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미스코리아, 미스유니버스 2위, 세계가 인정한 미녀. 장윤정을 수식하는 익숙한 문장들이다. 1987년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뒤 이듬해 미스유니버스 2위에 오르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미녀’로 인정받은 그녀는 1990년대에 각종 방송 프로그램의 MC로 활약하다 1999년 홀연히 연예계를 떠났다. 그로부터 16년 후, 이제는 배우가 되어 돌아온 장윤정을 만났다.
한동안 내리던 비가 멎어 화창한 오후, 직접 차를 운전하고 공영 주차장에 세운 뒤 내려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장윤정이 보였다. 흰색 티셔츠에 물 빠진 청바지 그리고 단화. 소박한 차림이지만 굴욕 없는 늘씬한 몸매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화보 촬영은 18년 만이네요. 예전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해서 화보를 찍어야 할지 고민 많이 했어요. 주변에서 꼭 하라고들 하니 승낙했지만 그날 이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준비한 의상이 정확하게 딱 맞았고 이국적이고 또렷한 이목구비는 진한 화장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살쪄서 걱정이라고 한 말, 다 엄살이었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장윤정이 일갈했다. “지금 배에 힘을 잔뜩 줘서 숨도 못 쉴 지경이에요.”
촬영이 시작됐다. 화려한 원피스와 하이힐로 단장한 장윤정이 카메라 앞에 섰다. “잠깐만요, 이 모습 휴대폰 사진으로 좀 찍을게요. 우리 애들이 보면 얼마나 놀랄까?” 조금 긴장한 얼굴에 미소가 스치는 걸 보며 그녀에게 두 딸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그녀의 큰딸 효원(15세)이는 서울에 소재한 국제학교에 재학 중이고, 둘째 딸 효진(10세)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동안 처음에는 제가 연예계에 몸담은 적이 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큰딸이 유치원에서 돌아와 묻는 거예요. ‘엄마, 미스코리아가 뭐야? 사람들이 엄마가 미스코리아래.’ 그래서 말해줬죠. ‘응, 미스코리아는 한국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말하는 거야.’ 그랬더니 우리 딸이 뭐라 했는 줄 아세요? ‘뭐?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미스코리아가 된 거야?’(웃음) 애들은 지금도 엄마가 영화를 찍고 인터뷰하는 걸 신기해한답니다. 화보 찍는다고 했을 때도 놀라던걸요. ‘엄마, 다시 말해봐. 지금 뭘 하러 간다고?’ 이러더라고요.”
만일 두 딸이 화보 촬영에 동행했다면 엄마가 미스코리아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풍성하게 빗어 내린 머리,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여신 드레스의 장윤정에게서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제도 그렇게 차려입었고 내일도 그렇게 단장하고 다닐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정작 그녀는 “나 너무 표독스럽지 않아요? 백설공주 괴롭히는 새엄마 같아” 하며 깔깔 웃어넘겼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이렇게 고운 옷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하니까 떨리면서도 참 좋네요. 미국에 있을 때는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들과 시간 보내고 하니 늘 편한 차림으로 지냈거든요. 영어도 잘 못하니 제 친구는 우리 두 딸이었어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장윤정은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에 정착했다. 지인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 김상훈씨를 만나 첫딸을 낳은 이후였다. 어릴 때부터 시작한 연예계 생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며 점차 버거움을 느꼈다는 장윤정. 미국에서 가족들과 보낸 안온한 생활은 그녀에게 온전한 쉼의 시간이었다.
“17세 때부터 시작했으니 참 어린 나이였지요. 닥치는 대로 일만 했어요. 그 당시엔 전문적인 매니지먼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보니 버거웠고 점차 비관적으로 변해갔죠. 제가 무용을 전공했는데, 연예계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힘에 겨워 어느 순간 놓아버린 게 너무 속상했어요. 대학 다닐 때도 방학 때 친구들은 해외에 나가 공연을 하고 자기들끼리 연습도 하며 발전하는데, 저는 일만 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이런저런 요소들이 쌓여가며 점점 더 힘들어졌죠.” 한 차례 이혼의 아픔을 겪는 등 힘든 시간 끝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고지식하지만 한결같이 든든한’ 남편과 함께 먼 이국으로 떠날 때도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대중에게 잊힌 채 오로지 가족들에게만 집중하는 삶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행복했어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손잡고 여기저기 원 없이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한국은 늘 그리웠어요. 국내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를 죄다 다운로드해서 아이들과 함께 봤어요. 어찌나 재미있던지…. 정작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미국에서는 친구들이 한국 음식을 SNS에 올릴 때마다 너무 먹고 싶어서 화가 났다니까요. 돌아온 다음 한동안 친구들과 만나는 장소가 무조건 떡볶이집이었어요.(웃음)”
10여 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며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두 딸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한국 생활에 적응했다. 미국에서보다도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고. “우리 큰딸이 참 매력 있는 얼굴인데 미국 친구들과 생김새를 비교하며 약간 의기소침했었나 보더라고요. 어린 나이니 그런 고민 충분히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한국에 와서 오히려 더 밝아졌어요. 둘째 딸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겠다며 노래 연습을 하고 같이 나갈 친구들을 구하러 다니는 것을 보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네요.”
한국에 돌아오기 전 장윤정은 남편에게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남편도 결국 동의했다. 그녀는 규칙적으로 연기 수업을 받으며 차근차근 컴백을 준비했다. 그러던 차에 이창열 감독을 소개받아 오는 6월 16일에 개봉하는 영화 <트릭>에 합류한 것이다.
“사실 감독님과 다른 영화를 진행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준비운동 한다는 느낌으로 <트릭>에 출연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대본을 보니 생각보다 비중이 큰 역할이었어요. 촬영할 때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장윤정은 이번이 첫 정극 연기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굳이 배우로 복귀할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니, 그녀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해봤어요. 장윤정에게서 ‘전설적인 미스코리아’ 혹은 ‘미스유니버스’라는 수식어를 빼고 나니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나 감사하고 과분한 수식어지만 동시에 저를 가두는 어떤 틀이다 싶었고요. 그래서 좀 더 쉽게, 편안하게 저를 보여드릴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생각하다가 ‘연기’를 하기로 결심한 거죠.”
어린 나이에 국제 대회에 나가서도 당당한 모습을 뽐낸 장윤정이지만, 영화 촬영장에서는 ‘초짜’인 만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촬영 때는 떨리는 손을 숨기느라 계속 주먹을 쥐기도 했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작품의 주요한 반전을 담당하는 병원장 역이라니 부담이 될 만도 하다.
“촬영은 다 끝났는데 감독님이 극장에서 보기 전에는 미리 안 보여주신대요. 후시 녹음을 하느라 제가 연기하는 장면은 확인했는데, 얼마나 민망한지 몰라요. ‘아니, 저 덩치 큰 여인은 누구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니까요. 의사 가운을 입고 뛰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가운이 제 몸에 비해 작아서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그런 것만 다시 찍으면 안 되나?(웃음)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자꾸만 ‘장 배우님’이라고 부르실 때마다 얼굴이 화끈화끈했어요. 언제쯤이면 그 호칭에 익숙해질까요?”
서툴고 부족하지만 하면 할수록 연기의 매력에 빠져든다는 장윤정. 다른 인물이 되어 그의 삶을 경험하고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이 힘들지만 즐겁다. 그녀는 모든 배우의 연기가 다 귀하고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어린 배우라도 제게는 선배니까요. 촬영장에서 만난 모든 배우,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그분들의 연기를 관찰하는 즐거움이 컸어요. 어쩜 그렇게 다들 열정적인지,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요즘 제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는 이성민씨예요. 처음에 봤을 때는 그분이 특별히 미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드라마를 보니 세상에서 제일 잘생겨 보여요. 연기의 힘이 놀랍죠?(웃음)”
새로운 도전에 바쁜 것은 장윤정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 그녀의 남편 김상훈씨 또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해 그녀를 놀라게 했다. “처음 이야기를 듣고 든 생각은 ‘어머, 이 남자 봐? 내가 연예계에 복귀한다니까 자기도 그간 하고 싶던 것을 터뜨리는 것 아니야?’ 이거였어요.(웃음)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저를 믿고 연예계 복귀를 지원해준 남편에게 의리를 지켜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에 장윤정은 경북 구미을 지역을 돌며 유세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인사하면서 그녀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가장 놀란 건, ‘미스코리아 장윤정’을 기억하는 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에요. 반가워하며 손을 잡아주시는 분들을 보니 괜히 찡한 거예요. 악수를 청하면 어르신들이 정중하게 손을 잡아주시더라고요. 힘들었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어요.”
비록 남편은 낙선했지만 장윤정은 진심으로 ‘우리 남편, 참 수고했고 멋있다’고 생각했단다.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상대를 응원하고 함께해줄 수 있는 부부여서 감사하다.
“아쉬운 결과지만 괜찮아요. 툭툭 털고 일어나 저를 응원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워요. 당선됐다면 더 바빠서 연예계 활동하기가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오늘 화보 촬영을 하러 올 때도 응원해줬어요. 잡지 나오면 꼭 사서 볼 거래요. 이렇게 과감한 의상을 입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놀라게 해줘야죠. 영화 개봉하면 남편이랑 두 딸이랑 손잡고 극장으로 달려가 제일 좋은 자리에서 함께 보기로 했어요.”
17세의 어린 나이에 한국을 대표하는 미녀로, 똑 부러진 진행 솜씨를 뽐내는 톱스타로 숨 가쁘게 산 몇 년. 그리고 힘든 때에 만난 남편과 지금의 가정을 이루고 아내와 엄마로 살아온 몇 년.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이 축복 같다고 장윤정은 말했다.
“원 없이 누렸고 원 없이 아파봤어요. 그래서 미련 없이 제가 원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톱스타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겸손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걸어가는 길 끝에 그저 ‘배우 장윤정’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날이 온다면 좋겠어요.”
초여름의 햇빛 아래 무방비로 노출되고, 풀벌레 수십 마리가 얼굴로 날아들며, 때로는 맨발로 사다리를 올라가야 했던 몇 시간의 화보 촬영. 장윤정은 사랑스러운 딸의 사춘기를 걱정하는 엄마였다가도 카메라 앞에서는 고혹적인 배우로 변신했다. 이제는 20여 년간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수식어들로부터 그녀를 놔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단언컨대 장윤정은 ‘미스코리아’ 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