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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스트 민아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민아가 활짝 웃었다. 예쁘다. 러블리스트답다.

On September 22, 2016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아는 하고 싶은 것도, 고민도, 걱정도 많은 스물다섯 청춘의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그 고민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녀 공심이>가 끝났을 때 더 커졌다. 드라마에서 민아는 어눌하고 자신감 없는 공심이를 표현하기 위해 특유의 러블리한 매력은 잠시 숨겼다. ‘똑단발’ 가발을 썼고 연한 화장을 했다.

예뻐 보이기를 포기한 민아를 향한 평가는 분분했다. 걸그룹 타이틀을 벗은 과감한 도전이라는 호평과, 검증되지 않은 신인 연기자의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혹평이 엇갈렸다. 고민의 지점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내가 과연 타이틀 롤을 맡아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강했어요. 그동안 여러 작품을 해왔지만 저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는데, 막상 지상파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으니 부담감이 크더라고요.”

엇갈리는 평가는 민아에게 상처였다. 댓글이 보기 싫어 인터넷을 멀리했지만 어쩔 수 없이 댓글을 찾아보게 되더란다. 가슴 시리도록 아픈 댓글에 상처받고 울기도 했다.

“댓글을 안 보려고 해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금세 회복했어요. 저의 한 가지 장점을 꼽으라면 안 좋은 건 금방 잊는다는 거예요. 기분이 한없이 다운돼 있다가도 촬영장에만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나죠.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신감 없는 그녀를 위로한 건 공심이였다. 민아는 자신과 비슷한 공심이에게 끌렸고, 그 이끌림은 순식간에 애착이 됐다. “공심이의 자신 없고, 자존감 낮은 모습이 저와 비슷해요. 저도 평소에는 사람들과 대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혼자 지내거든요. 겉으로 볼 땐 밝고 긍정적인데 그 이면엔 걱정도, 고민도, 잡생각도 많아 그런지 공심이에게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무대 위에서, 또 브라운관 속에서 당찬 그녀를 보고 누가 의기소침한 소녀를 상상할 수 있을까. 기자를 당황시킨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아 속앓이를 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에 바보같이 군 적이 많아요. 남이 상처받는 것보단 내가 상처받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할 말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공심이를 응원했어요. ‘좀 더 질러!’ 하면서요. 누군가에게 내 생각과 의견을 전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친구들과 자유롭게 쇼핑을 한다거나, 또래처럼 클럽에서 소리 지르며 스트레스를 풀 수 없는 환경이 그녀를 소극적인 성격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민아는 힘들고 지칠 때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힐링을 대신했다.

“글을 끄적거리면서 생각을 정리했어요. 덕분에 작사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죠.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정돈하고 참았어요. 술도 잘 못 마셔요. 맥주 한 잔이면 몇 시간이고 수다 떨 수 있어요. 어른들은 술맛을 알게 될 나이가 올 거라고 하는데… 글쎄요. 아직은 알고 싶지 않아요.(웃음)”

2010년 걸스데이로 데뷔 후 6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지금, 뜻하지 않게 고민이 시작됐다.
“제 또래가 그렇듯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앞으로 나는 뭘 해야 할까 하는 불안감이 가득하죠. 가수도 했고, 연기도 했는데 가야 할 길이 멀게만 느껴지죠. ‘민아’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를 생각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고민하고 있다는 건 비로소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단언컨대 미래를 고민하는 민아의 미래는 밝고 화창하다.
“복합적인 감정이에요. 후회스러운 면도 있고 반성되는 부분도 있어요. 그땐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싶은 마음이죠. 그래서인지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 직업은 너무 좋은데 이걸 지치지 않고 하려면 다른 것들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경험으로 ‘죽을 만큼 아픈 사랑’을 꼽더니 수줍게 웃는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꿈도, 비전도 많은 스물다섯 청춘답다.
“떠나는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정도로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보고 싶어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 주변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빠지는데도 자존심이 세서 제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랑하지 못하죠. 어떤 남자를 만나야 자존심도 버릴 수 있을까요?”

민아가 공심이를 사랑하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었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아파하는 공심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민아는 아직은 이별이 두렵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직진할 수 있는 건 용기예요. 순수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에요. 말 그대로 걸 크러시죠. 저는 순수하지도 못하고 용기도 없기 때문에 그러지 못해요. 드라마 속에서라도 해볼 수 있어서 속 시원했어요. 앞으로는 현실에서도 한 번쯤 무조건 직진해볼 수 있겠다 싶었고요.”

민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에게 “기자님은 진정한 사랑을 해보셨어요?”라고 물으며 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아는 지금 풋풋한 스무 살에서 예뻐 보이고 싶은 서른 살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저도 여자인지라 예뻐 보이고 싶어요. 아마 할머니가 되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예뻐 보이고 싶은 날엔 풀 세팅을 하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마지막에 하이힐을 신었을 때 생기는 자신감이란! 저는 굽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분이 좋아요. 평소에는 수분팩을 자주 하는 것으로 피부 관리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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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치장하는 가요 무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대로도 예뻤다. 철저하게 캐릭터화되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과 비슷할 게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걸그룹 메인 보컬 민아에서 여배우 민아로 성장하는 중이니까.

“ 걸스데이 활동으로 한창 바쁠 때는 거의 2년을 하루도 쉬지 못했어요. 행사, 활동, 행사, 활동이 반복됐죠. 이동하면서 하루 종일 차에 몸을 싣고 있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땐 그래도 어느 정도 스케줄이 파악됐는데, 연기는 그게 아니더라고요. 7시간을 대기한 적도 있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민아가 힘들 때 버틸 수 있었던 건 당연히 걸스데이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가도, 누구를 만나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멤버들을 두고 민아는 “친정 같다”고 말했다.

“걸스데이는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예요. 존재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죠. 돌아갈 수 있는 집 같은 공간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평안을 줘요. 연기 활동을 할 때도 걸스데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원천이 돼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멤버들이다. <딴따라>에 출연하는 혜리와 동시간대 시청률 싸움을 해야 했을 때도 서로를 응원했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연기 이야기로 이어졌다.

“사실은 제가 연기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가수로 데뷔했기 때문에 연기자에 대한 꿈이 없었달까요. 처음 연기 제안을 받았을 땐 ‘신기하다’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컸어요. 해가 지날수록 욕심이 생기니까 ‘이것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어느 순간 마이크보다 대본을 들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치부하기엔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크다. 처음과 같을 수도, 같아서도 안 된다. 민아는 그동안 연기 잘하는 선후배 연기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성장했다.
“대본을 보는 것부터 이해하는 방법까지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그냥 ‘연기가 이런 건가?’ 하고 재미있게 했다면 지금은 캐릭터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해요.”

캐릭터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 데는 선배 배우 남궁민의 역할이 컸다. 민아는 그가 자신을 성장시킨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모르는 게 많았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요. 이번에 남궁민 오빠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아, 내가 이만큼 캐릭터를 생각해야 하고 몰입해야 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됐죠. 캐릭터를 대하는 자세가 확실히 좀 더 진중해진 것 같아요.”

민아는 똑똑하다. 인기에 취하지 않고 겸손할 줄 아는 연기자다. 욕심을 부리기보단 지금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찬찬히 해나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똑 부러지는 말투와 눈빛에서 다부진 각오가 느껴졌다.

“스스로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민아가 이런 도전을 했구나’ 정도로만 평가받아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할 위치도 아니고요. ‘주인공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과욕이죠. 저한테 맞는 옷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차근차근 꾸준히 조금씩 보여드리고 싶어요.”

데뷔 후 쉼 없이 달려왔으니 여유를 즐길 법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민아는 이내 입을 열었다.
“쉬어도 되는 건지 고민스러워요. 완전히 저를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절대로 팀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커요. 또 데뷔 초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늘 지금에 감사하고요.”

민아는 곧 부모님과 여행을 떠난다. 여행 버킷리스트였던 파리다.
“엄마랑 둘이서 여행 가기로 했어요. 편히 쉴 수 있는 휴양지와 평소 가보고 싶었던 파리 중어딜 갈까 고민했는데 결국 파리로 정했죠. 물론 모든 경비는 제가 낸답니다.(웃음) 엄마도 기대하시는 눈치더라고요. 뿌듯하고 기분 좋아요. 여행하면서 많이 보고 느끼고, 많이 생각하고 올게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민아. 사랑스럽다는 표현은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CREDIT INFO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김선아
2016년 09월호
2016년 09월호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김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