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나오고 턱이 접혀 매번 몸매 관리를 하자고 다짐해도, 역시 단것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 잠에서 깨면 아침부터 커피에 도넛을 우물거리거나, 한국 혹은 중국계 빵집에서 사 온 다디단 빵으로 하루를 시작했었는데 그나마 요즘은 눈을 뜨자마자 엄청나게 단 케이크로 배를 채우는 만행은 저지르지 않는다. 어쨌든 건강은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가끔씩 단것을 먹는 건 정신 건강에도 좋은 것 같아 가고 싶은 디저트 가게를 정해 방문하고 있다. 최근엔 패션 디자이너인 지인과 그녀의 모델 친구가 달달한 음식에 꽂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한 달에 한 번 정도 디저트 투어에 동행한다.
요즘 LA의 인기 디저트는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컵케이크 열풍이 잦아들고 마카롱의 유행도 지나 다시 디저트계의 큰언니 격인 아이스크림이 돌아온 것이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지금 유행하는 아이스크림은 종전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미국에서는 냉장고가 대대적으로 보급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이스크림이 대중화됐다. 페스티벌이나 주말 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 트럭은 미국인에게 각인되어 있는 노스탤지어다. 수많은 디저트가 유행하다 사라지는 LA이지만 아이스크림만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참고로, 한국에서 일명 ‘하드’라고 불리는 ‘팝시클’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LA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이스(Ice)가 된 크림(Cream)’에 한정된다.
LA의 아이스크림 유행에 신호탄을 터트리며 신선한 충격을 준 곳은 바로 ‘리틀 데미지(Little Damage)’와 ‘배(Bae)’, 두 곳이다. 최근 LA에서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는 ‘먹는 숯’에 아이스크림을 섞은 이곳의 검정색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사진발 잘 받는 아이스크림’으로 입소문을 타 인기를 얻었다. 두 곳 모두 이처럼 독특한 콘셉트의 아이스크림은 물론, 기본에 충실한 아이스크림도 구비되어 있다.
맛에 예민한 미식가를 위한 아이스크림도 만날 수 있다. 아이스크림의 사촌뻘쯤 되는 젤라토가 바로 그것. 일반 아이스크림에 비해 수분 함량이 적어 좀 더 단단하면서 묵직한 젤라토는 아이스크림보다 깊은 맛을 내며 다양한 재료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실버레이크에 있는 ‘파초 젤라토(Pazzo Gelato)’는 이러한 젤라토의 장점을 잘 살린 가게다. 신선한 계절 과일과 허브로 매일매일 적은 양의 젤라토만을 만들어 당일 판매하는 랜덤으로 나오는 다양한 메뉴가 주목할 만하다.
채식주의자가 많은 LA에서는 ‘비건 아이스크림’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많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비건 옵션’을 제공한다. 대부분 우유를 넣지 않은 셔벗으로, 생과일이 듬뿍 들어 달콤하게 즐길 수 있다.
수많은 LA의 아이스크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나 꼽자면 ‘라이트에이드’의 아이스크림이다. 드러그스토어인 이곳은 무엇보다 자사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 수분이 많이 들어 보송보송한, 도대체 크림 함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는 이곳 아이스크림은 일단 가격이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1980~1990년대를 이곳에서 자라온 젊은 세대에겐 추억의 한 부분일 것이다. 주머니는 궁하고 입은 심심할 때 사 먹던 추억의 아이스크림이지만 요즘도 가끔 생각나 사 먹게 된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단맛에 형광색에 가까운 화려한 컬러를 보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때면, 이곳에 산 지 꽤나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LA의 여름은 길다. 어느 여름날 파도치는 해변에서 위험해(?) 보이는 색깔의 아이스크림을 친구들과 하나씩 들고 파도에 발을 담그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기억 속 여름의 잔상이다. 올여름도 그렇게 달콤하고 시원한 즐거움과 함께 쉬이 지나가기를.
글쓴이 척홍(@chohng)
미국에서 나고 한국에서 자란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또한 예술 작가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