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도 들리는 노이로제,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이놈의 카톡 소리 좀 안 들리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짬뽕라면 물을 올려놓고 빨래 좀 널어놓고 오니 엄마들 단톡방(단체 카톡방)에 수백 개의 카톡이 와 있다. 대부분 그날그날의 아이 숙제를 확인하거나 준비물을 묻는 내용이다. 누구 하나가 물꼬를 터 ‘떡밥’을 하나 던지면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구름처럼 쏟아진다. 특히 강남은 한 반에 40명이 넘는 과밀 학급이 흔하니 마흔 명이 넘는 엄마들이 ‘ㅋㅋㅋ’ 한 번만 날려도 카톡은 정신없이 울린다.
“나, 정말 카톡 때문에 노이로제 걸리겠어. 그룹에 안 끼자니 불안하고, 또 같이 발 담그고 있자니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카톡 때문에 짜증이 난다니까.” 삼성동에 사는 박씨는 이참에 카톡 알림음을 무음으로 전환시켰다. 혹 긴급 상황을 체크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는데 한 방에 ‘몰아 읽기’도 괜찮다는 걸 터득한 후 아이들 재우고 거실에 나와 ‘훑어’ 보는 걸로 끝낸다.
서초동에 사는 최씨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한 엄마가 오늘 미세먼지가 어떻냐고 물으니 주간 날씨부터 시작해 아이들 바람막이 점퍼를 입히네 마네, 깨알 같은 의견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때론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 엄마들 정보력에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며 “너무 얻어 간다는 느낌을 안 주려면 적당한 리액션과 동참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엄마들 커뮤니티에서 ‘카톡’은 이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딸아이 학교 단톡방에 초대받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생전 이용 안 하려고 했던 카톡을 깔았다는 얘기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는 엄마들 중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블로그까지 손을 뻗어 초대하고 받느라 정신없는 3월을 보낸다. 스마트폰이 없던 예전 엄마들은 어떻게 의견을 조합하고 소통했을지 궁금해질 정도다.
안 하는 게 낫다고? 워킹맘들의 생명줄
말이 좋아 ‘소통’이지, 결국은 경쟁이고 과시이고 ‘자랑’의 창구가 ‘카톡’이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초등학교 학부모 총회나 모임에 가면 학교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은 학부모들의 지나친 카톡 참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카톡을 하다 보면 어느 아파트에 사네, 남편 직업이 무엇이네, 해외여행을 어디로 가네 등등 사적인 얘기들이 나오고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으니 가급적 단톡방을 만들지 말라는 것. 하지만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의견이 더 지배적이다.
역삼동에서 첫애를 학교에 입학시킨 박씨는 “각자 바쁜 엄마들이 언제 일일이 다 모여 의견을 결정하고 한목소리를 낼 수 있겠나. 특히 워킹맘들에게 카톡은 단비 같은 생명끈이고 절대로 탈퇴하면 안 되는 보험 같은 곳이다”라며 “카톡방이 조용한 날은 혹시 우리 애만 뭘 안 하고 있는지 불안해지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교사와 엄마 사이에서 고민하는 워킹맘들도 있다. 아이를 키우는 교사들 중엔 엄마들 모임에서 직업이 교사임을 ‘대놓고’ 밝히지 않고 조용히 단톡방에서 활동하는 맘들도 있다. ‘누구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다’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무래도 그 방은 더 이상 ‘은밀한’ 뒷얘기들이 나올 수 없을 터. 여기에도 저기에도 완전하게 붙박을 수 없는 교사맘들은 학기 초가 더더욱 난감하다고 말한다.
내곡동에 사는 김씨는 “◯◯ 엄마는 일부러 이사를 갔다고 들었다. 같은 학부모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엄마가 옆 반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도 껄끄럽고 불편하다. 미안하지만 사실이다”라며 “단순 친목으로 시작한 카톡도 학기말이 되면 성토와 뒷담화로 얼룩진다”라고 씁쓸해한다.
사실, 학교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아이와 24시간을 함께하는 전업맘이라면 카톡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학교 정보야 매일 ‘알림장’에 친절히 다 기록돼 있고 궁금한 사항은 학교 교무실,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면 다이렉트로 시원하게 알 수 있다. 굳이 카톡으로 ‘세’를 모으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엄밀히 따지면 단톡방에 합류해 있다는 자기 안도감, 군중 심리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끊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피곤하고 한심해… 스스로 퇴장하는 엄마들
그렇다면 수많은 엄마들이 알고도 못 헤어나오는 단톡방에선 무슨 얘기들이 오고 갈까? 학원 정보? 선생님 커피 취향? 디테일한 실속 정보를 기대할 수 있는 건 2학기 정도가 돼서야 그것도 단톡방이 아닌, 그 아래로 또 세부적으로 나뉘어지는 팀별 카톡방에서다.
대부분의 단톡방은 서로 간에 얼굴을 트고 아이들 방과 후 체육 활동의 팀을 짜기 위해 개설된다. 과장 좀 보태 강남 서초 지역 어린이 체육 시설은 카톡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톡에서 스케줄이 짜이고 프로그램이 논의되며 활동 사진들이 올라온다.
반포동에 사는 이씨는 “입학식 다음 날 바로 남아와 여아 엄마들 모임이 나뉘었다. 남아들은 축구 클럽, 여아들은 생활 체육 시간표를 짜느라 엄마들이 동분서주했다. 얼마 전엔 반 아이들의 단체 생일파티도 태권도장에서 했는데 동네 체육 시설의 인기가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며 “다들 한다니까 앞뒤 묻지도 않고 신청하긴 했는데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도 언제까질지 모르겠다”고 궁금해했다.
금요일 저녁 시간이나 주말 오전이면 특히 엄마들 단톡방에 사진 수백 장이 연신 올라온다. 누가 골을 넣었네, 누가 무슨 포지션이네, 오늘 줄넘기를 했네 등등 현장에 가 있는 대표맘이 아이들 사진을 수백 장 찍어 우르르 한꺼번에 올린다. 일종의 ‘맘 파파라치’들이 코치들의 지도법, 감독의 스킬 등등까지 세밀하게 찍어 엄마들에게 보고 아닌 보고를 올리는 것. 때론 ‘카톡!’ 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퇴장’하고픈 욕구가 그득하지만 대부분 무음이나 진동으로 도망 아닌 도망을 가기도 한다. 당장 좀 거슬린다고 나와봐야 아쉬운 건 나온 사람이다.
걔중에는 개인 신상 정보 공유에 반기를 들고 일체의 사적 커뮤니티를 거부하는 ‘소신맘’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이기는 하나, 카톡을 포함한 전화번호 공유도 거부한 채 철저히 조용하게 학기 생활을 이어간다. 실제로 나도 몇몇의 엄마들에게 카톡 초대를 했을 때 그들이 거부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누구도 감히 들어오라, 마라 강요할 수 없다.
대신, 단체 카톡에서 ‘열외’라면 그 배경과 이유가 궁금해지고 확인되지 않은 억측과 루머가 돌 수는 있다. 아줌마들 사이에서 ‘튀는’ 언행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아이도 엄마도 원만한 학교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너무나 잘들 알고 있고, 오늘 자 학교 급식 메뉴 사진까지 올려주는 ‘이동식 CCTV’인 카톡의 유혹을 단칼에 잘라내는 맘은 흔치 않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있듯 욕하면서 하게 되는 게 온라인 커뮤니티다.
메인 컷은 인생 사진으로, 당신의 사생활을 즐겨줄게
카톡 대문에 어떤 사진을 올리느냐도 은근 신경 쓰이는 과제다. 보는 눈들이 많고 메인 사진만 클릭하면 지난 사진들까지 연달아 볼 수 있으니 ‘관리’ 할 수밖에 없는 현실. 대부분의 맘들은 자기 애들 사진이 주로 메인 컷이다. 특히 학기 초인 3월엔 아이들 사진과 함께 ‘00맘’이라는 닉네임을 같이 올리는 게 센스고 안면을 틀 수 있는 방법이다. 개인 SNS를 하는 맘들도 태반이니, 카톡과 연동되는 사진들은 자신의 아이와 가족, 가치관까지 살짝 보여줄 수 있는 채널인 셈이다.
“맘들이 올린 사진을 보다 보면 가족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 친구 아빠 얼굴까지 낯익게 되고 사생활이 자연스레 공유된다. ‘인생 사진’이라도 건진 날엔 대문 사진에 빨리 올리고 싶어진다” (잠원동에 사는 정씨)
“담임 선생님 페이스북에 우연히 들어가 보니, 선생님의 비공식적 생활 스타일을 엿볼 수 있게 됐다. 반대로 내 사진도 공개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틈틈이 사진첩을 정리하고 올린 글도 수정하게 됐다. 교사라면 학부모와 SNS 하는 걸 별로 반기지 않을 것 같아 친구 신청은 하지 않았다” (개포동에 사는 김씨) 카톡 안 하는 교사들이 없다 보니, 담임에게 고가의 기프트콘을 선물하는 일부 학부모들 때문에 시끄러웠던 적도 있다. 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상담 내용을 카톡으로 보내는 학부모들이 있어 교사들의 퇴근 후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기도 한다고.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되려, 학교마다 촌지 금물, 일체의 선물을 사양하다 보니 “담임 선생님 면담 때 음료수를 사갔는데 되돌려 보내셨다. 다른 엄마들도 안 사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이 급식 시간에 아이들이 말썽을 피워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다. 아이들에게 제자리에 앉아 바른 식사 예절을 지키도록 집에서 지도하자”는 카톡들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천하의 극성맞은 열성맘들도 담임과의 카톡에선 최대한 자중하고 몸을 사리는 게 대부분이고 진리라 생각한다.
내 글엔 왜 안 웃지? 카톡 때문에 속앓이 해봤니?
엄마들 사이에 5월은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은 달이다. 아이들끼리 데면데면했던 3월을 지나 친해지는 시기인 4월을 거쳐 5월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일들이 생긴다. 학교에서 아이들 간의 크고 작은 싸움부터 시작해 ‘은따’, ‘왕따’ 등 부모 간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 속속 터진다.
그러다 보면 카톡 대화에서도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공개적인 단톡방에 글을 올려 부모들 사이에서 문제를 공론화 하고자 하는 피해자 엄마가 있는가 하면, 쉬쉬하며 해결하려다 단톡방 엄마들 반응에 마음이 상해 전학까지 고려하는 가해자 엄마도 있다. 아이들 간의 자잘한 싸움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명쾌히 판결을 내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부모들 간의 감정 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가장 큰 부작용이다. 말이 아닌 문자로 소통하다 보니, 본심과 다르게 의사 표현이 되기도 하고 본인의 생각보다는 다수의 결정에 동조된다는 함정도 분명 있다. 또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한 다수의 반응이 약할 때 우울감을 호소하거나 자괴감이 든다는 맘들도 있다.
도곡동에 사는 이씨는 “엄마들 사이에 카톡이 어느 정도로 중독성이 있냐면 반 모임을 나갔는데 엄마들이 바로 앞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도 카톡에다가 글을 올리고 있었다. 그게 더 익숙하고 편하다고 하더라”며 “1학기에는 얼굴이라도 익히려고 오프라인 모임들이 있었는데 2학기가 되면 아마 모든 의사 결정이 카톡 안에서 다 이뤄질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남맘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했던 엄브(엄마들 브런치 모임)가 점차 없어지거나 커피 타임 등으로 간소해지고 있으며 시간과 돈이 절약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갈수록 인기가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주도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공격수형 엄마와 적당히 주변 의식하며 눈치껏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비수형 엄마, 그리고 그 사이에 공존하는 미드필더형 엄마까지, 지금 강남맘들 카톡은 24시간 전쟁 중이다. 운 좋으면 신의 한 수를 공짜로 배울 수도 있는 거고, 운 나쁘면 송사에 휘말려 피곤해질 수 있으니 적당히 치고 빠지는 요령은 알아서들 터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