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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마마의 자연 담은 집

비 내리는 정원에서 엄마는 우산을 받쳐 쓴 채 꽈리를 따고 딸은 조용히 과일을 깎아 그릇에 담았다. 정갈한 다과상을 앞에 두고 여자들의 깊은 수다가 시작됐다.

On August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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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마마 이혜정(요리연구가)과 그의 딸 고준영(키친스토리 대표)을 만나러 간 날은 비가 내렸다. 하늘은 어두웠지만 마당의 잔디와 풀 이파리, 채소는 물기를 머금고 더욱 푸르렀다.

“비 오는 날에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그마한 체구에 흰색 블라우스를 산뜻하게 갖춰 입고 짧은 머리를 단정하게 매만진 이혜정이었다. 짙은 아이라인의 생기발랄한 그녀가 부엌 겸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전구를 켠 듯 공간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간밤에는 새벽 4시에 들어왔답니다. 녹화가 끝나고 친한 친구 생일 파티에 다녀왔거든요. 4시간 정도 잤더니 피곤하진 않아요. 원래 많이 자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다들 고생하시는데 여기 깎아놓은 과일 좀 먹어봐요. 촬영은 이따가 후다닥 하면 되잖아. 얼른 들어봐요.”

이혜정은 가지각색 접시에 담아낸 복숭아에 포크를 꽂아 기자 손에 덥석 쥐어줬다. 촬영을 준비하는 포토그래퍼와 옷을 다림질하는 스타일리스트 손에도 직접 쥐어 주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켜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탱탱볼 같다.

“잡지 인터뷰 진~짜 오랜만이에요. 한동안 왜 안 했느냐고요? 은행에 갔는데 어떤 여자분이 잡지를 보면서 내가 나온 페이지를 휙 넘기더라고요. 그래서 ‘아이, 내가 궁금하지 않은가 보다. 인터뷰 그만해야지’라고 생각했답니다. 보기보다 소심한 면이 있지요?(웃음)”

딸 고준영 대표가 들어왔다. 그녀는 옷이 걸린 행어로 다가가 엄마의 의상을 꼼꼼히 살폈다. “앞치마는 회색보다 쪽빛으로 했으면 좋겠는데요. 허리에서 묶는 게 더 예쁜 것 같기도 하고.” 야무진 눈썰미가 역시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엄마~ 인터뷰 너무 길게 하지 말아요. 기자님 힘드셔.” “얘는 뭘 모르는 소리 하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풀어내야 기사 쓰기가 편하시다니까. 내 말이 맞죠, 기자님?” 모녀의 말다툼이 귀엽다.

“인스타그램도 시작했어요. 맞춤법을 틀려 민망하지만 그래도 뻔뻔하게 글 올리고 있어요.(웃음) 그런 때 있잖아요. 오이김치를 담그다가도 ‘여름에 김치 담글 때는 젓갈을 많이 넣지 말고 소금만 넣으면 훨씬 아삭하고 시원해’라고 누군가에게 당장 알려주고 싶은 순간이요.

그럼 얼른 핸드폰을 꺼내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자판을 두드리지요. 댓글이 주르르 달리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악성 댓글은 없냐고요? 종종 따끔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긴 해요. 그런 댓글도 고맙던데요? 귀에 좋은 말만 듣다 보면 사람이 교만해지고 재미없어져요. 상쾌한 충고는 사람에게 약이거든요.”
 

MBC<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이혜정의 방송을 볼 때마다, 빠르게 늘어나는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소통하는 그녀에게 감탄하곤 했다. 비결을 물어보니 “난 젊은 사람들이 좋거든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저보고 나잇값 못 한다고 하는 분들 있는 거 알아요. 그런데 나잇값 하면 뭐 해요? 철들면 또 뭐 해요? 저는 늙기 싫어요. 나이 들기 싫다는 게 아니라 괜한 아집이 생기는 게 싫다는 이야기예요.

준영이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서 수다 떨고 노는데, 그러다 보면 제 나이를 잊어버려요. 집에 와서 ‘너무 철딱서니 없었나?’ 하고 후회도 종종 하지만요.

악성 댓글 보면 ‘빅마마는 젊은 남자 게스트를 더 좋아하는 게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고, 준구 아빠도 가끔 ‘방송에서 너무 티 내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저는 말해요. ‘준구 아빠, 한번 입장 바꿔 생각해봐. 내가 좋아? 아니면 젊은 여자가 좋아?’ 그러면서 서로 깔깔 웃고 말죠.”

때마침 ‘준구 아빠’라 불린 이혜정의 남편 고민환 교수가 부엌에 들어섰다. “당신이 새로 배달시킨 의자, 마당 소나무 아래 놨는데. 위치 괜찮아?”

“조금만 옆으로 옮기려고요. 발코니 쪽으로.” 일상적인 대화지만 정다움이 묻어난다. “일본에서 장모님 드실 약은 사 왔어? 그럼 됐어. 인터뷰 잘해”라더니 고 교수는 쿨하게 퇴장했다.

“준구 아빠가 장모님을 극진히 챙긴답니다. 두 분 성향이 비슷해요. 저는 우리 아버지랑 꼭 닮았고요. 나이가 60인데도 아버지 생각하면 그렇게 눈물 나고 좋아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분이세요. 엄격하면서도 늘 따뜻하시죠.

유학 가셨을 때도 딸한테 입힐 코트 산다고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외국의 도시를 다 뒤지셨대요. 생활비를 아껴 사다 주신 그 코트에 담긴 사랑이 귀해 옷이 작아진 후에도 버릴 수 없었어요. 아버지 같은 부모가 되고 싶었는데 그 절반도 못 따라간 것 같아요.” 이혜정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고요. 어렸을 때는 엄한 모습에 늘 무서워했지만 돌아보니 대단한 여인이에요. 어머니는 만석꾼의 딸이었고 당시로선 최고의 학교에서 공부한 재원이었어요.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의 수재이셨고요.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분이 함께하는 것이 쉬웠겠어요?

그런데도 늘 최선을 다하셨어요. 손님이 누가 찾아오든 늘 반갑게 맞이하고, 보낼 때는 꼭 차비를 손에 쥐여주셨어요. 그런 부모님을 두었으니 제가 복이 많아요.”

철모르던 20대 초반 이혜정은 별 생각 없이 결혼했다. 발랄했던 그녀가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다 그만두고 싶던 때도 있었다”고 그녀는 웃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부모님이었다.

“저보다 더 아파하실 두 분을 생각하니까 ‘버텨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힘든 시기를 넘기니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더라고요. 우리 남편의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했고요. 그러던 중에 남편을 따라 대구로 이사를 갔어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으로 갈 때는 몰랐죠. 내 인생에 어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지를 말예요.”

대구에서 이혜정은 늘 집에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다음에는 집 안 청소를 하고, 하교 시간에 맞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놓았다. 답답하고 무료하던 중에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손재주가 있어 음식을 잘했거든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이웃과 같이 먹고 싶더라고요. 우리 남편이 짠돌이인데 단 하나, 식재료를 살 때는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더란 말이죠. 시장에도 같이 따라가주더라니까요. ‘한번 맛있게 만들어봐. 대신 절대 버리면 안 돼’ 이 한마디만 하고요.”

마냥 좋았다. 음식 접시를 들고 문을 두드렸을 때 이웃이 짓는 환한 웃음도 좋았고, 때로 간이 안 맞거나 태운 음식을 대접해도 ‘깔깔 웃으며’ 가까워지는 과정도 좋았다. 단출한 음식도 나눠 먹으면 몇 배나 맛있었다.

그렇게 이혜정의 요리는 입소문이 났고 이웃들의 요청에 요리 교실을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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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제 첫 요리 수업 장면이 떠올라요. 재료비를 아끼려고 새벽에 도매시장에 가서 신선한 식재료를 샀지요. 메뉴는 샤부샤부, 춘권말이, 캘리포니아 롤이었어요. 미국에 갔을 때 식당에서 캘리포니아 롤을 먹고는 맛있어서 요리사에게 만드는 방법을 물어보았거든요.”

위기인 줄 알았는데 기회의 시간이었다. 요리를 만들며 아이들에게 조리 과정을 설명해주던 것이 지금의 ‘빅마마 화법’을 만들었다. “얼~마나 맛있게요?”로 대표되는 그녀만의 독특한 말투가 그때 탄생했다.

“방송국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촬영하는데 다들 놀라더라고요. 어쩌면 그렇게 말을 잘하냐고, 베테랑 같다고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 나누던 시간이 훈련의 시간이었던 거죠.

목소리가 낭랑하다는 칭찬도 그때 처음 들었어요. ‘외모는 그닥인데 목소리가 참 좋네’라는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하나라도 좋으면 된 거 아니에요? 가끔 거울 보다가 스스로 되게 예뻐 보일 때도 있으니까 상관없어요.(웃음)”

그렇게 이혜정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요리를 더 잘하고 싶어 유학도 다녀왔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선생님은 이혜정에게 ‘빅마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런 그녀도 막상 딸 준영이가 요리를 하겠다고 했을 때는 내심 놀랐다.

공부를 곧잘 했고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따라 의사나 교수가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옆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고준영 대표가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는 제 일상이었어요. 엄마 옆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조리법을 익혔답니다. 엄마가 수업을 하고 나면 제가 간단하게 디저트를 만들어 수강생들에게 맛보도록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한번은 제가 만든 디저트를 구입하고 싶다며 단체 주문이 들어온 거예요. 디저트를 굽고 포장하느라 밤을 샜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힘들고 행복한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요리를 해야 되겠다’고요.”

고 대표는 곧바로 요리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미국의 명문 존스앤웨일스 전문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떨어지면 민망하니까 엄마에게는 비밀로 했는데 다행히 붙었죠.(웃음) 고생 좀 했어요. 낯선 전문용어에 익숙해지느라 시간이 걸렸거든요. ‘요리연구가 이혜정 선생의 딸’이라는 게 학교 내 한국인 학생들에게 알려지며 오해도 받았어요. 당시에는 마음고생을 했지만 돌아보면 그 덕분에 외국인 친구들과 더 가까워져 지금도 연락하니까 전화위복인 셈이죠.”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찾아내는 마인드는 모녀가 꼭 닮았다.

“요리사로서 ‘요리연구가 이혜정’을 진심으로 존경해요. 나이에 갇히지 않는 크리에이티브한 감각이 부러워요. 생각지도 못한 식재료를 추가하는 하나같이 다 맛있어요. 얼마 전에는 아스파라거스로 피클을 담갔는데 한입 먹어보고 맛있어서 놀랐다니까요.”

엄마와 딸이란 복잡 미묘한 관계다. 이 모녀 역시 투닥투닥 싸울 때도 있다. 같은 길을 걷기 때문에 더 그렇다. 서로의 진심을 아니까 괜찮다. 딸은 엄마를 존경하고 엄마는 딸을 존중한다. 그렇게 모녀는 함께 동료로, 비즈니스 파트너로 살아가는 중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저는 스타 셰프보다는 스타 농부가 나와야 된다고 봐요. 안전하고 맛있는 식재료가 없다면 요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원산지 대신 농부의 이름을 표시해야 하고, 신뢰할 만한 농부들이 맘 놓고 농사지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해요. 제가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딸이랑 같이요!”

인터뷰하고 촬영을 하는 내내 모녀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비 내리는 정원에서 우산 없이 서로를 마주보며 깔깔 웃는 모습이 정다운 친구 같았다.

“이혜정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많지만, 저는 결국 ‘엄마’예요. 그 이름이 저를 강하게 만들어줬어요. 세상이 아직 저를 궁금해하니 고마워요. 하지만 스포트라이트가 사라져도 괜찮아요. 저는 여전히 준구와 준영이의 엄마니까요.”

“다음에는 내 단골 바에 같이 놀러 가요.” “엄마가 담근 아스파라거스 피클을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주소 남겨주세요.” 푸근한 인심까지 꼭 닮은 모녀가 함께 해나갈 일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CREDIT INFO
취재
정지혜 기자
사진
하지영, 민기원
헤어
성효진
메이크업
박장연
스타일링
민희진, 김주선, 호진영
의상협찬
JIGOTT, 미오뜨레, ACC, REX, 소담소담
2016년 08월호
2016년 08월호
취재
정지혜 기자
사진
하지영, 민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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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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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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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김주선, 호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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