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에야 인기가 실감돼요.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생겼고요. 지금 제 삶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내 ‘빨리 적응하자’ 싶었어요. 불편한 일이 생겨도, ‘난 연기자니까’ 라고 넘겨버리니 모든 게 쉽더라고요. 늘어난 팬을 보며 인기를 실감하지만 정작 누리고 있진 못해요. 오히려 책임감이 강해져서 매사에 조심하고 있죠. 부모님 역시 노력에 대한 결실이라고 축하해주시지만 들떠 있진 않아요.”
어떻게 누리느냐의 문제일 뿐, 인기를 누리는 것도 배우의 의무다. 류준열 역시 지금의 인기를 온몸으로 누리고 있지만, 심취하지 않으려고 했다. “선배님들이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조언해주세요. 반면 ‘이런 일 흔치 않으니까 즐기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금방 깨어나기만 한다면 잠시 취해 있어도 괜찮대요. 인기에 연연하다 보면 피곤하고 힘들어지니까 순리에 맡기려고 해요.”
뭐랄까, 류준열은 청춘스러웠다. 솔직했다. tvN <꽃보다 청춘>이 출연료가 나오는지도 몰랐고, 언론사가 이렇게 많은지도 몰랐고,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마냥 신기하다고 했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 선배님이 저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게 너무 신기했어요. 10년 넘게 집에서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제 이름이 언급되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죠. 기분이 이상해요.(웃음)”
그도 그럴 것이 류준열은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출연 후 모든 것이 변했다. 그중에서도 소속사가 생긴 건 그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였다. “캐스팅된 후 여러 회사와 미팅을 했어요. 지금 소속사라면 제가 평소에 고민하던 것들을 해결해줄 것 같았어요. 작게는 출퇴근 문제부터 작품 선택의 문제까지요. 온전히 연기에 집중할 수 있어요. 더 이상 캐리어틀 끌고 의상을 반납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잖아요.(웃음)”
사람들은 류준열을 두고 ‘떴다’고 말한다. ‘이래서 인생은 역시 한 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더러는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변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변한 게 맞아요. 주변 환경부터 완전히 달라졌으니까요. 없던 소속사가 생겼고, 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으니까요. 주변의 태도가 바뀌다 보니 ‘류준열 변했네’ 하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정말 그대로예요.”
그가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꽃보다 청춘>에서의 류준열은 따뜻했다. 차를 렌트하는 과정에서 바가지를 당한다거나, 박보검이 차를 박살낸다거나 하는 돌발상황에서도 침착했고. 캐릭터가 분명한 다른 출연자들과의 협업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류준열이라는 남자, 류준열이라는 청춘을 조금 알게 된 느낌이랄까.
“첫날은 카메라가 신경 쓰였는데, 그 후론 ‘생존해야 한다’ ‘즐겁게 여행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영석 PD님도 ‘편하게 하면 된다’고 강조하셨죠. 덕분에 제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소중한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정환’이란 캐릭터를 떠나보낼 수 있었어요.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유창한 영어 실력이 류준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정환이가 영어를? 어랏, 발음이 범상치 않은데?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류준열 영어’가 오를 정도로 의외의 모습(?)이었다는 반응이다. “그간 여행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했어요. 잘하는 영어라기보단 겁 없는 영어죠. 시청자들이 제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신 것 같아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에요.”
작품에서 만난 좋은 인연, 뜻이 맞는 또래 친구들과 무작정 떠난 여행. 평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생을 공부했던 류준열에게는 계획에 없던 성장이었다. “사실 아프리카가 그렇게 오지가 아니에요.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프리카만의 재미가 있었죠. 여러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제가 갔던 여행지 중에서 꼽을 만한 곳은 미국이에요. 미국 사람들 특유의 여유로움이 부러웠죠. 카페에 가만히 앉아 그들의 일상을 탐독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아! 캄보디아도 꼭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죠. 순수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거든요.”
스무 살이 되면서 자연스레 독립한 류준열은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학비는 학자금대출로 충당했고, 여행 경비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 모았다. 손 벌린다고 도움을 주실 부모님도 아니었지만 스스로도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이 정도로 성장했습니다’라고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경제적인 독립이었으니까.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카페에서 일해봤고, 음식점에서 그릇도 닦아봤죠. 고깃집 알바는 기본이죠.(웃음) 초등학교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방과 후 교사로도 일했었고요.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그 경험들이 지금 저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회 생활이 어떤 것인지도 알았고, 더불어 인격 수양도 했다고 생각해요.”
서른한 살 류준열은 자신의 20대가 뜨거웠다고 고백했다. 지난 청춘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값어치를 이루었다고도 했다. 매서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단, 어떤 유혹에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신의 같은 것들 말이다.
“삶을 알았다고 하면 거창한 걸까요? 다양한 경험 덕분에 자립심과 독립심이 키워졌고, 연기에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선배 배우들이 ‘나이답지 않게 여유 있어 보인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연기자로서 밑천이 많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그게 다 아르바이트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는 제 과거가 뿌듯하죠.”
인터뷰 내내 류준열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언뜻 보면 딱히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없어 보이는 뜨뜻미지근한 성격 같지만, 그것이 내공처럼도 보였다. 대기 중인 광고 촬영 스케줄과 인터뷰 스케줄, 밀려들어오는 대본 앞에서도 서른한 살 신인 배우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건, 류준열의 단단한 인생 때문일 것이다.
“저는 무언가에 미친 듯이 빠져본 적이 없어요.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수집하는 취미도 없죠.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축구’라고 대답할 정도인데, 사실 축구도 미친 듯이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빠져 살지도 않고요.”
류준열은 그랬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격을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화려한 말로 성격을 포장하기보다는, 누구나처럼 시시때때로 변하는 게 기분이고, 성격이니까.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 않나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게 인생인데,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성격을 어떻게 딱 잘라 정의 내리겠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다 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는 성격이에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인지를 조곤조곤 설명한 시간은 10분 남짓. 기자가 본 류준열은 모든 게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삶을 순리에 맡기는, 무언가에 집착하다가도 금세 평정심을 되찾는, 복잡한 건 딱 질색이고 단순함을 선호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을 일부러 숨기지도, 드러내지도 않는 날것의 류준열이었다.
“맞아요, 저 단순한 사람이에요. 안 좋은 기억도 자고 일어나면 잘 잊어버리는, 자체 필터링이 잘되는 성격이에요. 세상 편하게 사는 스타일이죠. 혹자는 이런 단순한 성격이 연기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하시는데, 이게 나인데 어떡해요. 굳이 바꾸지 않을 거예요.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연기에 대한 주제로 흘러갔다. 교사를 꿈꾸던 그는 재수 시절 진로를 바꿨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게 이유였다. 결정적 계기도 없이 운명처럼 이끌려왔다.
“재수 시절, 졸지 않으려고 서서 공부한 적이 있어요. 잠깐 눈을 감았는데 두 시간이 지났더라고요. 서서 잠든 거죠. 앉아서 하는 일보단 활동적인 일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았어요. 이쯤 되니 ‘정말 내게 (교사가 될) 소질이 있나’ 고민이 됐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게 뭘까’ 곰곰이 생각했고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죠. 입시 실기 준비 기간이 한 달밖에 안 됐지만 목표가 뚜렷하니까 더 집중하고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한번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이거든요.”
그렇게 배우의 길로 들어선 류준열. 데뷔작인 영화 <소셜포비아>를 만난 게 서른 살 때였다. 10대부터 연습생 시절을 보내며 외모와 개인기까지 체계적 관리를 받는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데뷔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돌 친구들이야 어렸을 때부터 연습을 시작하지만, 저는 평범한 일생을 살다가 대학교 가서 연기를 전공하고 군대를 갔다 온 사례잖아요. 조바심은 없었어요.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없어요. 게다가 큰 욕심도 없어요. 지금처럼만 꾸준히 연기할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하고, 그걸로 족해요.”
하지만 꾸준히 열심히 한다는 게 말처럼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어떻게,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대중에게는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류준열 역시 그 지점을 고민하고 있었다.
“다양한 감정을 튀지 않게 연기하고 싶어요. 특별하지 않지만, 알고보면 특별한 생활 연기를 하는 배우이고 싶어요. 그런 연기를 하기 위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요. 더불어 많은 분이 알아봐주시고 사랑해주시니까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기죠. 순간 순간 집중하고 낮은 자세로 활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죠.”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무기 하나를 꼽아달라고 청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전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대중들이 저보다는 <응팔> 속 ‘정환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제가 느낀 건 ‘모두가 나를 좋아하게 할 순 없구나’ 였어요.”
그가 말끝에 힘을 뺐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고, 그 안에서 행복해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짧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배우라면 응당 치러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30년 동안 평범한 삶을 살았고, 한순간 유명한 사람이 됐어요. 관심들이 낯설었고 어떤 지점에선 두렵기도 했어요. 당연한 것이지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죠. 처음에는 상처받았는데, 그것도 빨리 털어버렸어요.”
고작 1년 차 배우라고 하기엔 이미 많은 걸 알아버렸다. 연륜과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얻는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 사이의 갭이 더 커질 게 분명한데, 그 간극은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궁금했다. 이를테면 칭찬과 비난이 섞인 네티즌의 댓글 같은 거.
“그래서 댓글을 잘 안 봐요. 칭찬은 팬카페로 충분하거든요. 팬들의 응원 한마디가 힘이되죠. 예전에는 종종 글도 남겼는데, 요즘엔 잘 쓰지 못하고 있어요.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인데 대충 쓰기는 싫으니까…. 여유 있을 때 진정성 있게, 길게, 감사의 뜻을 전할 거예요.”
잘 보이기 위해,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꾸밀 법도 한데 차라리 안 하는 편을 택했다. 가식과는 거리가 먼, 여느 라이징 스타와는 다른 류준열스러운 모습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의 진가라고 해야 할까. 이번엔 인기에 대한 부담은 없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저 이제 1년 차 새내기예요.(웃음) 성과나 인기를 바라고 연기하면 큰일 나죠. 전 좋은 감독님, 시나리오, 배우들과 재미있는 작품을 하는 게 더 중요하고 소중해요. 물론 제가 노력한 것을 작품 안에서 잘 보여드리고는 싶어요. 흥행 여부는 지금의 제 위치에서는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류준열은 어떤 배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뻔한 말 같지만 사람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는 데 도움이 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물었다. 서른한 살 청년 류준열이 꿈꾸는 ‘괜찮은 사람’의 기준에 대해. 그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경향이 있잖아요. 저도 분명 그렇게 될 테고요. 그런 의미에서 전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주변의 여러 충고를 순수한 마음으로 새겨 듣고, 그 조언을 마음에 꼭꼭 담으며 살아가고 싶어요. 당분간 바쁜 나날이 계속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겠지요.”
빼어난 외모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류준열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바로 ‘건강한 생각’ 때문이 아닐까. 청바지에 남방 하나 걸치고 인터뷰 자리에 툭툭 걸어와 무덤덤한 자세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이 청춘은 분명 꽃보다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