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이현주 부부로 말할 것 같으면 인고의 부부다. 괴로운 시간을 참고 참아온 지 30년. 숱한 고통의 시간을 견뎌온 이 부부에게는 틈이 없었다. 화보 촬영을 위해 만난 두 사람은 마치 완벽한 예술 작품처럼 견고했다. 서로의 시간을 온전히 공유했고, 그 안에서 평온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데 익숙한, 아름다운 부부였다. 부부는 애정 표현에 인색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기자 앞에서 보란 듯이 뽀뽀를 ‘쪽’ 한다. 여기저기서 부러움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서로의 헤어나 메이크업, 의상을 꼼꼼히 챙기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특히 귀여움과 청순함을 오가는 아내의 깜짝 변신에 입을 떡 벌리고 선 김태원에게서 카리스마 작렬하는 그룹 부활 리더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태원 “제 아내지만 정말 예쁘지 않아요? 첫눈에 반했어요. 작고 아담한 체구와 소녀 같은 감성이 완전히 제 이상형이었죠.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영락없는 사랑꾼이다. 그래서일까? 김태원의 노래에는 모두 아내 이현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인기가 최고에 다다랐을 때 이현주를 생각하며 쓴 곡 ‘마지막 콘서트’와 아내와 아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담은 ‘네버엔딩 스토리’ 등 셀 수도 없다. ‘마지막 콘서트’ 가사 속 주인공인 이현주는 많은 여자의 로망이 됐다.
김태원 “아내는 제 전부라고 봐야죠. 제 노래의 대부분이 아내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지금 만들고 있는 앨범도 마찬가지예요. 40% 정도 완성됐는데 여전히 아내를 위한 사랑가가 많아요.(웃음)”
김태원이 사랑꾼이라면 이현주는 남편 바라기다. 하도 “태원씨~”를 찾는 통에 조금도 쉴 틈이 없다. 조잘조잘하며 일상을 이야기하는 모습도, 팔을 벌리는 김태원의 품에 쏘옥 안기는 모습도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여자가 봐도 이렇게 예쁜데 남편은 오죽할까.
이현주 “(김)태원씨요?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남자일 거예요. 다른 주부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욕먹기 일쑤인데, 남편이 살림할 틈을 주지 않으니까 혼자서 요리하는 취미가 생겼어요. 청소며 빨래며, 집 안의 잡일은 온통 남편이 다 해주거든요.”
사실 이현주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인생에 ‘남자’라곤 김태원뿐인데 속을 썩여도 그렇게 썩일 수가 없었다. 연애 기간엔 약물 중독으로 두 번이나 구치소 신세를 졌고, 결혼 후에는 갑작스런 위암 선고로 그녀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곡이 나오지 않을 땐 몇날 며칠이고 혼자서 끙끙 앓는 남편이 못마땅한 적도 있었고, 자폐를 가진 아들을 인정 못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현주 “사람들이 그래요. 30년을 어떻게 참고 살았느냐고요. 이젠 그런 질문을 하도 받아서 면역이 생겼나 봐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일까요?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냥 이게 제 삶인걸요. 다른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요. 평소에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성격이라 이젠 그러려니 해요.(웃음)”
씩씩하게 말하지만 왜 힘든 적이 없었겠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지난날이 느껴졌다. ‘혼자’인 것 같은 생각에 수도 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을 테고, ‘죽음’을 생각한 적도 있었을 게다. 이현주는 김태원을 떠나면 행복할 것 같은 생각에 그 앞에서 사라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돌아가지 않겠다’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건만 결국 또 김태원 앞에 섰단다. 그녀는 떠난 지 3일 만에 돌아온 일화를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이현주 “연애 7년 차였을 거예요. 도저히 버틸 힘이 없더라고요. 약물 중독으로 시름시름 앓는 태원씨를 지킬 자신이 없어 그에게서 완벽히 사라지기로 결심했죠. 지방 어디께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아버님에게 전화가 오더라고요. ‘이러다가 태원이 죽는다’ 한마디하셨죠. 그 한마디에 제 결심이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부랴부랴 돌아와 보니 태원씨는 거의 반 시체였어요. 그때 생각했죠. ‘이 사람은 내가 없으면 정말 죽겠구나.’ 그 이후로 남편에게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이쯤에서 김태원에게 물었다. 생에 남자라곤 김태원밖에 없는 아내에게 미안하지 않느냐고. 그는 되레 어깨를 쫙 편다.
김태원 “오히려 아내는 행운아 아닌가요? 첫사랑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 아내는 첫사랑인 저와 결혼했잖아요.(웃음) 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요? 저요? 고등학교 때 뜨거운 사랑을 했었죠. 배우 수애씨를 닮은 여학생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감정이 감당 안 돼 헤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었죠.(웃음) 그녀와 이별 후 만난 여자가 지금의 아내예요.”
부활을 거쳐 간 많은 보컬의 음색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지만 김태원과 이현주는 그중에서도 일등으로 故 김재기를 꼽았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故 김재기는 키도 훌쩍 크고 늘씬하며 얼굴은 그 당시 인기 있던 일본 패션 잡지 <논노>의 표지 모델 같았다. 2년 동안 김태원과 매일 만나 부활의 재기를 고민하던 김재기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해 겨울, 두 사람은 만난 지 10년 만에 결혼했다. 부활이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2세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김태원 “우리의 결혼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첫눈에 반해 쫓아다녔고, 구애 끝에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죠. 몇 년을 매일 만나면서 서로를 알아갔고요. 헤어지는 게 싫어 동거를 시작했었죠. 자연스럽게 우리 관계가 부모님에게 알려졌고, 그러다 보니 결혼은 당연한 거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이런 게 운명이 아닌가 싶어요.”
힘듦의 연속이었던 두 사람은 새 삶을 꿈꾸었다. 부부의 눈에 비친 세상은 빛처럼 아름다웠고, 세상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되던 시절이었다. 이현주가 허약 체질인 탓에 어렵게 얻은 큰딸 서현이의 탄생은 온 가족의 축복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발매한 곡 ‘네버엔딩 스토리’가 큰 인기를 끌면서 행복을 만끽하던 부부였다. 그리고 아들 우현이가 태어났다.
이현주 “지금 생각하면 그땐 정말 좋았어요. 남편은 서현이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예뻐했죠. 곡이 히트 치면서 바빠졌는데, 항상 저를 데리고 다녔어요. 덕분에 세상 구경 많이 했죠. 저도 그런 남편이 자랑스러웠고요. 그런데 우현이가 태어나면서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어요. 서현이와 다르게 모든 게 느린 아들의 성장을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는데 3세 때 자폐아 확진 판정을 받았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이현주는 ‘말이 조금 늦는 것뿐이야’ ‘괜찮아질 거야’라며 아들의 병을 인정하지 않았고, 뭐든지 조금씩 느리고 어눌한 아이와 늘 싸웠다. 딸과는 다르게 우현이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거다. 그녀는 차일피일 미룬 아들의 검진 결과를 받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이현주 “아들의 자폐증을 인정하지 못했어요. ‘내 아들이 그럴 리 없어’라는 생각에 특수 학교가 아닌 일반 유치원에 보내기도 했죠. 결과적으론 그게 아들의 심리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 거였는데 말예요. 무엇보다 우현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남편의 태도가 싫었어요. 서현이와는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함께 놀아주던 남편이 우현이는 쳐다보지도 않는 거예요. 그땐 정말 남편이 미웠죠.”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김태원도 방법을 몰랐던 거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이현주는 딸의 교육과 아들의 건강, 그리고 자신의 평온을 위해 필리핀으로 떠났다. 가지 말라는 남편의 만류를 뿌리쳤다. 그녀는 함께하며 힘든 것보다 헤어져서 서로 그리워하기를 선택했다.
이현주 “필리핀으로 간 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에요. 서현이는 자연스럽게 2개 국어를 할 줄 알게 됐고요. 특수 교육과 일반 교육을 병행했기 때문에 우현이도 많이 좋아졌어요. 우현이가 그린 그림을 좀 보세요. 얼마나 순수해요? 깨끗한 아이의 눈으로 그린 청량한 그림이죠. 나중에 전시를 해도 될 정도로 많아요.(웃음)”
정말이다. 최근 이현주가 발간한 에세이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에 담긴 우현이의 그림은 삐뚤삐뚤하지만 순수함이 느껴졌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이다.
이현주 “우현이는 지금 아주 건강해요. 원하는 걸 단어로만 말하던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죠. 아들이라 그런지 덩치가 커져 힘들긴 하지만 불편한 점은 거의 없어요.”
김태원 역시 아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낯선 곳에서 가족과 지냄으로써 가족의 위대함을 상기시키는 MBC 예능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 출연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첫 방송에서 아들과 함께 있기를 낯설어하던 김태원은 어느새 먼저 손을 내미는 아빠가 돼 있었다.
김태원 “<위대한 유산>을 통해 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어요. 아들보다 저의 성장 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동안은 몰랐던 아들의 면모를 확인했고, 한층 가까워졌어요. 지금 생각해도 출연하길 잘했다 싶어요.”
우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게 있다. 아들을 변화시키기보다 사람들을 이해시키자. 자신의 길 안에서 올바로 걷는 우현이를 빠르게 걷게 만드는 것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부드럽게 만들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현주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한번 꽂힌 건 계속해야 하는 습성이 있어요. 한번은 레스토랑에 갔는데 냅킨을 깔고 그 위에 수저를 놓는 종업원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나 봐요. 우현이가 식당의 모든 테이블에 냅킨을 깔고 수저를 놓기 시작했죠. 평소 같으면 하지 말라고 다그쳤을 텐데 그날은 레스토랑 주인에게 양해를 구했어요. ‘아들이 재미있어 하는데 수저를 아들이 세팅해도 되겠느냐’고요. 덕분에 우현이는 아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죠. 그때 생각했어요. 사람들을 이해시키자고요.”
부부에게 우현이는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라면 딸 서현이는 아픈 손가락이다. 아들이 태어난 후 제대로 된 관심을 주지 못했던 서현이는 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의 신경이 온통 동생에게 향해 있을 때 서현이는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아파했던 거다. 이현주는 엄마가 걱정할까 봐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서현이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이현주 “저는 관심 가져달라는 딸의 몸부림을 알아보지 못한 엄마예요. 서현이가 우울증 치료를 받을 때 저도 함께 받았어요. 딸이 아픈 게 제 탓 같아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의사가 내린 처방이었죠. 이러다가 저까지 죽는다는 거예요. 물론 지금은 완전히 회복됐어요.”
서현이는 지금 버클리 음대 진학을 준비 중이다. 기자와 만난 날 이현주는 딸의 대학 면접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국내 면접 일정이 지나간 탓에 일본으로 건너가 면접을 봐야 하는데 비행기 스케줄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란다. 아빠를 닮아 음악에 소질이 있는 딸의 이야기가 나오자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이현주. 여느 엄마들과 다름없었다.
이현주 “서현이는 아빠랑 똑같아요. 음악이라는 관심사도 그렇고요. 성격도 많이 닮았죠. 누가 아빠랑 딸 아니랄까 봐 식성도 똑같아요.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건 전적으로 지원하려고 해요.”
이현주는 인터뷰 내내 명랑했다. 남편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아들의 병을 창피해하지 않았다. 아픔 끝에 단단해진 딸을 자랑스러워했고, 자신의 삶을 희생이나 헌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현주가 하고 있는 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순간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