뒤에는 평생 노조란 건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힙스터 스타일의 바텐더가 서 있다.
시크릿 바를 찾는 고객층은 대부분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와인은 잘 모르지만 아무 술이나 마시고 싶지는 않은 전형적인 보헤미안 부르주아, 즉 '보보'들이 많이 찾는다. 비교적 보보가 많이 살고 있는 파리 동쪽에 시크릿 바가 밀집해 있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약간의 스릴감과 모험을 즐기고자 하는 젊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남들은 모르는 바를 찾아내는 것은 어느 정도 특권 의식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글쓴이 송민주
4년째 파리에 거주 중인 문화 애호가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등을 제작하고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