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사회적 참사 수준이다. 대진침대에서 방출된 라돈 방사선 피폭 수치가 기준치를 최고 9.3배 초과했다는 2차 발표가 나왔다. 닷새 만에 ‘기준치 이하’에서 ‘기준치 초과’로 결과가 뒤집혔다. 1차 발표에서도 애매한 언급으로 논란을 키웠던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지난 5월 15일 “대진침대가 판매한 침대 매트리스 7종 모델이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의 가공제품 안전 기준에 부적합한 결함 제품으로 확인돼, 수거명령 등 행정조치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던 소비자들은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원안위는 동일 원료를 사용한 제품뿐 아니라 음이온을 방출하는 제품 전반에 대해 전방위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앞서 원안위는 지난 5월 4일 대진침대가 몸에 좋은 음이온을 발생시킨다며 침대 매트리스에 넣은 광물 파우더에서 ‘라돈’이 방출됐다는 의혹이 일자 부랴부랴 조사에 나섰고 지난 10일 라돈 방출량이 기준치 이하라는 1차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내부 피폭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자 외부 피폭은 물론 호흡기를 통해 인체 내부로 들어오는 내부 피폭 모두 국내외 기준치를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급하게 수정했다.
원안위가 섣부른 판단과 상반된 발표로 불신을 자초했다. 소비자들은 충격을 넘어 경악했다. 원안위는 지난 5월 10일 대진침대 뉴웨스턴슬리퍼 모델에 대해 라돈과 토론(라돈의 동위원소)으로 인한 연간 피폭선량을 평가한 결과,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에서 정한 기준치(연간 1mSv 초과 금지) 이하(0.5mSv)인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5일 만에 같은 모델의 연간 피폭선량이 1.94mSv라며 앞선 조사 결과를 뒤집었다. 원안위 발표가 달라진 것은 이번 조사에 매트리스 구성품인 ‘스펀지’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스펀지 없이 속커버에 대해서만 조사했다.
뉴웨스턴슬리퍼 외에 그린헬스2·네오그린헬스·모젤·벨라루체·웨스턴슬리퍼·네오그린슬리퍼 등 6종에서도 라돈과 토론에 의한 연간 피폭선량이 법에서 정한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헬스2의 경우 기준치의 최고 9.35배에 달했다. 라돈은 국제암연구센터(IARC) 지정 1급 발암물질로, 폐암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원안위는 “제품 사용에 따른 실제 피폭량은 개인의 생활 패턴이나 환경에 따라 다양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같은 모델을 보유한 가정은 회수 조치가 완료되기 전까지 제품 사용을 중단하고, 별도의 장소에 보관하거나 비닐 커버 등을 씌워 보관해달라”고 밝혔다.
‘라돈 침대’ 조사 대상 전방위 확대
원안위는 대진침대 매트리스에 포함된 ‘모나자이트’에서 폐암 유발 물질인 ‘라돈’에 의한 피폭이 확인됨에 따라 이 모나자이트의 유통 경로를 파악, 동일 원료를 사용한 제품뿐 아니라 음이온을 방출하는 제품 전반에 걸쳐 조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대진침대 매트리스 제조사가 2013년부터 한 업체에서 사들인 모나자이트의 양은 2,960㎏ 정도로 추정된다. 이 업체는 총 66개 사업체에 모나자이트를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1,000〜4,000kg을 납품 받은 업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안위 관계자는 “모나자이트가 침대와 침구류 등 생활 밀착형 제품에 활용된 사례가 확인되면 추가 조사할 것”이라며 “다른 음이온 방출 제품의 성분에 대해서도 관련 부처와 협의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원안위는 지난 5월 4일부터 10일까지 대진침대 매트리스 속커버(뉴웨스턴·2016년 제조)를 조사한 후, 방출된 라돈 방사선 피폭 수치가 기준치 이하라고 1차 결과를 발표했다. 이 제품에서 측정한 방사능 농도는 토론(Rn-220)이 624Bq/㎥, 라돈(Rn-222)이 58.5Bq/㎥다.
원안위는 이 수치를 근거로 ‘대진침대의 라돈 방출량이 기준치 이하’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호흡 밀착형’ 제품에 대해서는 기준치 자체가 없는 것이 드러나며 논란이 거세지자 1차 발표 하루 만에 수정 자료를 내고 호흡기를 통해 인체 내부로 들어오는 내부 피폭선량도 기준치 이하라고 공식화했다.
대진침대 집단 소송 참여자 크게 늘어
‘대진침대 라돈 사건 집단 소송’ 인터넷 카페 회원 수는 지난 5월 17일 기준 7,000명을 넘어섰다. 집단 소송에 참여하는 소비자들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날 기준으로 600명 이상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번 소송은 법무법인 태율의 김지예 변호사가 사용자들의 위임장을 받아 진행한다. 목표로 하는 보상 금액은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3,000만원이다. 김 변호사는 “소송은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고, 객관적 자료 등을 통해 충분히 배상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원안위의 2차 발표 이후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소비자는 “아무리 조금이라도 라돈이라니, 너무 무섭고 걱정된다”며 불신을 표시했다. 이어 “방사능에 노출되면 책임질 건가요?”라면서 “원안위의 무책임한 발표에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에는 라돈 측정기를 사서 직접 측정해보려고 해도 사기도 어렵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도 침대 관련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지난 5월 16일까지 대진침대와 관련해 접수된 소비자 문의는 881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집단분쟁 조정 신청 참여 의사를 밝힌 건수는 59건으로 확인됐다. 집단분쟁조정 절차는 물품 등으로 인해 같거나 비슷한 유형의 피해를 본 소비자가 50명 이상인 경우 개시할 수 있다.
가구업계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음이온 등 기능성을 강조한 침대 시장 자체가 크지 않지만, 업계 전체로 불똥이 튈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숨죽이고 있다. 한 가구업계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침대를 생산하는 가구업체보다 외주 제작 방식으로 생산하는 업체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기준치 이상이라는 원안위 발표에 따라 침대업계 전반에 불똥이 튈까 봐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1988년 설립된 대진침대는 충남 천안에 있는 직원 27명의 중소 침대 제조업체다. 매출이 2009년 190억원에서 작년에 63억원으로 절반 넘게 줄어드는 등 최근 감소세를 보여왔다. 2015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내면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재 신용등급은 ‘CCC’ 등급을 받고 있다.
대진침대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와 함께 리콜 등의 안내문을 게재하고 있다. 대진침대는 “일부 제품의 리콜 사태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송구하게 생각한다”면서 “문제가 된 제품의 리콜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원안위의 2차 발표로 리콜이 필요한 대진침대 모델은 그린헬스1, 파워그린슬리퍼R 등 17종이다. 관련 모델의 수거에 대한 내용은 원자력안전기술원 홈페이지(www.kins.re.kr)에 공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