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서 있는 이곳은 ‘룽탕(골목을 뜻하는 말)’, 서민들이 사는 가옥들 사이로 만들어진 오래된 골목이다. 좁고 어두운 룽탕을 처음 방문한 필자는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길 끄트머리에 위치한 국숫집은 몇 위안의 동전을 내고 국수를 사 먹으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홀로 가게를 찾아온 필자는 주인이 건네는 국수 그릇을 들고 어디에 앉을지 고민하다 가장 점잖아 뵈는 아저씨 앞에 앉아 면발을 ‘흡입’했다. 고픈 배를 채우니 슬슬 독특한 건축양식이 눈에 들어온다.
1850년대 서양의 건축 스타일로 만든 돌문을 보니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라는 게 더욱 실감 난다.골목을 걷다 보면 상하이 대표 미식 거리로 불리는 ‘우장루’를 만난다. 정문 옆엔 ‘장위엔 99’라는 새로운 카페, 바, 레스토랑이 들어선 공간이 있다.
요즘 상하이에서는 핫한 레스토랑이 골목에 들어서는 게 유행이다. 상하이의 스페셜 티 카페로 유명한 ‘온에어 카페’도 화이하이루의 룽탕 안에 위치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간판도 없이 들어앉아 있는 카페는 상하이 토박이도 찾기 어렵다. ‘찾을 테면 찾아보라’는 배짱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고건축을 헐어내고 까만 기와와 나무 질감의 건축 자재를 써서 리모델링한 이 카페를 찾기 위해 필자는 좁은 골목에서 대충 짐작 가는 문을 모두 열어보아야 했다.
더 재밌는 카페는 ‘시소커피(seesaw coffee)’다. 스페셜 티 카페 열풍을 몰고 온 이곳은 제2의 스타벅스를 꿈꾸는 중국 젊은이들이 모여 만든 카페로, 중국의 대표 SNS인 웨이보와 디자인 회사가 상주하는 건물의 차고에 위치해 있다.
“작은 등 하나 없는 이런 어두운 곳에 카페가 있다고?” 하며 헤매는데 주차장 관리인이 묻는다. “카페이(커피) 마시러 왔나요?” 컴컴한 차고를 통해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투명한 유리창으로 된 천장으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카페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공간답게 다양한 20대, 30대들이 모여 커피를 공부하고 커피 향을 맡으며 내일을 얘기하는 모습이 평온해 보인다. 상하이엔 이렇게 과거의 장소에 새로운 공간이 들어서며 상상도 못한 근사한 결과물을 내는 경우가 많다.
1910년대 상하이에 지어진 영국 경찰서 건물은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당시의 돌과 기와로 바닥을 장식해 고풍스러운 느낌을 살렸고, 건물 안의 좁은 계단과 작은 창도 그대로 살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의 창고로 쓰이던 ‘와이탄’의 한 폐건물은 부티크 호텔로 바뀌면서 몇 년째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상하이의 대표 호텔로 손꼽히고 있다. 녹슨 철 구조물이며 노출 천장도 당시의 회색 콘크리트를 그대로 살렸다.
버려진 우체국 창고를 쾌적한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탄소중립 부티크 호텔’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 자재 역시 우체국 창고의 벽돌이라든지 목재 등을 있는 그대로 재활용했고, 호텔 객실 안에 6m²의 녹색 공간을 만들어 쾌적함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상하이는 거리 재정비 사업이 한창이다. 매일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며 도시의 이미지도 바뀐다. 그 틈바구니에서 과거와 추억을 이야기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힐링을 안겨주는 이런 공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고 싶다면 룽탕 나들이를 추천한다.
글쓴이 서혜정씨는…
2004년 중국 생활을 시작했고 2007년부터 상하이에 머물고 있다. 상하이의 문화와 명소, 일상을 블로그에 올리며 매거진 해외 통신원, 방송 리포터, 프리랜스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상하이외국어대학교 출판사의 한국어 성우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