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사실 베이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빵이라면 보통 부드럽고 쫄깃한 질감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베이글은 텁텁한 데다 씹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크림치즈와 커피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아침 식사를 할 때마다 베이글은 항상 뒷전이었다. 뉴욕에서 베이글을 먹기 전까진 말이다.
‘뉴욕의 베이글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어’ 하고 넘어가던 필자도 이젠 뉴욕 베이글 ‘빠(팬의 다른 표현)’가 됐다. 그때까지 먹어본 베이글은 단단하거나 질겼고, 심한 경우는 안쪽에서 반죽 냄새가 나거나 설 구운 느낌이 났다. 물론 개중엔 먹을 만한 것도 있었지만 마음을 확 사로잡진 못했다. 그런데 뉴욕 베이글은 달랐다. 반짝반짝 윤기 나는 겉 부분은 적당히 단단하고, 안쪽은 그와 반대로 탄탄하면서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덕분에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궁합이 잘 맞는다. 그냥 먹어도 참 맛있다.
어떻게 해도 맛이 없던 베이글이 뉴욕에선 왜 맛있는 걸까? 뉴욕 베이글 맛의 비밀이 바로 뉴욕 수돗물이라는 미신이 꽤 오랫동안 정설처럼 내려왔다. 뉴욕 수돗물은 130마일 떨어진 북쪽 지방에 위치한 산맥 캣츠킬(Catskill)에서 오는데, 이 물이 다른 지방에 비해 칼슘과 마그네슘이 비교적 적은 ‘소프트 워터’ 라고 한다.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함량이 많은 물은 반죽 속 글루텐에 영향을 끼쳐 단단해지는 반면 ‘소프트한’ 물로는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의 베이글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돗물이 뉴욕 베이글의 비밀의 전부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미국화학협회(ACS)는 수돗물이 뉴욕의 베이글에 영향을 미치는 건 극히 일부분이라고 발표했으며, 미국의 유명한 요리 프로그램인 <아메리카 테스트 키친(America’s Test Kitchen)>에선 브루클린에서 만든 베이글과 뉴욕보다 더 소프트한 매사추세츠 지방의 수돗물로 만든 베이글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뉴욕 베이글을 만들기 위해선 두 가지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첫 번째는 바로 ‘프루핑(proofing)’. 프루핑이란 제빵사들의 언어로, 반죽을 발효하는 과정을 말한다. 베이글은 반죽을 만든 후 저온에서 적어도 하룻밤 동안 발효해야 하는데 4℃보다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게 되면 구울 때 부풀어 오르고 텁텁한 맛을 낸다. 두 번째는 바로 굽기 직전 진행되는 ‘반죽 끓이기’이다. 30초에서 3분간 진행되는 이 반죽 끓이기가 바로 표면은 매끄럽고 바삭하면서 안쪽은 꽉 들어차고 쫄깃한 베이글의 식감을 만들어내는 비법이라고.
뉴욕 베이글 맛의 비법이 수돗물이 아니라 정성이었다니. 어찌 보면 맥 빠지는 결론이지만 뉴욕 베이글은 여전히 그 맛 그대로 많은 사람을 유혹하고 있다. 그 유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필자가 소개하는 뉴욕 베이글 맛집을 찾아보길 권한다.
Ess-a-bagel 너무 유명해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곳. 1970년 대부터 뉴욕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베이글집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큼지막한 뉴욕 베이글의 원조.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훈제 연어를 함께 넣은 베이글이 가장 유명하다.
Best Bagel & Coffee 미드 타운 펜 스테이션 바로 바깥에 위치해 있어 직장인과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외관은 오래된 델리숍(길거리 편의점)을 떠올리게 하지만 맛은 예사롭지 않다.
Brooklyn Bagel & Coffee Co 필자에게 베이글의 참맛을 알려준 곳. 브루클린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상점은 퀸즈와 맨해튼에 있다. 맨해튼에서는 첼시와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 있으니 근처를 지나간다면 꼭 들러 먹어보기 바란다. 필자는 새우 샐러드를 넣은 통밀 베이글을 가장 좋아한다.
단언컨대 뉴욕에서 베이글을 먹고 나면 스타벅스의 베이글엔 왠지 손이 안 갈 것이다.
글쓴이 조아라 (@arachoart)
<뉴욕을 그리는 중입니다>의 저자로 현재 뉴욕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중심으로 예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