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해요, 너무 쉬운데
사람들은 답을 어렵게 찾아요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이 있는 공주 풀꽃문학관에 도착했을 때 시인은 작은 탁자에 앉아 사인을 부탁받은 수십 권의 책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사인을 하고 있었다. '국민 시'로 자리매김한 그의 시 '풀꽃'도 함께 적어주면서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매일매일 부탁받은 사인을 하고 시를 적어주고 그림을 그려주는 것, 하기 좋을까요? 싫을까요?" 시인이 미소 지었다. "하기 싫습니다.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근데 왜 할까요? 해야 되니까. 책 읽는 것, 공부하는 것, 착한 일. 솔직히 하기 싫지요. 근데 해야 되니까 하는 거예요. 그게 인생이에요. 때로는 인생이 살기 싫어도 살아야 되니까 살고 있잖아요." 나직하고 다정한 말투의 노시인의 한마디는 짧지만 긴 울림을 주는 그의 시와 닮아 있다.
시인은 최근 산문집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서울문화사)를 출간했다. 오랜만의 산문집이다. 인터뷰를 즐기지 않는 시인을 풀꽃문학관이 있는 충남 공주에서 만났다.
문학관이 참 공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요. 평생을 시골에서만 지내시는 이유가 있나요?
시골도 공기가 나쁩니다. 자연이 좋고 공기가 좋다는 말은 이제 잘못됐어요. 다만 저는 경쟁이 허술한, 그런 곳을 '시골'이라고 말합니다. 자연과 인간의 간격이 멀지 않고, 여백과 여유가 있는 곳을 시골이라고 보죠. 왜 시골에 사느냐 묻는다면, 나는 그저 서울에 산 적이 없어서 시골에 사는 것이에요.(웃음) 그리고 왜 시를 썼느냐 물어도 다른 것을 할 능력이 없어서 시를 쓴 것이에요. 제가 왜 자전거를 타냐 하면 자동차가 없고 자동차 운전을 할 능력이 없어서 자전거를 탑니다. 참 묘해요. 너무 쉬운데 사람들은 답을 어렵게 내요. 저는 서울에 살 능력이 없어서 시골에 사는 것뿐입니다.
평생 자동차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으시다고요?
나의 탈것은 오직 자전거뿐이에요. 사람들이 왜 승용차를 타고 다니지 않느냐고 묻는데, 말했듯이 나는 자동차 운전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를 타고 공주를 돌아다니며 맞는 바람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자전거를 타고 문학관에 와서 아무 생각 없이 문학관 앞에 자전거를 받쳐 놓는데, 이제 사람들이 그 자전거를 보고 "공주 풀꽃문학관 앞에 자전거가 있으면 문학관 안에 나태주가 있고, 자전거가 없으면 나태주도 없다"고 말하더군요. 말하자면 자전거와 나는 동격의 존재가 된 셈이에요.
자전거가 나태주 시인의 상징이라면 풀꽃문학관에는 풍금이 상징이라고 들었어요(문학관을 방문하면 시인은 방문객에게 풍금 연주를 들려준다).
학교 다닐 때 풍금을 배웠는데 줄곧 낙제 점수를 받았어요. 선생이 되고 나서 애들을 가르치는데 외로워서 풍금을 치기 시작했어요. 나는 풍금을 잘 못 쳐요. 그냥 내 멋대로 치는 거예요. 풍금은 내 감정을 해소해주는 도구예요. 지쳤을 때도, 힘들 때도, 외로울 때도, 슬플 때도 풍금을 연주하면 그 감정들이 해소됩니다. 풍금은 바람을 이용해 소리를 내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적이죠. 인간의 감정을 가장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악기예요. 예를 들면, 내가 많이 슬플 때 풍금 연주를 하면 우리 집사람이 '저 사람이 슬프구나' 하고 바로 알아들어요. 같은 노래인데 내가 많이 기쁠 때 연주하면 또 '저 사람이 기분이 좋구나' 하고 알아요. 나는 풍금을 피곤할 때도 치고, 격할 때도 쳐요. 나한테는 풍금이 어떤 예술적 의미가 아니에요. 삶의 일부라고 할까. 늘 내 가까이에 있지요.
교직 생활도 오래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인으로 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열여섯 살 때 어떤 여자가 좋아서 그 여자에게 연애편지를 쓰다가 시인이 됐어요. 그래서 그 뒤로도 내 시는 연애편지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세상으로 바뀌었어요. 살면서 그 대상이 다른 여자로, 또 다른 여자로 바뀌었고, 이제는 세상으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세상에 내가 보내는 러브 레터가 나의 시입니다. 러브 레터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지요? 예쁘고 사랑스럽고 좋고 울렁이는 마음을 담아서 쓰지요. 시의 소재가 그러합니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이 시의 소재예요. 또 러브 레터는 어떻게 쓰나요? 괴발개발 휘갈기는 게 아니라 정성껏 쓰지요. 상대방의 마음을 쓰러뜨리기 위해 정성을 담아서 쓰는 것처럼 시도 정성껏 씁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건, 열여섯 살 때 내 연애편지의 주인공은 지금도 내가 자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웃음)
밤에 꽃이 보고 싶으면 가서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보고 싶어서 잠을 못 자요.
선생님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나태주 시인을 젊은 시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짐작해보자면 나태주의 심리 상태에 이유가 있을 텐데, 첫 번째는 호기심이 많습니다. 두 번째는 아마도 도파민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고요. 도파민이 무어냐 하면 친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호르몬이에요. 저는 밤에 꽃이 보고 싶으면 가서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보고 싶어서 잠을 못 자요. 그런 것을 변주해 말한다면 철이 안 든 것이에요. 제 동생들이 그래요. 형님은 참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이라고. 울면서 읽어야 하는 글이 있으면, 울면서도 끝까지 다 읽어야 합니다. 우는 것은 감성이고 끝까지 다 읽는 건 이성이에요. 감성이 많은 사람은 그 감성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나는 감성이 충분한데 이성적으로 따집니다. 시를 쓸 때 철저하게 따지고 계산하고 이성적인 접근을 해요. 내 시집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꽃을 보듯 너를 본다>예요. 이 시집은 사람들에 의해 인터넷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시들을 모아놓은 책이에요. 인터넷 빈도수를 조사한다는 것도 이성적이고 계산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젊은 사람들을 좋아해요. 주로 젊은 편집자와 책을 만들죠. 제 책을 누가 삽니까? 대부분 젊은이들이 사요. 젊은이들 감각으로 만들어야 해요.
'나태주 시'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요?
별거 아닌 것이 특징입니다. 사소한 것, 가까운 것입니다. 멀고 크고 위대한 것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졸렬합니다. 그리고 중요하고 어려운 것인데, 쉽게 쓰지만 어려운 내용을 써요. 작게 쓰는데 큰 것을 써요. 예를 들어, '묘비명'이라는 시가 있어요. '많이 보고 싶겠지만 / 조금만 참자.' 굉장히 낭만적이고 단순해요. 그런데 한번 들여다봅시다. 상황을 전진시켜 봐요. 내가 죽었어요, 내 무덤 앞에 묘비가 있어요. 거기에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라고 썼어요. 그러면 그걸 가장 자주 와서 볼 사람은 우리 아들과 딸이겠죠. 아들딸이 와서 보고는 그러겠죠. '보고 싶어서 왔는데, 우리 아버지가 미리 써놨네. 조금만 참으라고.' 이건 굉장한 걸 말하는 거예요. 인생을 말하는 거예요. '조금만 참아라. 너도 죽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각성이에요. 인생을 잘 살라는 엄청난 훈계이지요. 훈계라고 해서 야단치고 소리 지르고 규범적으로 윤리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런 한 줄기의 문장 속에서 어떤 것을 알게 하는 것, 이게 훈계이고 이게 나의 시예요.
선생님의 여러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시, '풀꽃'에 대해 말해주신다면요.
'풀꽃'은 대단한 시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 시가 왜 이렇게 대중과 소통이 잘되었냐 하면 그건 내 뜻이 아니에요. 시를 쓴 것은 내가 썼지만 그 시를 키운 것은 독자이고, 세상이 키운 것이에요. 시인에게는 축복이 필요해요. 여러 가지 축복이 있겠지만 시인에게 꼭 들어가야 할 축복이 있어요. 바로 시대의 축복. 여기서 윤동주와 김소월 선생을 들어볼까요? 이들에게는 좋은 스승을 만난 것, 좋은 벗을 만난 것 등 많은 축복이 있었지만 시대의 축복이 없었다고 볼 수 있어요. 어떤 시대였죠? 일제 시대였지요. 나는 시대의 축복을 받았어요. 고난의 시대도 겪었지만 어쨌든 살아남았죠. 그런데 칠십이 넘어서 '풀꽃' 시를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시대의 축복을 받은 것이지요. 세상 덕이지요.
그렇다면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한 길이라는 게 있을까요?
쉽게 말하면 보통 사람이 되어야 해요. 나는 동화책도 소설도 평론도 수필도 많이 읽었어요. 시는 물론이고요. 하나만 읽고서 다 안다고 하면 안 돼요. 시를 써서 금방 유명해지려고 하지 말고, 열심히 살고, 넓게 공부하고, 착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아름답게 살다 보면 좋은 시를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는 책 속에 없어요. 책 속에 있는 시는 나의 시가 아니라 남의 시입니다. 그러면 내 시는 어디에 있느냐. 내 인생 속에, 내가 보는 세상 속에, 내가 겪는 고난 속에, 사랑 속에 있는 거예요. 나하고 관계되는 인생과 인간과 자연과 세상 속에 있는 겁니다. 책으로 하는 공부보다는, 인생과 세상 속에서 시를 찾는 겁니다.
최근에 시집이 아닌 산문집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를 출간하셨어요. 산문집을 낸 이유가 있나요?
써놓은 산문이 꽤 있었어요. 예전에 신문사에 연재한 글들을 보고 책으로 엮자는 제안도 꽤 있었고요. 한데 마음이 내키지 않아 미루고 있었는데, 이전에 같이 일했던 젊은 편집자가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어요. 전에 이 친구와 작업할 때 느낌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한테 맡기면 좋은 책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을 만들면서 그 친구의 의견을 다 들었어요. 젊은이들은 잔소리보다 분명한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분명한 어투로 축약했죠. 책의 제목처럼 이 친구가 좋다고 하니 나도 좋았고, 반응이 좋으니 나도 좋아요.(웃음) (민망하지만 시인이 말하는 '젊은 편집자'가 바로 필자다.)
당신의 좋은 때는 언제인가?
바로 당신의 지금이다.
언제나 우리는 좋은 때를 사는 것이다.
세상 끝날 때까지 좋은 때를 살 것이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중에서
인생이란 '그냥 살아보는 것'입니다.
답이 없으니까요.
이번 신간에는 세 가지 큰 주제, 인생, 사랑, 행복이 있더라고요.
인생이란 말은 참 답을 내기가 어려워요. 어쩌면 그게 인생에 대한 답입니다. 누구는 시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시에 대한 정의만 가지고도 도서관이 하나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이라는 제목은,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사실 그게 답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그냥 살아보는 것'입니다. 답이 없는 게 인생이니까요. 사랑도 골치 아픈 문제예요. 나는 사랑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랑은 소유 개념이 아니고 사용 개념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저 여자는 내 거다, 저 남자는 영원히 내 거다, 그렇게들 생각해요. 그런데 사랑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사용 개념이라는 거예요. 젊은 시절에는 '영원히, 너를, 끝까지, 나의 것'이라고 하는데, 나이 먹은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누군가 사랑에 대한 답을 시로 내라고 하면, 생각하는 시가 있습니까?(웃음)
'사랑에 답함'이라는 시예요.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 좋지 않은 것을 좋게 /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여기서 세 가지를 말합니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 싫은 것을 잘 참아주면서 오늘 한 번만 그런 게 아니라 내일까지 오래,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게 사랑이라는 거예요.
행복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행복은 조금 답이 쉬워요.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죠.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고,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흔한 것, 반복되는 것, 오래된 것, 값싼 것, 작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행복이에요. 인생, 사랑, 행복 중에서 답을 낸다면 나에게는 행복이 가장 구체적이고 쉬워요.
이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지요?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 내가 살고 있는 하루하루의 아름다움, 내게 있는 것에 대한 발견입니다. 우리는 이미 행복하고, 이미 사랑받고 있고, 이미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가 엄청난 존재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