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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요즘 남편

아내에게서 한 달 용돈을 10만원씩 받았다며 이혼 소송을 낸 한 남성이 얼마 전 승소했다. 요즘 남편들이 누리는 가정에서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방증하는 사례다. 옆집 남편은 어떤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요즘 남편들의 트렌드를 짚어봤다.

On September 21, 2015

“이런 남편이 또 있을까?” 이런 질문을 품은 아내는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남편의 배려심에 크게 감동한 아내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에 대해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아내일 것이다. 사실 후자가 대부분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이런 아내들의 속마음을 후련하게 해주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채널A <아내가 뿔났다>는 1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해온 아내들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남자와 가상 결혼생활을 하게 되고, 실제 남편들이 그것을 보며 뿔난 아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다.

녹화를 시작한 지는 이제 두 달가량. 뿔난 아내 중 한 명인 MC 박미선은 “가상 결혼생활을 하니 활력이 생기고 실제 남편이 약간 긴장하는 것 같다”고 했고, 가수 김정민의 아내인 루미코 역시 “애정 표현 하나 없던 남편이 요즘은 달라졌다”고 말했다. 우리 남편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황민 (박해미 남편)_결혼 20년 차

20년 전 결혼한 연예계 대표 아홉 살 연상연하 커플. 남편 황민은 결혼 20년 차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아내와의 스킨십을 무척 즐기는 박력남이다.

깜빡깜빡 잊는 아내를 살뜰히 챙겨주는 헌신적인 남자지만 아내가 시키는 집안일만큼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 하는 남편.


김정민 (루미코 남편)_결혼 10년 차

6개월의 불같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 심지어 국경을 초월한 다문화 부부! 신혼 땐 다정하고 자상한 남편이었지만 결혼생활 10년 차쯤 되고 나니 남편도 변했다.

아이들에겐 100점짜리 아빠지만 아내에겐 애정 표현이 없는 남편이랄까? 아이들만 너무 사랑해 아내를 서운하게 하는 남편.


이봉원 (박미선 남편)_결혼 22년 차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지만 이들에게도 그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아내를 설레게 하는 스킨십도, 따뜻한 말 한마디도 웬만해선 잘 건네지 않는다.

아내를 살뜰히 챙겨주기보다는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남편.

고민환 (이혜정 남편)_결혼 37년 차
의학박사인 남편으로 요리연구가인 지금의 아내 이혜정과 37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다.

끼니때가 되면 진수성찬도 뚝딱 차려내는 아내지만 남편 고민환 박사는 입이 무척 짧은 편. 심지어 무뚝뚝하기까지 해서 아내는 남편의 막말에 상처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전형인 셈.


독자 440명에게 물었다

결혼 10년 차 주부 조씨는 최근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했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남편 덕분에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었고, 남편의 성격이 호쾌해 웃음 가실 날 없는 화목한 가정이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쌓였던 것.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남편, 무엇이 문제였을까. 조씨가 제기한 이혼 사유는 가사 분담의 부재다.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가사를 도와주지 않는 남편이 이제는 꼴도 보기 싫다고. 퇴근 후면 씻지도 않고 소파로 직행하는 남편이 뱀 허물 벗듯 벗어 던진 옷을 정리하고, 밥 달라 물 달라 끊임없는 남편의 요구에 수발들 듯 하고 나면 하루가 지나간다. 이제는 씻겨달라고까지 할 기세라 더는 못 참겠다는 조씨. 떡두꺼비 같은 두 아들을 생각하면서 참고 살아온 지 10년째지만 이젠 담판을 지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혼 여성 중 57.8%가 가사와 육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맞벌이 여성은 전업주부보다 가사노동은 3시간가량 적게 하지만 수입을 위해 일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오히려 2시간 더 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마저도 자녀가 없을 때의 상황이다. 한 명 이상의 자녀가 있다면 아내들의 노동 시간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 <우먼센스> 독자 440명에게 남편의 적극적 협조 없이는 친구들과의 수다도 불가능한 아내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300명의 아내가 가사, 즉 설거지부터 빨래, 청소까지 모든 집안일을 다 한다고 답했다. 쉬는 날은 남편이 하지만 평소에는 아내가 한다는 응답자나 쓰레기 분리수거 등 지저분한 일은 남편이 한다는 아내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남편들은 주방에 들어오기를 꺼려하는 분위기. 440명 중 100명이 남편과 함께 한다고 응답한 반면 남편이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40명뿐. 육아 역시 마찬가지다. 임신과 동시에 퇴사하는 워킹맘이 많은 이유도 그것. 가사를 전담한다는 아내보다 육아를 전담한다는 아내가 43명이나 많다는 것은 아내의 사회 참여율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육아는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부싸움은 당연한 결과다. 남편에게 불만을 품은 아내들이 봉기를 하고 있는 것. 2백10명의 아내들이 ‘가사 문제로 남편과 싸운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결혼 2년 차 신혼부부인 이씨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기세였던 연애 시절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남편을 보며 실망할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2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는 이씨는 요즘 짧은 연애 끝에 결혼한 자신의 선택이 후회스럽다.


Q 집안 살림은 누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남편의 가사 참여가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사는 아내의 몫이다. 주부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워킹맘들의 불만이 많다. 일하랴 살림하랴 정신없는 엄마들.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살림은 뒷전이고 누워서 TV만 보는 남편을 보면 정말 이 결혼 무르고 싶다!



Q 육아는 누가?

가사를 도와주는 남편이 32%나 있다는 건 장족의 발전이다. 육아는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니 말이다. 약 77%가 ‘육아는 아내가 한다’고 응답했다. 새벽에 보채는 아이를 안은 채 졸음수유를 하는 엄마들. 딸이 울든 말든, 아들이 아프든 말든 세상 모르고 자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들은 오늘도 울분을 삭인다.



Q 경제권은 누구에게?

총각 시절 겁 없이 쓰던 버릇을 결혼해서도 버리지 못한 남편들. ‘있으면 쓰고 보자’는 남편들의 그릇된 경제 관념 때문에 파산 위기에 처한 가정이 많다. 이 때문에 아내들은 학창 시절에도 안 하던 경제 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래도 좌절하지 말자. 경제 관념 제대로 박힌 남편들이 35%나 있다는 사실!



Q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본 적이 있다

아내들은 남편의 외도를 의심할 시간도 없이 바쁘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빨래하랴 청소하랴, 우는 아이 젓 주고 재우랴,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란다. 와이셔츠에 여자 화장품이 묻어 있어도 눈 감아주기 일쑤. 69%의 응답자가 ‘가정의 평안을 위해 의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Q 과묵한 남편 vs 수다스러운 남편

약 64%의 응답자가 과묵한 남편보다는 수다스러운 남편이 낫다고 답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애교 많고 살가운 남자가 더 좋다는 것. 게다가 잘생기고 능력까지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남편이다. 뿔난 아내를 달래는 방법은 조용히 기다리는 게 아니다. 먼저 다가가 애정을 표현할 것.


요즘 주부들에게 남편은 웬수 같은 존재다. 아침 일찍부터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면 물 밀듯이 쏟아지는 살림들. 청소하고 빨래하고 숨 좀 돌릴라 치면 아이들이 돌아온다. 간식부터 저녁까지 해 먹이고 나면 귀가하는 남편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남편이 가장 얄미울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안 도와주고 누워서 게임을 하거나 TV를 볼 때’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시댁에서 내 흉 볼 때’ ‘예고 없이 술 약속 잡을 때’ ‘내 편이 아니라 남의 편 들어줄 때’ 등 다양한 이유가 쏟아졌다. 가사와 육아는 당연히 아내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남편들의 모습을 보면 치미는 울화를 참을 수 없다는 아내들. 사소한 일에 삐치고 말도 안되는 일로 떼쓰는 남편은 철없는 아들보다 더 철없어 보인다고.

고된 하루를 보내는 아내들이 남편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랑해’라고 대답한 응답자의 수가 압도적이다.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고생했어’ ‘당신이 최고야’ ‘고마워’ 등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말은 여자를 감동시키는 법. 남편들이여! 오늘 퇴근 후에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윙크를 날려보자. 모르긴 몰라도 한 달은 평안하지 않을까.



INTERVIEW


아들 같은 남편과의 로맨스

뮤지컬 배우 박해미와 황민 부부는 늘 새로운 삶을 꿈꾼다.아홉 살 연상연하 커플. 천생연분 사주를 타고나서일까? 누가 봐도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쿵 하면 짝, 짝 하면 쿵 하는 부부는 틈만 나면 데이트를 즐겨 여전히 신혼 분위기. 스케줄이 비는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행을 떠나는 부부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날도 어김없이 가평으로 여행을 떠났다. 큰아들 같은 남편, 아빠 같은 두 아들과 사는 행복한 라이프. 박해미는 지금도 남편과의 로맨스를 꿈꾼다.

집안일은 주로 누가 하나요?

사실 저나 남편이나 워낙 스케줄이 바쁘다 보니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몇년을 혼자서 하다가 고민 끝에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를 고용했어요. 그래도 여자 손이 가야 하는 부분은 주로 제가 하고요. 남편이 예전에는 많이 도와줬는데 어느 순간 잘 안 도와주더라고요. 그 때문에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거의 포기 상태에요. 집이 단독주택이라 남자 손이 가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는 조금 힘들어요.

남편에게 가장 크게 화났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 불만인 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할 때죠.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한국에 친구가 없어요. 회사에서 촉망받던 유능한 남자였는데 저 하나만 보고 한국에 왔거든요. 당연히 외롭죠. 그러다 보니 제 주변 지인들과 많이 친해졌어요. 술자리에서는 본인이 왕이에요. 분위기를 주도해야 하고 새벽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시죠. 이제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술을 좋아하는 남편을 보면 화가 나요.

화날 땐 어떻게 표현하나요?

결혼 초에는 화가 날 때마다 소리 지르면서 화를 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바뀌어서 참는 편이에요. 남편이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는 것 같아요. 큰아들이라 생각하고 기대하지 않으면 편해집니다. 또 남편이 자신의 청춘을 저에게 바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 측은한 마음에 욕심도 버리게 되죠.

남편이 가장 크게 화를 낸 것은 언제였나요?

가끔 욱하지만 마음이 여린 성격의 저를 걱정해요. 저는 뒤끝 없기 때문에 과거에 제 뒤통수를 쳤던 사람이라도 용서하고 같이 일하게 되죠. 남편은 그런 제 모습에 화가 나나 봐요. 최근에 전남편을 우연히 만났고 능력적인 부분에서 훌륭한 사람이라서 같이 일하게 됐는데, 엄청 화를 내더라고요. 저는 단순히 사업 파트너로 생각하는데 말예요.

남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

낭만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되게 현실적인데 남편은 이상적이죠. 여자들은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는데 남편은 달라요. 아이들 교육에 대한 문제도 저랑 많이 다르죠. 유치원을 보내야 하는 시기인데 남편은 ‘왜 보내느냐’는 식이었어요. 아이를 구속하는 걸 싫어하는 자유로운 성격이라 여행하고 싶은 날이면 아들도 학교에 안 보내요. 그 덕분에 좋은 점은 아들이 친화력이 뛰어나고 감성이 풍부하다는 거예요.

남편의 성격을 파악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연애결혼을 했기 때문에 남편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3년 정도 살아보니까 남편이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면 쓰고 보자는 식의 경제관념을 지닌 사람이라는걸 알겠더라고요.

경제권은 누구에게 있나요?

경제관념이 없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돈 관리는 남편이 해요. 남편은 돈을 관리하고 저는 그런 남편을 관리하는 식이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지만 숫자에 굉장히 약한 저보다는 나을 거예요. 남편이 수학적 두뇌가 좋거든요. 세무사가 할 일을 본인이 할 정도로 똑똑해서 믿고 맡겼어요.

연하의 남편이라 좋은 건 뭘까요?

저희는 조금 독특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다른 부부들은 계획적으로 산다면 저희는 사실 이렇다 할 계획이 없어요.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거예요. 저희 둘 다 영혼이 자유로운 편이라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거든요. 심심하면 데이트를 해요. 주변 지인들을 다 불러서 파티를 하기도 하고요. 남편이 연하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저희 부부의 성향이 조금 독특한 것 같아요.

결혼생활을 하면서 얻은 지혜가 있다면요?

가장 많이 배운 건 참는 거예요. 결혼 전에는 잘 못 참았어요. 수틀리면 박차고 나가기 일쑤여서 ‘여자 깡패’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죠. 이제는 상대방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인내하게 돼요. 결혼과 육아가 저를 철들게 했어요.

아직도 꿈꾸는 로맨스가 있나요?

여자들이 흔히 말하는 로맨스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행복해요. 무대 위의 저를 보고 ‘정말 멋있는 여자’라고 할 때면 살아 있는 기분이 들어요. 연기에 더 자신감도 생기고요. 보통 사람들은 변신이 쉽지 않은데 저는 무대 위에서 늘 변신하잖아요. 그래서 권태기도 없는 것 같고요. 여자로서 매력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 행복합니다.


아내에게도 데이트가 필요하다

가수 김정민과 루미코 부부는 올해로 결혼 10년 차다. 평소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데다 아이들도 잘 돌봐주는 남편이라 주변에선 “그 정도면 됐지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루미코씨에게도 그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했으니 남들처럼 알콩달콩한 연애는 길게 즐겨보지 못했고, 결혼생활 10년 동안 남자아이 셋을 낳아 길렀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국제결혼 후 낯선 한국 땅에서 생활하다 보니 신접살림을 시작한 마포 이외에는 가본 적도 없단다.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나요?

빨래, 청소, 육아까지 주방 일을 빼고는 완벽하게 도와줘요. 설거지나 요리는 끔찍하게 싫어해서 거의 주방에 들어가질 않아요. 스물일곱에 결혼한 뒤 부엌일은 응당 아내 몫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이제 부엌일도 좀 도와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우리 남편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이죠. 친구들에게 “우리 남편 같은 남자 만나 결혼하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남편에게 특별히 서운한 점은 없나요?

당연히 있죠. 남편을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고, 그 후 10년 동안 아들을 셋이나 낳고 살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애를 즐겨보진 못했어요. 게다가 저는 일본 사람이라 한국 생활이 낯설 수밖에 없잖아요. 지금껏 서울에서 핫 플레이스라는 곳은 구경도 못 해봤어요. 10년간 집, 마트, 아이들 학교만 드나들었죠. 남편과 함께 데이트하면 좋겠지만 남편은 그걸 귀찮아해요. 그렇게 귀찮다면 저도 새로 사귄 한국 친구들과 근사한 곳으로 놀러 다닐 거예요.

기억에 남는 남편과의 데이트가 있나요?

결혼 후 맞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 때 데이트를 하고는 크게 싸운 게 생각나요. 모처럼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예약을 잡아놓지 않아 몇 시간 동안 길을 헤매고 다녔죠. 겨우겨우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자리 잡고 앉았는데 직원들이 바빠 정신이 없었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주문한 메뉴가 나오지 않는 거예요. 몇 시간을 기다린 뒤 나온 건 차갑게 식은 랍스터와 스테이크였죠. 그전까진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느라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는데, 그날 너무 힘들고 지쳐 서로에게 엄청 화를 냈어요. 최악의 날이었죠.

남편에게 화가 났을 땐 어떻게 표현하나요?

처음에는 참아요. 그래도 반복되면 일부러 존댓말을 하죠. ‘나는 화났다. 기분이 안 좋다’는 걸 은근히 표현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제 남편은 눈치가 없어요.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오히려 저에게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라고 물으면 저도 확 짜증이 날 때가 있어요.

최근에 화내며 싸운 적이 있나요?

얼마 전에 남편이 미국 LA로 공연을 하러 갔거든요. 가기 전에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라고 하기에 아이들 운동화를 좀 사다 달라고 하면서 카카오톡에 아이들 신발 사이즈를 남겼어요. 그런데 현지에 가서 전화를 걸더니 “지금 아웃렛인데 뭐 필요한 거 없나” 하고 또 물어보는 거예요. 다시 대답해줬어요. 미국에서 묵는 마지막 날 밤에 전화가 왔기에 “운동화는 잘 샀어?” 하고 물어봤죠. 근데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정말 황당했어요. 아니, 그럴 거면 몇 번씩 뭐가 필요하냐고 왜 물어본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남편이 귀국한 뒤에도 싸웠어요. 남편의 문제는 제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거예요.

이번에 <아내가 뿔났다>를 촬영하면서 실제로 남편이 달라졌나요?

제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부분이 서운하다고 했잖아요? 요즘엔 그래도 제 말을 귀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남편과 함께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어 고속도로를 타고 가고 있었거든요. 제가 이것저것 이야기하니까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제 남편은 천성이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남자예요. 결국 제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고속도로 출구로 못 빠져나간 거죠.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귀엽게 느껴졌어요.

꿈꾸는 데이트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제가 남편을 만났을 때가 스물일곱이었는데 어느새 서른일곱이 됐어요. 한국에서 살림만 하다 보니 정작 저는 한국의 멋있고, 맛있고, 예쁜 게 뭔지 잘 몰라요. 가끔은 여느 연인들처럼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와인을 마시며 남편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굳이 멀리 가자는 게 아니에요.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남편과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아요.



남편 대담
  • 남편 1 3년 연애 끝에 2011년 결혼한 현직 PD. 분위기를 이끄는 호쾌한 성격의 소유자.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과 딸을 보며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남편 2 총각 시절 방황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새 삶을 살고 있는 사업가. 속도위반으로 급하게 딸을 얻었지만 당황은 금물. 지혜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남편 3 캠퍼스 커플이었다가 아내의 졸업과 동시에 결혼에 골인한 모 기업 홍보팀 과장.
  •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은 그대로 멈춰도 좋다.



남편들의 속사정

남편 1 결혼 5년 차 가장입니다. 네 살배기 아들과 곧 돌을 맞는 딸이 있어요. 저와 똑같이 생긴 외모 때문에 누가 봐도 아빠와 아들, 아빠와 딸입니다.(웃음) 요즘에는 아내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요. 퇴근 후 현관을 열었을 때 “아빠~” 하며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면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립니다. 결혼 전에는 아이들 때문에 피로가 풀린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빠가 되고 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쑥쑥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감도 들고요.

남편 2 저는 속도위반으로 아내가 임신 4개월이었을 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직까지 혼전 임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내가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연애 기간이 짧아 아내의 임신 소식에 놀라긴 했지만 결혼을 할 것인지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속전속결로 진행한 결혼식이라 가족과 주변 지인들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더라고요.(웃음) 요즘은 태어난 지 18개월 된 딸의 재롱을 보는 맛에 삽니다. 제 입맛이나 습관, 사소한 버릇을 닮는 딸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남편 3 저는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나 아내의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어요. 둘 다 화려한(?) 과거를 자랑했기 때문에 당시 저희의 결혼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죠.(웃음) 어린 나이에 결혼해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워요. 불만이오? 부부 사이에 불만이 없을 수가 있나요.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맞춰가다 보니 어느새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되어 있더라고요.

남편 2 신혼 초에는 수십 번도 더 싸운 것 같아요. 30년 넘게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가 한순간에 맞춰지기란 쉽지 않죠. 대화만이 정답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을 워낙 좋아해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 술 약속이 있는 남자였는데 결혼 후 단번에 끊으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어쩌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고민하다가 집에서 마시기로 했어요. 아내와 아이가 모두 자는 시간에 거실에서 마시는 맥주 한 캔에 그날의 스트레스가 다 풀리더라고요.

남편 1 저도 마찬가지예요. PD라는 직업 특성상 많은 시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아내는 이해하지 못하죠. 저는 순차적으로 줄여갔어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그다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이런 식으로요. 한 달 내내 칼퇴근해 집에 가는 달에는 “이번 달엔 잘했다”는 아내의 칭찬을 받죠.

남편 3 육아를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커요. 아이의 목욕만큼은 제가 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한 아내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는 거죠. 그 시간에 저녁식사 준비도 할 수 있고요. 30분 정도 아이를 목욕시키고 나면 녹초가 되지만 그래도 좋아요. 아이를 보며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할 텐데’ 하고요.

남편 1 저도 마찬가지예요. 혹시나 사고를 당해 갑자기 일을 할 수 없는 순간이 올까 봐 두렵다고 할까요? 매달 기본적으로 필요한 생활비가 있으니까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감과 부담이 커요. 두 아이를 키우려니 어깨가 더 무겁죠. 저만 바라보며 사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살고 오래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편 2 저는 조금 다른 개념의 책임감이 있어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경제적 책임감보다 아이들이 존경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죠.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잖아요. 아이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해요. 바른 생각, 바른 행동을 하면 아이도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하지 않을까요? 아내에게도 존경받는 남편이 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지금까지 살면서 언성을 높여본 적이 없어요. 아내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따르려고 하죠.

남편 1 살면서 터득한 노하우 중에 하나가 ‘아내의 말을 잘 듣자’입니다.(웃음) 총각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유부남들은 공감하죠. 가정이 평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잘 따르는 거예요. 예를 들어 회식이 있다고 알렸을 때 아내가 정해준 귀가 시간을 지키는 거죠. 신뢰가 쌓이면 결국 가정이 화목합니다.

남편 2 저도 동감이에요. 하지만 아내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할 때면 지치기도 합니다. 남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이라는 게 있거든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처럼 안 될 때도 있고요. 많은 아내가 남편이 겪는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어요.

남편 3 아내의 임신 기간에 첫 번째 ‘멘붕’이 찾아왔어요. 부부 관계를 하지 못하는 거죠. 성욕이 사라졌다기보다 혹시나 태중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자연스레 잠자리 횟수가 줄어들었어요. 출산 후에는 육아에 지친 아내가 저의 적극적 대시(?)를 거부하고요. 가끔은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말예요. 저는 아직도 마음만은 신혼이랍니다.(웃음)

남편 2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루 종일 아이 돌보느라 지쳐 쓰러져 잠든 아내 때문에 요즘 남편들은 본능을 해결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죠. ‘시간이 지나면 기회가 오겠지’라는 생각은 잘못된 거였어요. 아내와 단둘이 여행이라도 가고 싶지만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꿈도 못 꾸고요. 저는 언제쯤 별을 볼 수 있을까요?

남편 1 맞아요. 아내와 대화로 풀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성욕인 것 같아요. 혼자서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힘든 게 있어요. 바로 어머니와 아내의 관계죠. 결혼 전에는 ‘우리 엄마랑은 아무 문제 없을 거야’라고 장담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드라마에서만 보던 고부갈등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는 막막합니다. 어머니와 아내는 아주 사소한 것들로 싸워요. 남자가 봤을 땐 아무것도 아닌데 여자만의 리그에서는 그게 아닌가 봐요. 어머니가 의미 없이 던진 한마디에 아내는 상처받고, 아내의 말대답에 어머니는 기분 상해하죠.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남편 3 정답은 없지만 한 가지는 조언할 수 있어요. 멀리 떨어져 사는 거죠. 제 고향은 충청도인데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서울이에요. 워낙 바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찾아 뵙기도 어려워요.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가끔 만날 때는 누구보다 다정한 고부예요. 어머니도 며느리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 같고요. 한 번 틀어지면 계속 틀어지기 십상인데 저희는 애초에 싸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아 사이가 좋은 것 같아요. 제 아내는 “시어머니가 친정엄마보다 더 좋다”고 말할 정도라니까요.

남편 2 아내에게 바라는 건 없어요. 똑 소리 나게 하는 살림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원하면 직장에 다니라고도 할 거예요. 다만 한 가지, 시댁과 친정에서 사랑받는 며느리와 딸이 되기를 바라요. 고부갈등 없는 집은 없다지만 제 아내만큼은 엄마에게 인정받는 며느리였으면 하는 거죠. 물론 중간에서 제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요.

남편 1 제가 아내에게 바라는 건 현명한 여자였으면 하는 거예요. 물론 지금도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내이자 엄마지만,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을 텐데 저를 믿고 헤쳐나갈 수 있는 현명한 여자이길 바라요. 예를 들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온 제 옷에 여자 화장품이 묻어 있어도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는 아내요. 순간적 감정에 휩쓸려 싸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 제가 다른 여자를 만날 일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남자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자의 화장품이 옷에 묻는 일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남편 3 아내를 너무 사랑하지만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어느 날은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짜증이 밀려올 때도 있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무산돼 스트레스받는 날도 있죠. 그럴 땐 다그치지 말고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으면 해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편이 아내에게 바라는 점일 거예요.

남편 1·2·3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아내를 향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겁니다. 아내들은 늘 ‘변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오히려 연애 초반보다 더 단단해졌어요.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긴장이 풀어졌을 수는 있지만 사랑은 더 진해졌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아내가 남편들의 진심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런 남편 어때요

남편의 아이콘


유준상 | 모든 남편을 고개 숙이게 만든 유준상의 자상함. 설렘 지수 300.

드라마 한 편으로 ‘국민 남편’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으니 이만하면 할 말 다했다. 부모님에겐 듬직한 아들, 아내에겐 자상한 남편. 성실한 데다 훈훈하기까지 하다. 2012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등장한 유준상은 아내들이 바라는 남편의 종합편을 그려냈다. 그때의 ‘국민 남편 유준상’이 떠올라 3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실제 아내 홍은희가 부러운 건 기자만은 아닐 듯.


정보석 |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아내까지 쫓아내는 장면이 포인트. 불쾌 지수 600.

작년에 종영한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의 정보석.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서라면 아내와 자식들을 교활하게 이용하고 때로는 내치기도 하는 악랄한 남편이다. 자신의 꿈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보니 남들 앞에서는 따뜻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인 양 연기를 한다. 그에게는 가족에 대한 사랑도, 연민도 없는 듯하다. 아내들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아내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하면서도 어머니의 말씀이라면 신주단지 모시듯 끔뻑 죽는 모습. 좀 드라마틱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이런 남편 실제로 많지 않나?


변우민 | 불륜 남녀를 처단하는 아내 장서희의 치열한 복수. 통쾌 지수 300.

아내들을 화나게 하는 남자의 전형으로 배우 변우민을 빼놓을 수 없다. 129부작으로 2008년 방영된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아내를 열 받게 하는 남편 ‘정교빈’ 역할을 맡은 당대 최고의 불륜남 캐릭터였기 때문. 당시 현모양처인 아내 장서희를 버리고 김서형을 택해 대한민국 아내들의 공분을 샀다. 깐죽깐죽하는 ‘정교빈’의 캐릭터와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은 스토리 전개는 드라마에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안겨줬지만 그만큼 인기도 절정이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장서희는 얼굴에 점을 찍고 돌아와 복수의 칼을 갈며 전남편을 또다시 유혹하는데 결국 엔딩에선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내연녀가 모두 죽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불륜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아내들의 쓰린 속을 통쾌하게 해주었다는 점만큼은 최고.


이순재 | 부장적인 분위기를 뒤흔드는 며느리 하희라의 열연이 포인트. 통쾌 지수 200.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우 이순재. 대중이 기억하는 남편 이순재의 모습은 1991년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이병호 사장’이다. 이순재는 극 중 아내 김혜자를 심하게 구박하는 가부장적인 남편으로 그려졌다. 그는 ‘현대판 자린고비’라 일컬어질 정도로 생활비를 적게 줘 아내를 숨 막히게 하는 것은 물론 딸이 바지를 입었다고 크게 꾸짖는다. 이런 집에 하희라가 며느리로 들어가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간 가부장적인 풍토에 찌들어 살던 주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드라마 64.9%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순재는 그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민주자유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가부장적 남편에 대한 아내들의 작은 반란이었던 셈.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남편과 아내 사이로 출연한 이w순재와 김혜자는 17년 후 또다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만났는데, 이때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로 출연했다는 것!


이종혁 | 내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남편 이종혁은 귀여움 지수 200.

<신사의 품격>은 배우 이종혁의 대표작이라 일컬어도 좋을 듯하다. 장동건, 김수로, 김민종이라는 쟁쟁한 배우 사이에서 이종혁의 ‘포텐이 터진’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 이종혁은 낙천적이고, 겁 많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천생 한량이다. 왕년에 빨간 스포츠카를 몰던 오렌지족 출신인 그는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누나를 아내로 맞아 카페 사장으로 산다. 아내라기보다는 ‘주인님’이라고 모시며 살던 그는 어느 날 아내로부터 이혼 서류를 받는다. 천방지축 남편이지만 전혀 밉지 않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 이후 아내를 ‘진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며 철없는 중년에서 철든 남편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박혁권 |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면서도 큰 소리 한 번 치지 못하는 모습. 불쌍 지수 500.

김희애와 유아인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사랑을 그린 드라마 <밀회>. 김희애의 남편 역을 맡은 박혁권의 캐릭터는 처량하기 그지없다. 잘나가는 아내의 등쌀에 떠밀려 집 안에선 응석이나 부리고 부부 관계 역시 뜨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바깥에서 찬 바람을 맞고 들어온 아내를 제대로 위로해주지 못할뿐더러 아내가 바람이 난 것을 알면서도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편이다. 능력 있는 아내 옆에서 기죽어 사는 남편의 전형을 제대로 그려낸 셈. 그런데 그것 아나? 안타까운 남편 역을 소화한 배우 박혁권은 사실 싱글이라는 거!


지진희 | 이 매력남의 독신에 대한 의지를 꺾는 스토리 전개가 포인트. 통쾌 지수 100.

2009년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남자 주인공 지진희가 남편 역할을 맡은 것은 아니지만, ‘나쁜 남자’ ‘골드 싱글’ ‘초식남’ ‘오피스 와이프’ 등의 트렌드와 맞물린 캐릭터이기에 선정했다. 극 중 지진희는 고집스러운 데다 혼자이길 좋아하는 독신주의자였는데 성격이 삐딱하고 빈정대는 것이 취미인 이 남자는 상대를 불쾌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는 캐릭터였다. 한마디로 ‘나쁜 남자’인 셈인데 의외로 매력은 있다. 절대 결혼할 수 없을 것 같은 남자가 엄정화를 만나면서 서서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성장한 것. 이런 남자와 남편이라면 엄청 고생할 것 같지만 나쁜 남자가 매력있는 법이니까.

CREDIT INFO
취재
이예지·정희순 기자
사진
최항석, 서울문화사 DB, 채널A 제공
2015년 09월호
2015년 09월호
취재
이예지·정희순 기자
사진
최항석, 서울문화사 DB, 채널A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