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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무의 사랑가

그가 노래한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담아. 이 노래는 한 남자의 못다 한 고백이자 그리움이다.

On February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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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시한부 판정 받았던 아내

배우 임채무를 만났다. 지난해 6월 아내와 사별한 뒤 이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 그다. 아내의 장례식 직전까지도 주변 사람들은 투병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들도, 심지어 친형제들도 장례식장에 와서야 그의 아내가 췌장암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자존심이 강했던 아내는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기가 암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람들이 측은하게 볼 것이라며 염려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내의 췌장암 말기 판정. 남은 시간은 고작 3개월뿐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판정이었다.
“암 중에서 제일 더럽고 괘씸한 게 췌장암입니다. 말기가 될 때까지 아무런 증상도 없이 우리 몸속에 잠복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내의 경우 췌장암 중에서도 희귀한 케이스였어요. 암세포들이 수술도 못 하는 부위에 가서 딱 달라붙어 있다고 하더군요. MRI 사진을 보니까 췌장이 엉망이었습니다. 1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아니 6개월이라도 좋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울며 애원했어요.”

전세 2백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고생만 하며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아내였다. 이제야 좀 먹고살 만하니 찾아온 불행. 하늘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망이 없다며 고개를 젓는 의사에게 화를 내며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끝까지 싸워보겠노라고. “오기가 생기더군요. 아내의 암세포를 박멸해버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누가 희망을 빼앗아갈 수 있겠습니까? 삶이 너무도 절실했으니까 절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말기 암 환자들의 생존 케이스를 찾아 헤맸어요. 양방의 도움을 받고, 한방의 도움도 함께 받았습니다. 의료 기자들한테 수소문해서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다녔지요.” 살기 위해 매일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치료제를 찾아 헤맸다. 아픈 아내의 의지도 대단했다. 조미료나 설탕이 몸에 해롭다고 하니, 3년 동안 짬뽕 한 그릇 먹질 않았단다. 오로지 그가 구해 오는 유기농 채소와 반찬만으로 식사를 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부부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고양이에게 쫓기던 쥐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고양이를 물듯, 암세포도 독한 항암제로 쫓으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암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꿨다. 완치가 불가능하다면 공존하자. 나도 살고, 너도 살자.

“대부분의 사람이 어떻게든 암세포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능사는 아닌 것 같아요. 완치 판정을 받은 말기 암 환자들의 경우, 공기 좋은 곳에서 건강하게 먹고 쉬니 생존률이 배로 올라가더군요. 무엇보다 식사 습관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아내의 아침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제가 차렸습니다. 채소 위주로 먹고 된장이나 청국장을 매끼 곁들였어요. 그냥 된장은 염분이 많으니 5년 이상 된 집된장에 무, 배, 키위, 마늘, 생강, 깨소금, 아몬드, 들깨가루 등을 넣고 갈아서 묽게 만들어 매끼 물 마시듯 챙겨 먹었어요. 짜고 맵고 달콤한 자극적인 식사는 피했고요. 그렇게 아내는 5년을 버텼습니다.”

기적이라고 했다. 전 세계를 기준으로 발표된 췌장암 말기 환자의 최장 생존 기간은 5년. 아내는 의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잘 견뎌줬다. 심지어는 떠나는 날에도 멀쩡했다. 잘 다녀오라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던 아내였는데,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지만 이렇게 황망하게 보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잠을 자듯 평온한 모습으로 떠나갔다는 말이 위안이 됐다. 돌아보니 아내의 삶은 매일이 기적이었거늘, 왜 그 시간을 더 사랑하지 못했을까 후회도 된다.
 

그리움은 병이 되고

장례식을 마친 뒤 삼우제까지 치르고 나니 가벼운 우울증 증세가 찾아왔다. 아내 없는 집에서 홀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 옆 동네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가끔 멍하고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저는 해병대 출신인 데다 굉장히 남성적인 성격이에요.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이루고야 마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고요. 그래서 가벼운 우울함은 혼자서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배우자의 죽음 후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의학적으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코웃음 쳤습니다. 나를 뭐로 보고 저런 소리를 하나 했죠. 그런데 두어 달 지나니 그 외로움과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손을 쓸 수가 없는 지경이 되더군요.”

혼자서 새치 염색을 하던 날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아내가 도와줬을 테지만 그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낑낑대며 염색약을 바르다 거울을 봤다. 목덜미를 타고 흘러 내린 염색약 때문에 옷이며 욕실 바닥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엉망이 된 바닥을 닦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왜 나만 혼자 두고 갔냐고 통곡했어요. 아내가 떠나던 날과 그날, 딱 두 번 울었습니다. 그렇게 귀한 사람을 보내놓고 나 혼자 뭣 하러 이 세상에 남아 있나 싶었어요. 그 순간, ‘나도 따라갈까?’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 순간을 못 이겼으면 정말 나쁜 마음을 먹었을지도 몰라요.”
 

어떤 날은 하늘에서 아내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몸이 피곤해서 잘못 봤겠거니 했지만 아내는 너무도 생생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아내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 시간이 너무 힘들어 술을 먹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자 술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됐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요. 내가 망가지는 게 아내가 원하는 걸까요? 절대 아니었을 거예요. 일이라도 활발하게 하면 빨리 잊어버릴 텐데 당시에는 들어온 작품도 없었어요.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노래를 부르기로 했죠. 아내도 제가 생전에 음악 하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천생연분’은 아내를 잊기 위한, 또 추억하기 위한 노래예요.”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공허함.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는 앨범을 제작하기로 했다. 인기곡 ‘내 나이가 어때서’를 만든 작곡가 정기수가 곡을 썼다. 사모곡이라고 해서 가슴 절절한 발라드는 아니고 아내와의 추억이 떠올라도 슬픔에 젖지 않도록 빠른 템포의 곡을 택했다.
“‘천생연분’이란 제목이 마음에 들었어요. 평소에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했는데, 비록 이승과 저승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이렇게 마음을 전하니 얼마나 좋아요. 아내가 살아 있을 때 가끔 약주 한잔한 날 ‘난 당신하고 결혼하길 너무 잘한 것 같아’라고 고백하곤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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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난 노래하네

그의 신곡 ‘천생연분’에는 아내를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쩌면 당신과 나는 이 세상 하나뿐인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 이렇게 또 죽고 못 사니. 눈에서 잠시 멀어지면 이별인 듯 아쉬워하고 다시 또 눈이 마주치면 망울망울 애끓는 사랑. 보고 또 보고 다시 또 봐도 나의 사랑 아닌 곳 하나 없으니. 당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랑 사랑 내 사랑”이라는 가사는 따뜻하고 정겹다. 사실 임채무는 1993년 1집 ‘카페연가’를 발매하며 가수로도 데뷔한 이력이 있다. 그간 바빠서 노래를 잊고 살았지만 목소리가 더 늙기 전에 한 곡은 더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내 역시 얼른 앨범을 내라고 성화였었다. 앞으로 몇 년간은 전국으로 여행을 다니며 공연을 할 계획이다. 그곳에서 시골 어르신들을 만나 삶의 지혜를 듣고, 인생을 한 수 배우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시골 어르신들의 혜안 그러니까 삶을 보는 안목, 그런 걸 배우고 싶어요. 막걸리 두 통만 사 들고 양로원에 가면 다들 얼마나 좋아해주시는지 몰라요.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그간의 힘든 것들도 좀 잊고 싶어요.” ‘천생연분’은 이미 유튜브 조회 수만 3만 뷰를 넘어섰다. 각종 지방 행사에서도 러브콜이 오는 걸로 보아 조심스레 대박 조짐을 예측해본다. 발표 몇 주 만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번 곡엔 숨겨진 사연이 있다. “다른 유명 스타 작곡가가 먼저 곡을 줬는데 도저히 입에 붙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지금의 제 노래가 된 ‘천생연분’을 듣게 됐죠. 두 번쯤 들으니 ‘아~ 이건 내 노래다’ 싶었어요.”

평생 연기자로 살아온 그가 가수로 활동하려니 어색하진 않을까? “드라마는 작품이 끝나면 금방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요. 하지만 노래는 아주 오랜 시간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 10년, 20년도 거뜬하죠. 저도 그렇게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 좋은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내가 떠나고 임채무는 삶에 대한 생각이나 자세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득바득 살기보다는 그저 물 흐르듯 사는 게 인생의 순리라고 믿고 따라가는 중이라고. “인생의 목표나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기보다는 능력만큼만 바라고 감사하는 게 심신 건강에 좋아요.(웃음) 돈이 없어도 재미있고, 돈이 많아도 불우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아직은 혼자 지내는 게 익숙지 않아 집안일이 힘들다며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는 임채무. 이제 홀로서기를 하는 그의 매일이 부디 따뜻하기를, 너무 힘들지 않기를 마음 다해 응원한다.

CREDIT INFO
취재
서미정 기자
사진
신빛
2016년 02월호
2016년 02월호
취재
서미정 기자
사진
신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