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실수’라는 말이 있다. 한때 ‘싸구려 제품을 만든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중국 기업이 예상과 달리 제법 괜찮은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우리는 ‘실수’라고 표현했다. ‘대륙의 실수’의 대표적 사례가 샤오미다. 2015년 최고 히트 상품인 휴대전화 보조 배터리 ‘미파워뱅크’는 출시 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좋은 성능에 놀라울 만큼 저렴한 가격과 세련된 디자인까지 갖춘 이 제품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괴물’이라 불리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2015년 소셜커머스 ‘티몬’에서 판매된 전체 보조 배터리 가운데 89%를 차지하기도 했다. 샤오미는 보조 배터리뿐 아니라 건강관리 기기인 ‘미밴드’와 체중계 ‘미스케일’, 블루투스 스피커 ‘큐브박스’, 공기청정기 ‘미에어’ 등 10여 가지 제품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이쯤 되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다. 각종 인터넷 쇼핑몰과 대형 마트에서도 샤오미 브랜드 기획전을 연이어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샤오미 짝퉁’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어디 샤오미뿐인가?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도 1.5㎏짜리 초소형 세탁기와 아이스크림 냉동고 등 특색 있고 가성비 좋은 가전제품으로 주부들의 지지를 받는 브랜드다. 하이얼은 최근 온라인 전용 TV ‘무카(MOOKA) 32인치 HD LED’ 모델을 비슷한 사양의 국내 제품보다 절반 이상 저렴하게 출시했다. 이 제품은 ‘반값 TV’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이얼은 GE를 인수해 가격 경쟁력에 인지도까지 확보하며 시장을 점령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의 다국적 민영 기업 ‘레노버’의 노트북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일반 가전제품보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노트북의 경우 유명 대기업 제품만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레노버는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성능으로 소비자들의 편견을 깼다. 레노버는 2005년 한국 법인을 설립한 이후 승승장구하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태블릿 PC까지 출시했다.
최근 크게 성장하는 ‘드론’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이 선전 중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드론인 ‘X8C’의 제조사가 바로 중국 기업 ‘시마’다. 화질은 조금 떨어지지만 조종이 편리한 점이 초보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외에도 ‘화웨이’ ‘창홍’ 등 중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연달아 저비용·고성능 제품을 내놓으며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물건을 사는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반갑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2011년 이후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던 삼성전자는 2014년 3분기에 처음으로 샤오미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2015년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샤오미, 화웨이, 비보, 오포 등 중국 브랜드가 상위권을 거의 휩쓸었다. 몇몇 국내 기업은 중국과의 협업을 선택했다. SK텔레콤에서 ‘제2의 설현폰’이라는 콘셉트로 단독 판매하는 스마트폰 ‘쏠(Sol)’은 중국 가전회사 ‘TCL’의 자회사 ‘알카텔 원터치’가 제조를 맡아 소비자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했다. LG유플러스 역시 중국 제조사 화웨이와 협업해 단독으로 ‘화웨이 Y6’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쯤에서 중국 기업의 약진을 가능하게 한 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의 진단에 따르면 이는 부품을 스스로 조달하고 완제품 생산까지 마치는 중국식 공급망인 ‘홍색공급망(紅色供給網)’의 공이 크다. 중국 디자인 업체와 부품 업체가 생산 과정에 많이 참여해 제품의 소비자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이 샤오미다. 스마트폰 가격을 확 낮춘 샤오미와 ‘윙테크’의 예를 보자. 샤오미가 제품을 기획하면 윙테크가 그것을 제조한다. 그리고 아주 적은 이익만 남기고 샤오미에 납품한다. 샤오미는 물건의 판매 자체에서는 거의 이익이 남지 않는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제품을 제공하고, 대신 게임 센터,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 등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이익을 낸다. 이런 방식으로 샤오미는 수많은 ‘미펀(샤오미 팬)’을 형성하며 몸값을 높였다. 어느덧 샤오미의 기업 가치는 4백60억 달러에 이른다. 다른 중국 기업들도 이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중국 기업이 소비자와 소통하는 자세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대부분의 중국 기업은 제품 사용자들이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최대 2주를 넘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샤오미의 창업자 레이준은 ‘집중, 극치, 입소문, 신속’이라는 네 가지 목표를 세우고 기업을 꾸려왔고 결과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샤오미의 성공 이후 더 많은 중국 기업들이 오늘도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대세는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핫 아이템 5
1. 보조 배터리-샤오미
지금의 샤오미를 만든 이 제품은 타사에 비해 종류가 다양하고 용량 대비 저렴하며 고장 횟수도 적다. 최근 배터리 일체형 스마트폰 덕에 보조 배터리의 수요가 늘며 더욱 인기를 모으고 있다.
2. 미밴드-샤오미
2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의 이 밴드는 내가 하루 동안 얼마나 걸었는지, 수면 패턴은 어떤지, 칼로리를 얼마나 소비했는지 알려준다. 스마트폰 알람과 생활 방수, 그리고 30일 동안 유지되는 배터리도 미밴드의 셀링 포인트.
3. 냉장·냉동고-하이얼
요리를 하는 동안에도 인터넷에 연결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화이얼의 ‘대화형 플랫폼 냉장고’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거두었고, 냉동고 깊이가 깊어 불편하다는 임산부의 클레임을 받아들여 깊이를 얕게 한 냉동고 역시 대박을 쳤다.
4. 노트북-레노버
휴대폰보다도 저렴한 노트북이 있다면? 레노버는 ‘아이슬림북(i-SlimBook) 100s’나 에이수스 ‘트랜스포머북’ 등 20만원대 초반이면 살 수 있는 저가형 노트북을 연이어 내놓았다.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
5. 스마트 워치-화웨이
세계 통신 장비 1위 업체인 중국 화웨이가 선보이는 스마트 워치는 ‘중국산은 촌스럽다’는 편견을 깰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여성 고객을 겨냥해 스와로브스키와 협업한 디자인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