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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진 여사의 일상

“남자의 달콤한 말을 절대 믿으면 안 돼.” 촌철살인의 멘트로 막힌 곳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미운 우리 새끼>의 ‘토니 엄마’ 이옥진 여사를 만났다.

On August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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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화제의 예능을 꼽으라면 단연 SBS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다. 1990년대를 주름잡던 톱스타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평범한 이 프로그램의 경쟁력은 그들의 엄마가 함께한다는 데 있다. '우리 오빠'의 엄마들이 내뱉는 생생한 리액션이 극도로 현실적이어서 대중의 호응을 얻었고 <미우새>에 출연하는 이선미 여사(김건모 엄마), 지인숙 여사(박수홍 엄마), 이옥진 여사(토니안 엄마), 임여순 여사(이상민 엄마)는 <2017 SBS 연예대상>에서 숱한 예능인들을 제치고 대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네 명의 엄마 모두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높은 엄마가 있으니 바로 '토니 엄마' 이옥진 여사(73세)다.

'드립의 신'으로 불리는 신동엽 뺨치는 '70금' 애드리브로 웃음을 자아내며 '토니 엄마 어록'까지 생겼는데, 그 어록을 살펴보면 이렇다.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달라. 남자의 달콤한 말을 절대 믿으면 안 돼. 여자는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마음이 설레고, 남자는 배꼽 아래가 설레." "자식은 아빠 자식이 아니고 엄마 자식이라고 생각해. 아기 생길 때 아빠가 한 게 뭐가 있어? 기분(?)만 냈지." "남자를 믿으려면 옆집 수캐를 믿으라고 했어." 등이다.

이러한 어록이 화제가 되면서 토니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중인 이옥진 여사를 장맛비가 쏟아지는 여름의 어느 날 만났다. 강원도 평창에서 여사가 운영하는 식당은 정겹고 따뜻했다. 곳곳에 놓인 아기자기한 소품에서 특유의 소녀 감성이 느껴졌다. 이 여사는 흙으로 빚어 벽을 만든 식당의 제일 안쪽에 있는 주방에서 야채를 다듬고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느라 바빠요. 오늘 점심에도 손님이 많았어요. 이 나이 먹고 무슨 관리겠느냐만 오죽하면 거울을 볼 시간도 없었네요. 주방에서 나물을 다듬다 보면 손톱이 시꺼멓게 물들어요."

장맛비가 시원하게 내린 후 맑게 갠 하늘이 예뻐서 식당 밖으로 나와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토니 엄마 팬'이라고 밝히는 이들이 몇 차례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하나같이 "실물이 더 예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사실 젊었을 때 주위에서 연예인 하라는 권유을 받았는데 어른들이 반대하셔서 못 했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선비라서 엄하게 교육을 하셨거든요. 그때 못한 연예인이 이제 됐다고?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일하느라고 화장도 하지 않는데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분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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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7~18년 전쯤 이옥진 여사는 강원도 평창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젊어서부터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그녀가 도심을 떠나 자연과 함께하기로 결심한 것. 해발 730m에 있는 밭에 흙과 돌로 집을 지었다. 그리고 무릎길이 정도 오는 묘목을 사다 심었다. 그렇게 심은 나무가 어느덧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자랐고 손수 지은 집은 평창 맛집으로 거듭났다.

"강원도를 좋아해서 처녀 때부터 산으로 바다로 돌아다녔어요. 맑은 물과 푸른 산을 보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더군요. 어느 날 여행을 하다가 푸른 나무에 둘러싸인 이곳에 왔는데 딱 마음에 들어서 여기 살면 좋겠더라고요. 그길로 눌러 앉았어요. 여름에 햇빛이 아무리 쨍쨍해도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고 겨울에 눈이 오면 장관이에요. 눈 쌓인 산이 정말 멋있거든요. 이 집에 살면서 건강도 좋아졌어요."

<미우새>에 식당이 공개되면서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손님이 찾아온단다. 그 때문에 쉴 틈이 없다는 이옥진 여사이지만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손님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왜 식당을 차렸을까?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산골짜기이기에 더욱 궁금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밥만 먹고 살면 강아지랑 다를 게 없더라고요. 무언가 신경 쓰는 일을 찾으려고 했어요. 마침 음식에 취미가 있어서 식당을 열었지. 그땐 여기에 식당도 없었는데, 나처럼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면 편안하게 식사할 장소를 만들자고 생각했던 거죠. 그렇게 시작했는데 일이 커졌어요.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하니까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거든요."

'일'을 해야 활력을 찾을 수 있기에 소일거리를 찾다가 식당 주인이 됐다는 이옥진 여사는 젊어서부터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다. 여자가 직업으로 삼을 게 적었던 먼 옛날엔 미장원이나 의상실에서 일을 했다. 그 후엔 레스토랑과 카페도 운영했다. 조근조근 이야기를 이어가는 얌전함과는 또 다른 면모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전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라 거침없이 일단 해보는 편이에요. 그런 면에선 대장부 스타일인데, 토니가 엄마를 닮아서 사업가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원조 워킹맘이다. 여자는 결혼하면 대부분 전업주부가 되던 그 시대, 이옥진 여사는 가사와 육아 대신 집 밖으로 나가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것을 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토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당시엔 홀로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사실 토니를 떼놓고 일을 했어요. 그 생각만 하면 엄마로서 죄인 같고 마음이 아파요. 많이 피곤했어요. 솔직히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떼놓고 다닌 게 후회되는 일 중 하나예요. 어느 날 토니에게 '너는 엄마 밥을 못 얻어먹을 팔자인가 보다'란 이야길 했어요. 지금도 엄마가 평창에 있어서 혼자 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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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대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해요. 오늘이라는 건 죽을 때까지 있으니까요.
내일이 오면 내일을 그렇게 살고요. 그게 사는 거지 특별한 게 있나."

토니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세상 사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베이비시터에 관한 것이었다. 갓난아이를 돌봐줄 이가 없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여성들이 주제였다. 베이비시터가 부족한 것은 물론,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최근엔 이를 거부하고 나섰다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참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우리 토니가 아기가 생기면요? 당연히 돌봐줘야죠. 정말 예쁠 것 같아요. 토니가 어느 날 '엄마에게 손주를 안겨 드려야 하는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빨리 결혼하라고 했더니 바빠서 데이트할 시간이 없다면서 젊어서 일을 많이 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토니가 연예인이든 아니든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저 토니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좋다는 이옥진 여사는 아들의 생활을 화면으로 보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미우새>가 막 방송되기 시작했을 때 토니는 오로지 편의점 음식으로만 한 상을 차려 끼니를 때우는 모습으로 놀라움을 자아낸 바 있다.

"별게 있나요? 어제 방송을 보니까 토니가 좋은 곳을 다니더군요. 바쁘게 사는 아들을 TV에서라도 보니까 좋죠. 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들한테 전화도 거의 하지 않아요. 우리 토니가 말수가 적어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반찬은 평창에 오면 싸주곤 하는데, 다 챙겨 먹는진 모르겠네요."

아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는 이옥진 여사. 금쪽같은 아들이 가수가 되겠다고 했을 땐 실망하는 마음이 컸단다. 토니가 공부를 잘해 미국으로 보내 공부를 시켰었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세계는 하나'라는 슬로건 아래 세계인들이 함께 춤을 추고 놀았죠. 그때 슬로건이 귀에 들어왔어요. 세계 속으로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국으로 보냈죠. 토니가 어렸지만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서 미래에 하버드대학교에 가서 학자가 되어 평범하게 살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공부를 잘하다가 갑자기 가수를 하겠다는 거예요. 사실 실망했지. 이유를 물었더니 '엄마 우리 때는 (가수가) 한번 해보고 싶은 거야'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그냥 하라고 했어요. 하고 싶다는 걸 말릴 수 없어 3년만 놀라고 했죠."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3개월 동안 연습생을 거쳐 시작한 아이돌 그룹 'H.O.T.'가 대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토니는 피곤해하면서도 스스로 만족했다고.

"토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한 게 후회되진 않아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태어날 때부터 '너는 이렇게 살라'고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중엔 엄마처럼 자연 속으로 와서 살고 싶다더군요. 그런 걸 보면 내 아들이에요."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 육아는 끝난 게 아니라더니, 이옥진 여사는 여전히 육아 중이었다. 오랜 세월 육아와 경제,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산 삶의 무게가 무거웠으리라 짐작됐다. 이옥진 여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사는 게 별게 아니에요. 우리 같은 사람이야 업적을 만들 일이 없으니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살면 돼요. 욕심 때문에 아등바등할 것 없이 현실에 순응하고 물 흐르듯이 인생도 흘려보내면 돼요. 그러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죠. 나는 이제 70살이 넘어 죽을 날이 가까이 왔으니 그저 조용히 편안하게 살다가 가려고 생각해요."


<미우새>에서 쏟아낸 어록은 오랜 삶 속에서 나왔으리라. 이옥진 여사는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을 정도로 나이를 먹어 세상만사를 아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록은 무슨. 그저 신동엽 씨, 서장훈 씨랑 함께 떠드는 거죠. 전 이미 겪어봤으니까 아는 거고 젊은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거죠. 우리 엄마들이 몸은 늙었지만 마음만큼은 소녀예요. 몸은 늙어서 젊음을 잃었지만 마음은 10대, 20대, 30대 때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자연에서 왔다 자연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살면 돼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임에도 이옥진 여사 역시 후회되는 것이 있다.

"다 후회되지 않겠어요? 다시 20대가 되면 완벽하게 후회 없이 살고 싶어요. 되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내가 놓친 것들을 다 잡고 싶죠.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없지만 후회되는 게 많아요. 그러나 또 실수를 반복하겠죠. 그저 순리대로 물 흐르듯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면 돼요. 오늘을 편안하게 살면 행복한 거예요. 행복이란 것도 특별할 게 없어요. 이제 결혼했으면 한창 행복할 때 아닌가요?"

결혼한 지 갓 한 달이 넘은 기자에게 "아기는 없지?"라고 묻더니 육아를 하다 보면 속절없이 세월이 흐른단다. 이옥진 여사는 눈 한 번 깜빡하니 70살이 돼 있었다며 강산이 20년 주기로 바뀌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기를 낳고 키우다 보면 20년이 금방 흘러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20년이 지나니까 강산이 변한 걸 알겠더라고. 50대가 됐을 때 '내가 50살이 됐구나'라고 생각만하고 마치 40대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새 70살이 넘었어요. 겪어보니 20년이 지나야 세월이 흘렀다는 걸 알겠더군요. 순간이에요."

이옥진 여사는 언젠가 눈을 감고 하늘나라로 갈 그날을 각오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덤덤히 이야기했다.

"죽음이 무섭지 않느냐고요? 무섭긴요. 오랜 시간 살았고 죽는 건 순리인데. 순리를 어길 수 있나? 받아들여야지요. 하지만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해요. 오늘이라는 건 죽을 때까지 있으니까요. 내일이 오면 내일을 그렇게 살고요. 그렇게 사는 거지 특별한 게 있나."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슬쩍 구겨 신은 운동화. 수더분한 차림새였지만 이옥진 여사는 고왔다. 여사와 만난 하루도 여사를 닮아 곱게 느껴졌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이대원
2018년 08월호
2018년 08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
이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