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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희의 인생고백

지난해 8월 서세원과 합의이혼하면서 32년간의 부부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서정희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On February 02, 2016

 


30년 넘는 세월 동안 짊어져온 인생의 무게감이 느껴져서일까? 서정희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물 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1980년대 최고의 CF 스타로 이름을 날린 그녀. 1983년 개그맨 서세원(60세)과 결혼 후에도 화목한 가정을 일구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화려한 삶을 사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언론을 통해 드러난 서정희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전해진 서세원과의 이혼 소식. ‘잉꼬부부’로 알려졌던 이들 부부의 파경 소식은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서세원은 특히 지난 2014년 5월 서정희를 폭행한 혐의로 입건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CCTV를 통해 드러난 사건 현장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서세원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살다 보니 풋풋하고 어렸던 서정희는 어느새 반백(半百)의 나이가 돼버렸다.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서정희는 아픔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는 사이,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을 달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서정희는 70대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벨을 누르자 마중 나온 어머니 뒤로 서정희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꾸미지 않은 민낯에 세월의 연륜이 느껴지는 잔주름이 늘어났지만 아름다운 외모는 변하지 않았다. “이미지 관리할 것도 없어요. 이제 나이도 있는데….” 그녀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작은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건네며 기자에게 자연스럽게 먼저 농을 던졌다. “세팅은 없습니다. (옛날) 서정희는 죽었습니다.(웃음)”  

  
인터뷰에 힘들게 응했어요. 
복귀의 시동을 거는 셈인가요?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사람하고 대화하는 게 그리웠죠. 마침 mbc <휴먼 다큐 사람이 좋다>(이하 <사람이 좋다>) 제작진이 손을 내밀어줬고요. 프로그램 타이틀이 저에겐 ‘서정희가 좋다’로 들렸어요.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인간 서정희’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숨을 쉴 것 같았죠. 큰 욕심 없어요. 재기하려고 한 적도 없고, 그냥 세상에 나오고 싶었던 거예요. 

 

이혼 후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떤 분은 ‘사람들이 저에게 배반감을 느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를 이해하고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해요. 상처가 아무는 동안 치유의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굳이 말 안 해도 시간이 지나면 저를 향한 시각이 바뀔 거라 믿어요. 그렇게라도 저를 위로하는 거죠. (연예) 활동을 하고 안 하고는 관심 없어요.  

 

 
말하지 않으면 남들은 어떤 상황인지 모르죠.
‘가면 우울증’이라고 하잖아요. 웃으면서 사람을 대하지만 정작 내 안은 뼛속까지 아픈 거죠. 앉아서 소리 없이 울 때도 많았어요. 사람들에게 말하며 아픔을 나누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어요. 나누면 천파만파가 되니까. 아이들도 생각해야 되고요. 용납하고 넘어가고 수용하고 헌신하고 희생하고… 저는 사랑을 그렇게 해석했어요. 주는 것만 생각하고 받는 것은 몰랐죠.  

 

중간중간 스스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없었나요? 

상황은 많았지만 저 스스로 누르고 있었어요. 아이들 때문에도 그렇고요.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아무리 그게 잘못된 결과일지라도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올 용기는 전혀 없었죠. 어떻게 해서든지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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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현실이 되던가요? 

현실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죠. 어려움을 겪으면 ‘서정희니까 견딜 수 있어. 서정희니까 할 수 있다’라고 여기며 스스로 위로받았어요. 여자들은 늘 어미의 마음이 있어요. 어떻게든 돌아올 것을 기대하죠. ‘부모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내 가족은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잘못을 그냥 받아들이고, 회복시키려고 노력해야 돼. 여기서 내 생을 마감해야 돼. 올인해야 돼’라며 제 모든 것을 동원해 스스로를 압박하고 (다른 욕망이) 나오지 않도록 선을 그었죠.

 

어떻게 생각하면 ‘집착’처럼 보이기도 해요. 행복을 갈망하는 집착이오. 
그렇죠. 음… 그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돼요. ‘내가 왜 살림과 애들에게 집착하고, 아이들의 스펙을 위해 왜 노력했는가’ 결국 제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내가 배우지 못했으니까 자녀를 잘 키우고 싶었고, 우리 엄마도 일찍 홀어머니가 됐으니 나도 아빠 없는 자식으론 키우기 싫어 가정을 지키려 했던 거죠. 제 상처를 보상받으려는 욕구가 제 안에 있었던 거예요. 본능을 이겨내고 성취할 때마다 스스로 기뻐했죠. 

 

이혼 후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치료와 배움의 시간이었어요. 매일 가는 병원인데도 길을 잘 몰라 울고 그랬죠. 장 보는 것부터 동사무소 가서 서류 떼는 것까지 어쩜 그렇게 모르는 게 많고 배울 게 많은지. 예전엔 도와주시는 분이 있어서 재료가 준비되면 전 요리만 했는데 이제는 다 제 몫이잖아요. 처음엔 그런 게 힘들더라고요. 운전하면 압박감에 시달려 처음엔 택시만 탔죠. 택시 아저씨한테도 목적지 설명을 제대로 못 해서 중간에 그냥 내려달라 하고 바닥에 앉아 몇 시간을 하염없이 운 적도 있어요. 그런 과정을 겪고 난 지금은 잘하고 있어요.(웃음) 

 

이혼 후 혼자라는 생각에 많이 외로웠을 것 같아요. 형제는 어떻게 되나요? 

1남 3녀예요. 다 미국에 살죠. 엄마까지 모두 미국 시민권자인데 저만 한국 시민권자예요. 철석같이 믿고 평생을 바친 내 가족하고만 살다가 그 끈이 딱 끊어지니까 한국엔 아무도 없더라고요. 애들도 미국에 있고…. 내가 누구를 믿고 그렇게 씩씩하게 살았나 생각될 정도로 아무도 없었어요.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꽃꽂이를 하고 집 안을 꾸미고 바느질을 했던 것도 제 안의 끼와 잠재된 것을 표출하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미친 듯이 했죠. 

  

세상 밖의 일은 전혀 모르고 살았네요.

솔직히 세상이 궁금하지도 않았어요. 지금도 드라마를 잘 안 봐요.  

 

정신 상담은 계속 받고 있나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갔다가 지금은 4주에 한 번 가요. 많이 좋아졌어요. 잠은 그날 이후로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조금씩 나아지겠죠. 옛날엔 이렇게 대화도 오래 못 했어요. 10분만 얘기해도 땀 흘리고 그랬죠. 

 

이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가정이 깨지는 것이었죠. 제 일생에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의지와 관계없이 그렇게 되니까 충격을 받았죠. “이혼이 싫었다면 네가 거기서 죽었어야지”라고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도 죽음 앞에서는 연약한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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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내려놓았죠?

네, 완전히 내려놓았죠. <사람이 좋다> 촬영할 때도 무방비로 한 거예요. 스태프들이 집에 오면 그냥 자다가 일어나 문 열어주고 그랬어요.(웃음) 오히려 내려놓으니까 진실된 모습이 나타나 반응도 세게 오더라고요. 날밤 새우고 열심히 준비했을 때는 욕만 먹었는데…(웃음)

 

<사람이 좋다> 출연 이후 시청자 반응에는 만족하나요?  

만족해요. 긍정적인 반응 자체가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모든 분이 좋아할 순 없잖아요. 80~90퍼센트의 사람이 긍정적으로 봐주신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하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도 여전히 고와요. 마음고생한 얼굴이 아닌데요?

솔직히 타고난 것도 있지만 여자로서 아름다움을 포기한 적은 없어요. 울 때도 어떻게 울고 있는지 순간순간 생각하고 그랬어요. 혼자 집에서 무용을 하고 춤추고 다니면서 거울 속에 비친 저를 바라보고 그랬죠. 전 여자로 태어난 사실에 감사해요. 아직도 제가 여자인 것을 느끼고 싶어요. 

 

지금 행복감을 주는 것은 뭔가요? 

저를 찾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좋죠. 사람이 너무 그리웠어요. 지금은 감사하게도 같이 일하자는 얘기도 여러 군데에서 들어와요. CF 스타로 인기를 누렸을 때도 이렇게까지 연락을 많이 못 받았어요. 19세 이후 이런 반응은 처음이에요. 

 

결혼을 앞둔 분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잠시 고민하더니) 성숙한 다음에 결혼해라.(웃음) 단지 결혼식을 위한 준비가 되면 안 되고요, 서로의 성향을 잘 체크해보세요. 꼭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다름에 대해 알고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서정희에게 ‘결혼’이란 뭘까요? 

살아보니까 정말 별거 아니죠. 다만 결혼을 이용하면 안 돼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사는 건데, 한쪽에만 치우치면 그건 사랑도 아니고 결혼도 아니에요.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해요. 결혼은 책임이 따르는데 그 책임을 한쪽에만 요구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결혼 생활이 후회스럽나요?

원망한 적은 없어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으로 감사해요. 같이 사는 동안 자녀들로 인해 행복했고, 기뻤고, 아이들도 많은 것을 이뤄줬고요. 이젠 서정희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니까 그걸로 감사해요. 이젠 남이 된 서세원씨도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를 원망하지는 않아요.

 

’인간 서정희’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요.

제가 의외로 끼가 많더라고요. 정직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때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죠. 진정성 있는 ‘인간 서정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모든 것을 열어두고 있는 상태예요. 좋은 여건이 되면 일하고 싶고, 서정희란 이름을 다시 찾고 싶어요. 

 

특별히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광고가 제일 하고 싶어요. 제가 했던 게 광고니까요. 나이에 맞는 화장품 모델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고통 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움 같은 거 있잖아요.(웃음) 연기도 하고 싶어요. 

 

구체적인 계획은요? 

없어요. 그냥 찾아주면 감사하죠. 아픈 분들에게는 손 내밀어 도와주고 싶어요. 또 대중이 찾아주시면 열심히 활동해야죠.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아요. 전 그냥 자유인이에요. ‘프리덤!’ 저를 찾아주는 곳이면 어디든 ‘콜’! 합니다. 

 

KEYWORD
CREDIT INFO
기획
이예지 기자
취재
윤성열(<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기자)
사진
<서정희의 주님>(두란노, 2008)
2016년 02월호
2016년 02월호
기획
이예지 기자
취재
윤성열(<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기자)
사진
<서정희의 주님>(두란노,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