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는 대중적인 배우가 아니었다. 꾸준히 작품을 해왔지만 팬층이 두텁지는 않았다. 다양한 팬보다는 정유미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니아 팬이 다수였다. 그런 정유미가 나영석 PD가 새롭게 만든 리얼리티 프로그램 tvN <윤식당>을 통해 첫 예능 나들이에 나섰다.
<윤식당>은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섬에 작은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이다. 정유미가 윤여정과 신구, 이서진과 함께하는 것도 모자라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접한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작품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유미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것. 동시에 나의 스타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봐 불안해했다.
마니아 팬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나영석 PD가 정유미를 캐스팅했다고 알려지면서 그녀에게 관심 갖는 이들이 늘어난 것. 도대체 왜 정유미가 <윤식당> 출연을 결정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높아졌다.
“예능 프로그램은 처음이에요. 나영석 PD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윤여정 선생님이 나온다고 해서 관심이 갔어요. 외국에서 작은 한식당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하기도 했죠. 또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싶어 합류했어요.”
정유미는 단순히 윤여정에 대한 ‘팬심’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설명했다. 첫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한 소감은 어땠을까? 단순한 생각 끝에 내린 결정만큼 순탄하게 촬영을 마쳤는지 궁금했다.
“예능을 찍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보다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웃음) 정신없이 지내는 게 오히려 좋았죠. 며칠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정유미의 말처럼 <윤식당> 속 그녀는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충실히 임했다. 대부분 윤여정과 신구 옆에서 그들을 살뜰하게 챙겼고, 각종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음식을 만들며 정신없는 윤여정 옆에서 채소를 손질하거나 의자에 앉아 쉬는 신구에게 물이 필요하지 않느냐 물으며 싹싹하게 두 사람을 챙겼다. 그뿐만 아니다. 윤식당 영업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선 빨래를 하거나 청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는 정유미를 보며 ‘힘들었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서진 역시 정유미가 첫 예능 프로그램인 데다 막내다 보니 힘들었을 텐데, 며칠 더 있으면 좋겠다는 모습을 보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는 것. 막내의 위치를 겪어본 이들이라면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을 터. 하지만 정유미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힘들어 보였을 수 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한 적 없어요. 힘들다가도 설거지를 하다 보면 마음이 괜찮아졌죠. 그런 마음으로 지냈어요.”
마치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은 며느리가 설거지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야기 같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정유미는 힘들지 않았다는 말과 달리 꽤 고단해했다. <윤식당>에서 이서진과 함께 장 보는 역할을 맡았는데, 3일째 되는 날 피곤하다는 이유로 장을 보러 가지 않았단다.
“아무래도 선생님들이 계시니까 긴장했나 봐요. 열흘 동안 생활해야 하니 밸런스를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던 대로 하면 나중에 힘들 것 같아 하루만 안 따라 나간다고 했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내일을 위해서요.(웃음)”
씩씩함이 한껏 느껴지는 말이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충분히 힘들었을 텐데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모습이 예쁘다.
설거지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는 정유미, 그러고 보니 <윤식당>에서 음식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요리보다는 설거지하는 장면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요리엔 도통 흥미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나영석 PD 말에 따르면 정유미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잘하진 못한다. 이 점을 알고 윤여정이 요리를 하니 설거지만 하면 된다고 설득해 <윤식당>에 출연시켰단다. 나영석 PD의 말처럼 정유미는 요리하는 게 재미있어서 한때 요리를 취미로 가졌었다. 작품을 쉬는 동안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요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며 당시의 이야기를 한 매체에서 밝힌 바 있다.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쿠킹 클래스에 나간 적도 있고요. 그런데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망쳤다기보다 양을 못 맞춰서요.(웃음) 손맛은 있는 것 같은데. 그 이후론 재료를 사서 소소하게 혼자 잘해 먹고 그래요.”
한식을 만들고, 파스타와 디저트를 만들 정도로 취미 생활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먹는 사람 수에 따라 양을 조절하지 못하고, 레시피에 적힌 양만 요리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레시피가 보통 4인분 기준이라 5인분 이상은 못 한다는 것. 그래도 레시피대로 만들어 지인에게 선보이면 반응이 나쁘지 않다며 손맛은 있는 것 같다고 귀여운 변명을 했다.그렇다면 정유미는 평소에 어떤 음식을 먹을까? 스케줄이 일정하지 않아 쉴 때만이라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한단다. 그렇다고 특별한 음식은 아니다.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유기농 식품을 사 먹는 정도다. 다만 한 가지에 꽂히면 계속 그 요리만 만들어 먹는다고. 한 인터뷰에서 한때 삼겹살 두 덩이에 파를 많이 넣는 요리에 꽂혀 밤에 찾아 헤맨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번은 밤 11시에 운동이 끝났는데 끝나자마자 파랑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은 거예요. 혼자라도 집에 가서 구워 먹겠다는 심정으로 파와 삼겹살을 찾아 헤맸어요.(웃음) 그런데 집 근처에는 없더라고요. 마침 밤 12시에 문 닫는 마트를 찾아서 구워 먹을 수 있었죠.”
밤 12시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니. 그럼에도 한 손에 쏙 들어올 것 같은 가녀린 몸매가 정유미의 트레이드마크다. <윤식당>에서도 전투적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걸 보면 그녀의 아담한 몸은 타고났으리라 짐작된다. 딱히 다이어트를 하진 않는 듯했지만 체력 관리를 위해 운동은 꾸준히 한다.
“작품을 하지 않으면 영화나 책을 보거나 운동을 해요. 잡생각을 떨쳐내기에도 좋더라고요. 또 제가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마음의 준비는 물론 체력적인 준비도 돼야 한다고 생각해 운동을 하고 있어요.”
여러 인터뷰에 따르면 정유미는 운동 마니아였다. PT도 받고, 킥복싱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운동에 도전했단다. 그중에서 필라테스는 꾸준히 하고 있다. 작품 활동을 할 땐 어쩔 수 없이 못하지만 작품이 끝나면 어김없이 다시 시작한다. 그런데 운동을 많이 해도 눈으로 보이지 않는 편이라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운동을 한다고. 이렇듯 정유미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도 불평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윤식당>을 통해 정유미를 지켜본 김대주 작가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해맑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즐길 줄 안다”고 그녀를 평가했다. 즐길 줄 안다는 말을 들으니 정유미 때문에 열풍이 분 영화 <히말라야> 인증샷 사건이 떠올랐다.
정유미는 2015년 영화 <히말라야>에서 히말라야를 등반하다 사망한 고(故) 박무택이 사랑한 여인 최수영 역으로 출연했다. 정유미는 영화 관람 후 재미 삼아 극에서 엄홍길 대장으로 출연한 황정민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를 얼굴에 대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황정민 얼굴을 탈처럼 쓴 모습이 정유미의 장난기를 한껏 느끼게 했다. 사진을 본 이들이 이를 재미있다고 느꼈는지, 너도나도 정유미의 포즈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정유미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히말라야> 포스터 인증샷 찍기가 유행처럼 번졌고, 결과적으로 영화 마케팅 효과를 냈다. 하지만 마케팅을 노리고 인증샷을 찍은 건 아니었다. 정유미는 친구가 사진을 찍어줬는데 너무 재미있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었지만 메인 캐스트가 아니라서 조심스러웠다고. 결국 매니저한테 물어본 뒤 사진을 올렸다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후 정유미는 네티즌이 찍은 다양한 인증샷을 다시 따라 한 사진을 올려 보는 이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실제로 정유미는 인스타그램을 꽤 열심히 한다.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영화 <주토피아>를 보고 추천 게시물을 올리고, 댓글을 달아 정유미의 팬과 소통했던 에피소드도 있다.
당시 정유미는 <주토피아>에서 말과 행동이 느린 나무늘보에 빙의해 “ㄴ...ㅓㅁ.....ㅜ좋............아.......요오...”라고 글을 썼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ㅃㅏㄹ리...가서어...”라며 댓글을 달았다. 나무늘보처럼 느린 댓글에 답답한 팬들이 제발 빨리 말해달라며 고통을 호소해 웃음을 자아냈다. 재치 넘치는 게시물에도 불구하고 정유미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한 인터뷰에서 외로워서 시작했는데, 자신이 올린 사진을 놓고 사람들이 다르게 보는 것이 신기해 재미있다고 이야기했다.
사소한 것에도 재미를 느끼는 모습을 보니 정유미는 항상 해맑게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것 같았다. 그러나 의외로 고민도 많았다. 특히 대중이 바라보는 정유미와 진짜 정유미 사이에서 오는 괴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보다 훌륭한 캐릭터를 맡았고, 그 역할에 비하면 자신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밝혔다. 그저 배우로 몫을 다했는데 칭찬받고 이미지가 좋아질 때 스스로 작아지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단다. 좋은 이미지로 보이는 것인데 그게 마냥 좋은 일이 아닌 거 같단다. 괜히 한번 잘못하면 큰일 날 것 같아 아주 조심스럽다고.정유미는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자신 역시 캐릭터처럼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듯해 부담스러웠다고, 당시 너무 예민해서 누군가의 말이 가슴에 꽂힐 때가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런데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캐릭터를 통해 성장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배우인지 생각하면서 극복했다고. 그런 마음이 지금이라도 생겨 다행이라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고민 모두 정유미가 얼마나 진솔한 사람인지 느껴지게 했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레 <윤식당>을 본 시청자가 정유미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다. 첫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구 없는 매력을 드러낸 정유미,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그녀의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