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책방
쓰다,
나는 그것을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모님이 여행으로 집을 비웠다. 나는 처음으로 집 근처 비디오방에 '비디오'를 빌리러 갔다. 거래가 없던 비디오방에서는 내가 믿을 만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아무래도 학생 부모님과 통화해야겠어요." 나는 강하게 항의했다. "부모님과 통화해서 허락받을 수 있는 거면 제가 왜 부모님이 여행 갔을 때 빌리러 왔겠어요?" 그때 내가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이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이었다.
"예술인가, 외설인가"라는 통속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영화를 그때는 결국 빌리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어디선가 보았다. 영화보다 오히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원작을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라는 작가였다. 발음하기 낯선 이름을 가진 그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눈을 못 마주치는 '중국인 남자' 양가휘의 떨림 앞에 아무렇게나 땋아 내린 머리와 낡은 흰색 원피스에도 불구하고 당돌하게 빛나던 '소녀' 제인 마치의 얼굴이 고스란히 작가의 인상이 됐다.
마르그리트 도나디외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는 1914년 베트남 사이공 근교의 지아딘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프랑스인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온 식민지에서 교사로 발령돼 새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젊은 아버지는 풍토병에 걸려 뒤라스가 어렸을 때 요양을 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 뒤 그곳에서 죽었고, 어머니는 교사뿐 아니라 온갖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다가 땅 사기를 당해 파산하고 만다. 뒤라스의 삶은 지옥이 되었다. 가난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능한 데다 방탕한 큰오빠는 툭하면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딸을 멸시하고 딸의 꿈을 하찮게 취급했다. 그가 한평생 돌아보며 그려낸 작품 속에서 어머니의 그림자는 크다.
고등학교를 마친 17살의 뒤라스는 프랑스로 영구 귀국해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수학,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이후 식민지청에서 비서로 일했으나 퇴직하고 2년 뒤인 1943년 첫 소설 <철면피들>을 출간한다. 그는 곧 촉망받는 작가가 돼 작품들을 쏟아낸다. 공산당원, 레지스탕스로도 활동했고 알렝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쓰며 직접 영화 제작과 연출에도 나서는 등 그의 삶은 부단한 저항과 활발한 참여의 연속이었다.
1984년에 쓴 <연인>은 그에게는 각별하다. 그 책으로 콩쿠르상을 수상하고 영화화된 뒤 세계적인 인기를 모아서만은 아니다. 1930년대 베트남에서 있었던 열다섯 살 반의 가난한 프랑스 소녀와 30대 후반의 부유한 중국인의 사랑 이야기는, 노인이 된 뒤라스가 서른다섯 살 연하의 연인 얀에게 구술한 것을 녹취하는 형태로 쓰였다. 생애 첫 사랑과 마지막 사랑이 이곳에서 만난다.
그에게 글이란 무엇이었을까. 올해 나온 책,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은 그가 글과 맺고 있는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게 바로 글쓰기다. 글의 행렬이 몸을 거쳐 간다. 몸을 관통한다. 바로 그것이 말하기 어려운, 너무도 낯선, 하지만 한순간 우리를 사로잡는 그 감정들에 대해 말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 지점에서 보고 싶어진다. 낡은 중절모 밑 갈래머리 소녀의 눈빛 같은 그, 출발점.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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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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