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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아래 오연서

차곡차곡 예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오연서는 5월의 햇살만큼 반짝반짝 빛났다.

On June 10, 2016

하마터면 오연서를 오해할 뻔했다. 최근에 종영한 SBS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에서 전직 보스 한기탁(김수로 분)의 영혼을 지닌 신원 미상의 절세미녀 한홍난 역할을 소화하는 그녀를 본 순간 도도하고 까칠할 것 같다는 상상이 깨졌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미녀의 탈을 쓴 걸걸한 상남자’로 시청자들의 혼을 쏙 빼놓을 줄이야. 게다가 올여름 개봉작인 영화 <국가대표2>에서는 주야장천 트레이닝복만 입고 나오는 ‘반항의 아이콘’ 아이스하키 팀 선수란다. 실제로 만난 그녀는 드라마속 모습보다 더 털털하고, 솔직했다.

“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힘들었어요. 고생도 안 했을 거 같고 까칠하고 도도해서 연기할 때 몸을 사릴 거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 이미지를 완화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죠. 저에게 촌스러운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드라마 <왔다 장보리>를 선택했고 <돌아와요 아저씨> 역시 그 연장선이었어요. 사람들이 ‘어, 오연서가 이런 연기까지 할 줄 몰랐는데 제법이네’라고 말해주니 좋았어요.”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같은 시간대에 편성되는 바람에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남녀가 뒤바뀐 역송 체험’이라는 새로운 소재와 오연서의 연기 변신으로 늘 화제를 몰고 다닌 <돌아와요 아저씨>. 비록 시청률은 낮을지라도 밤샘 작업을 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태프와 연기자들 덕분에 신명 나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극 초반에는 (김)수로 오빠의 모습을 어색하지 않게 보여주려고 몸짓이나 웃음소리, 말투를 많이 따라 했어요. 오빠가 녹음해 주기도 했고, 오빠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제 나름대로 연구하며 오빠와 저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한홍난’ 속에 ‘한기탁’이 있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믿도록 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나중에는 제 느낌대로 막 했어요.(웃음) 다행히 수로 오빠가 잘한다고 칭찬해주셔서 용기를 얻었죠.”

오연서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성격이다. 새로운 작품을 만나 연기할 때는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돌아와요 아저씨>는 힘들었다.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는 것도 어려운데, 게다가 남자의 영혼을 지닌 여자라니. 연기에 설득력이 없으면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없는 캐릭터라는 점이 그녀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고민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상남자 특유의 팔자걸음과 걸걸한 말투, 안면 근육을 많이 사용하는 표정 연기는 실로 압권이었다. 힐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활보하는 장면, 미니스커트를 입고 ‘쩍벌남’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모습 등 한없이 망가지는 연기가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오연서는 ‘아, 좀 덜 망가질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단다.

“여름에 개봉하는 영화 <국가대표2> 때문에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가 드라마에는 긴 머리를 붙이고 나오느라 고생스럽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두피가 너무 아파서 머리 모양을 바꾸는 설정으로 갈까 고민하기도 했죠. 그런데 마음은 ‘한기탁’이지만 몸은 ‘한홍난’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긴 머리에 미니스커트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어요.” 액션과 코믹 신이 많아 몸을 과하게 쓰다 보니 근육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근육통을 완화하는 약을 항상 가지고 다녔을 정도. 멍이 들고 상처도 많았지만 배우들과의 호흡이 잘 맞아 연기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특히 정지훈과의 연기 호흡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정)지훈 오빠 엉덩이를 꼬집거나 벨트를 푸는 장면 등에서 오빠가 편하게 잘 받아주니까 자연스러운 애드리브가 나오더라고요. 오빠랑 첫 촬영이 키스신이었는데 처음 만나 어색할 틈도 없이 새벽까지 정말 전투적으로 찍었습니다.(웃음) 로맨틱한 키스신이 아니라 입술을 깨무는 과격한 장면이었어요. 키스신이 아닌 액션 장면인 거죠. 오죽하면 저보고 호칭을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을까요.”촬영 분량이 가장 많아 피곤하고 지칠 법도 한데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는 정지훈을 보면서 오연서는 ‘아, 이래서 톱스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서 긍정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해준(정지훈 분)과 브로맨스를 선보였다면 송이연(이하늬 분)과는 가슴 먹먹한 멜로를 보여준 그녀. “저도 ‘한 털털’ 하는데, 언니는 저보다 더해요. 외모와는 달리 한마디로 장군 스타일이죠. 코믹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고요.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연적이라 서로 날이 좀 서 있었는데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정말 많이 친해졌어요. 언니와 키스신이 있었는데 찍기 전에는 진짜로 뽀뽀할 거라고 장난처럼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까 서로 애틋한 상황이라 진지하게 그 감정에만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연말에 하늬 언니와 베스트 커플상을 받고 싶어요.(웃음)”

 

한홍난 덕분에 여성 팬이 많아졌다는 오연서. 얼마 전 팬 사인회 현장에서 그 인기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여성 팬들이 안아달라고 할 정도였다. 한홍난이 여성들의 무한한 지지를 받은 것은 바로 한기탁이 여자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남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 입장에서 감정 표현을 하며 연기하는 것은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남자 역할이 여자 역할보다 훨씬 오글거리는 대사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멋있는 척하는 대사가 많아요. 예를 들면 ‘울지 마라, 다음에는 더 좋은 남자 만나라, 네 뒤에는 항상 내가 있다.’ 뭐 이런 식이죠. 손발이 저절로 오그라들다가 한편으로는 되게 재미있었어요. 뒤에서 지켜주고 묵묵히 바라보면서 여자를 배려하고 뿌듯해하는 느낌. ‘아, 남자 배우들은 이런 맛에 연기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정 기복이 심하고 까칠한 여배우 송이연을 이해하고 그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한홍난식 사랑법을 연기하다 보니 오연서 역시 이상형이 바뀌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남자, 여자의 모든 것을 포용할 줄 아는 남자가 그녀의 새로운 이상형이다. <돌아와요 아저씨>의 출연진은 오연서를 제외한 주요 배우들이 결혼했거나 현재 열애 중이다. 이민정을 응원하기 위해 이병헌은 밥차를 보냈고, 이하늬의 생일날 윤계상은 커피와 분식차를 보내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그 외에도 다들 현장에 찾아와 자신의 짝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한동안 부러웠다는 그녀다.

“<국가대표2>도 만만치 않은 역할인데 시원하고 멋있는 캐릭터라 아마 여성분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금메달에 한이 맺힌 쇼트트랙 국가대표 ‘채경’이라는 인물인데 어떻게든 1등을 하겠다는 욕심이 앞서는 바람에 협회로부터 징계를 받고 졸지에 아이스하키 팀으로 파견됩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변화가 크고 스펙터클한 인물이에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된 한국 최초의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아이스하키 팀의 가슴 뛰는 도전을 그린 영화 <국가대표2>. 오합지졸 팀의 주장을 맡은 채경은 유일한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인 탈북 여성 지원(수애 분)과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결국 팀원들을 하나로 이끄는 캐릭터다.

현장에서 오연서는 악바리로 소문이 자자하다. <국가대표2>의 크랭크인 두 달 전부터 아이스하키 기본 동작을 배우며 착실히 준비했다. 운동선수를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짧은 커트 머리는 기본이고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았다. “작품을 하다 보면 생각만큼 연기가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런 경우 저는 만족스러운 연기가 나올 때까지 계속하는 편입니다. NG가 좀 나더라도 양해를 구하고 계속 노력하죠. 다행히 지금까지 스태프들도 함께 연기한 선후배분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라 격려하며 기다려주셨어요. 제가 나온 장면을 보면서 후회하게 될까 봐 끝까지 노력하죠.”

오연서는 ‘제대로 연기하는 것은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또 선배들이 자신을 기다려주었듯 자신도 후배들이 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따뜻한 선배다. 이같은 열정과 배려는 10년이라는 긴 무명의 시절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힘들었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늘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제가 되는 걸 보면 다른 분들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10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끔찍한 적도 많았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서 전 책임감도 크고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거든요. 아버지가 지방에서 혼자 사시는데,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 제가 TV에 나오는 모습을 찾아 보시는 거예요.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니까 이제야 좀 효도를 하는 기분이 들어요. 부모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연기하는 즐거움 중 하나죠.”

<국가대표2>는 그녀의 첫 상업 영화 주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아이스하키 팀 주장으로 캐스팅되었을 때 그녀의 여성스러운 이미지와 배역이 잘 맞아떨어질지 걱정스러운 반응이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런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촬영 전 남다른 각오를 다지며 그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했다. “촬영을 마치고는 다치지 않고 무사히 촬영이 끝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막막하고 어려웠던 촬영이 선배님들과 친구, 후배님들과 모두 친해지면서 즐거운 촬영이 되었죠. 촬영장에는 항상 밥차가 있어서 새벽에 함께 야식도 먹고 재미있었어요. 다 끝나고 나니 마치 가족과 헤어지는 느낌이라 아쉽고 서운했어요.”

8백40만 명의 관객을 모은 전작 <국가대표>의 흥행 신화를 이어갈 것으로 점쳐지는 <국가대표2>. 탄탄한 연기력의 수애와 변신의 귀재 오연서, 누적 관객 수 1억의 배우로 독보적인 존재감의 오달수가 만나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가대표2>가 성공하는 것이 현재 오연서의 가장 큰 바람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얄미운 시누이 방말숙, 최우수 연기상을 거머쥔 <왔다 장보리>의 억척스럽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장보리,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남장 여자 신율, <돌아와요, 아저씨>의 상남자를 품은 절세미녀 한홍난, 그리고 곧 우리 곁으로 찾아올 기대작 <국가대표2>의 금메달에 도전하는 아이스하키 팀 주장 채경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같은 느낌의 역은 하나도 없다. 오연서는 앞으로도 밝고 주체적이면서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어떤 가혹한 운명도 이겨내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단다. “아!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어요. <로맨스가 필요해>를 재미있게 봤는데 그런 리얼한 연애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이제는 사랑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나이가 됐으니 미묘한 감정을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오연서의 본명은 오햇님이다. 무한한 연기 변신을 꿈꾸며 초여름의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와의 새로운 만남이 기다려진다.

CREDIT INFO
기획
이예지 기자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웰메이드 예당 제공
2016년 06월호
2016년 06월호
기획
이예지 기자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웰메이드 예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