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값, 지방 아파트 5채 가격
지난 10월 1일 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 주택가격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8억 2,975만원으로 역대 처음으로 8억원대에 진입했다. 중위가격이란 ‘중앙가격’이라고도 하며 주택 매매 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있는 가격을 말한다. 평균가격이 가구 수로 가중평균이 돼 저가주택의 수가 많으면 평균가가 낮아지고, 고가주택의 수가 많으면 평균가가 높아지는 것과 달리 중위가격은 순수하게 정중앙 가격만 따져 시세 흐름을 판단하기에 좋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09년 7월 5억 203만원으로 처음 5억원대를 넘어선 뒤 2017년 4월 6억원에 도달하기까지 7년 반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올해 1월 7억원을 돌파했고 또 9개월 만에 8억원도 넘어섰다.
지방은 정반대의 흐름이다. 현재 6대 광역시 중위가격은 평균 2억 4,004만원, 기타 지방 중위가격은 1억 5,646만원에 불과하다. 서울 아파트값이 지방 광역시의 약 3.5배, 기타 지방의 5.3배 수준으로 5채 이상을 팔아야 서울 아파트 1채를 살 수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강남 11개구의 아파트 중위가격이 지난달 10억 5,296만원을 기록하며 역대 처음으로 10억원을 돌파했다. 강북 14개구 중위가격은 평균 5억 6,767만원으로 강남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전월(5억 3,376만원) 대비 상승폭은 6.33%로 강남 못지않았다.
이같이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지난 9월 13일 종합부동산세 추가 인상과 대출 규제 강화 등 수요 대책과, 9월 21일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까지 내놓으며 과열된 부동산 시장의 진화에 나서고 있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서울 아파트값도 상승폭이 둔화하는 등 안정세로 돌아선 분위기지만 통계는 가격 변동에 후행하기 때문에 여진으로 인해 한동안 가격 오름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치솟는 서울 아파트값으로 인해 사회 초년생·신혼부부가 많은 20〜30대는 돈 한 푼 안 쓰고 15년 이상 모아야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39세 이하 가구주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명목)은 361만 5,000원이었다. 같은 날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6억 6,403만 4,000원이었다. 처분가능소득은 세금, 사회보험금, 이자 등을 빼고 가계가 실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득을 말한다. 아파트 중위가격을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눌 경우, 산술적으로 20~30대 청년 가구는 15.3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야 서울에서 중간 가격의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중위가격이 현재 8억원으로 오르면서 20~30대 청년 가구가 내 집 마련 자금을 모으는 데 걸리는 기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여기에 경제 성장이 침체 국면에 진입하고, 특히 청년층의 고용 시장이 직격탄을 맞아 20~30대가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성년 임대업 ‘사장님’ 23명, 억대 연봉자
고달픈 청년 세대를 동화 속의 이야기로 생각하는 듯한 정반대의 현상도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임대업으로 ‘사장님’인 미성년자가 전국에 200명이 넘고 심지어 23명은 억대 연봉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월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두관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김포시갑)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 직장 가입자 전체 현황 자료’에 따르면, 미성년자 사장님 265명 중 연봉 1억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24명으로 23명은 부동산·임대·사업서비스업으로 분류됐다. 265명의 평균 연봉은 3,868만원이었다. 이들 중 최고 연봉자는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만 6세 부동산 임대업자로, 연봉이 3억 8,850만원에 이르렀다.
올해 8월 기준 만 18세 미만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수는 2,401명으로 이 중 265명이 사업장 대표였다. 서울에서는 만 0세 아이가 부동산 임대업 대표로 등록돼 월 보수 140만원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미성년자 사장님들은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절세를 위해 부모 등이 대표자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김두관 의원은 “현행법상 미성년자의 사업자대표 등록은 세테크라는 명목으로 가능하지만 이를 이용한 편법 증여·상속 등 우회 탈세 행위를 눈여겨봐야 한다”며 “소득세 과세가 실질 귀속자에게 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성년자 주택청약 당첨, 만 1세 포함 9년간 331명
부동산 임대업뿐만 아니라 주택청약 당첨자에도 금수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9년간 만 1세를 포함해 미성년자 331명이 주택청약에 당첨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경욱 의원(자유한국당 인천연수구을)이 지난 10월 11일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2009〜2017년 미성년자 청약 당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331명의 미성년자가 청약에 당첨됐다.
연도별로는 2012년 19명, 2013년 49명, 2014년 77명으로 계속 늘다가 2015년 126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다시 2016년 26명, 2017년 20명으로 줄었다. 나이별로는 만 18세가 272명으로 가장 많았고, 만 17세 25명, 만 15세 10명 순이었다. 만 1세 4명을 비롯해 미취학아동 12명도 당첨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민경욱 의원은 “경제적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미성년자의 이른바 ‘금수저 청약’이 아파트 투기와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서민을 울리고 주택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미성년자 주택청약제도의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렇게 금수저가 부동산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돈으로 사는 권리를 박탈할 수가 없고 정상적으로 세금을 납부할 경우 오히려 소비가 촉진되는 측면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투기의 최대 피해자는 청년층”이라며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청년이 경제 여건이 되지 않다 보니 결혼·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고, 부모의 도움 없이는 부동산을 사기는 어려운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114 리서치팀 임병철 수석연구원은 “금수저가 부동산을 차지하는 문제는 합법적으로 증여가 이루어지고 세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한다면 현실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다”면서 “도덕적인 문제에 논쟁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탈세나 세금과 관련해 보다 세세한 법규를 통해 어느 정도 규제하는 법안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인포 권일 리서치팀장은 “미성년자의 부동산 임대업과 관련해 정상적으로 증여세를 납부하고 보유한다면 법적으로 문제를 삼을 수는 없다”면서 “물론, 이렇게 미성년자들이 부동산 임대업까지 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에 대한 도덕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제재할 법 조항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또 시각에 따라서는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 활동에 있어 소비가 이루어지는 부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