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뒤태에 집착하는 남성의 이야기, 가슴보다는 엉덩이 사이즈에 민감한 남자의 속내를 직접적인 가사로 유쾌하게 풀어낸 ‘어머님이 누구니’가 공개된 직후 대한민국은 뒤태 열풍에 휩싸였다. 평소와는 다른 타이트한 의상을 입고 출근한 날 아침, 동료 기자가 물었다. “네 어머님이 누구시니?” 지극히 박진영스러운 음악에 대한민국이 열광했다.
2년 만에 발매한 ‘어머님이 누구니’가 각종 음원 차트를 휩쓸며 가요계를 강타한 4월의 어느 날, 그동안 공식적인 방송 스케줄 외에는 언론과의 만남을 자제해오던 그가 이번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섰다. 후배들에게 차가운 독설을 서슴지 않던 SBS 속 그를 상상했다. 강하고 날카로울 것만 같던 박진영은 차분했다. ‘날 떠나지 마’ ‘엘리베이터’ ‘청혼가’ ‘Kiss Me’ 등 내놓는 곡을 전부 흥행시킨 것도 모자라 기획하는 아이돌 그룹을 한류의 중심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최근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와의 비교, 2PM과 2AM의 부진한 성적이 내 탓인 것만 같아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선보인 곡이 인기를 얻으니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며 웃어 보였다. 솔직한 대답에서 내공이 느껴진다.
“제가 만약 스무 살이었다면 지금의 이런 반응이 좋아 죽었을 거예요. 인기에 취해 난리가 났겠죠. 가수로 살면서 인생의 많은 부분이 저의 노력과 상관없이 이뤄진다는 걸 안 이후, 좋은 결과가 저를 교만하게 하지 않아요. 반대로 말하면 어떤 나쁜 결과가 저를 좌절시키거나 기죽게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죠. 모든 관점을 결과가 아닌 과정에 맞추고 있다 보니 ‘어머님이 누구니’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도 차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환호’와 ‘열광’ 앞에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언젠가 무대 위에서 무심결에 내뱉은 말, “60세 때 가장 춤을 잘 추는 가수가 되겠다”고 했던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스스로 채찍질했다. ‘최고의 춤꾼’이라는 수식어보다 ‘약속을 지킨 가수’라는 평가를 얻기 위해 그는 오늘도 연구하고 춤을 춘다.
“팬들 앞에서 ‘60세에 최고의 춤과 노래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켜야죠. 그 방법을 연구 중이에요. 정신은 평생 젊을 수 있어도 몸은 평생 젊을 수 없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근육이 오랫동안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공부 중이죠. 그동안 연구한 것을 매뉴얼화해서 매일 실천하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제 삶이 힘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 정한 규칙과 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용납되지 않거든요. 단순히 60세에도 무대 위에서 춤출 수 있는 가수가 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에요. 누구나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건강한 생각을 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에요.”
숱한 시행착오 끝에 발견한 노하우 덕분일까? 박진영은 1년 전보다 더 빨라졌고 2년 전보다 훨씬 유연해졌다. “대중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발라요. 피부에 양보하는 거죠.(웃음) 지난 2년 동안 감기에 걸려본 적도 없어요. 한 번도 아프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모든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하고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과격한 유산소운동을 해요. 제 몸에 쌓인 독소와 활성산소를 빼는 운동을 통해 젊음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어요.”
‘롱런’을 위한 박진영의 연구와 노력은 음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전주만 들어도 박진영의 곡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것’ ‘그가 아니면 부를 수 없는 노래들’이 이른바 ‘박진영 스타일’로 통한다.
“제가 지금까지 부른 노래는 모두 제 스타일이에요. 모든 곡이 그 당시의 저를 닮아 있죠. 야한 상황에 놓였을 때는 야한 노래가 나오고, 슬픈 일이 있었을 때는 슬픈 노래가 만들어져요. 그때 그 상황에서 제가 했던 고민과 고뇌가 노래로 표출되는 거예요. ‘어머님이 누구니’는 어느 날 어떤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을 봤는데 순간적으로 놀라서 솔직하게 쓴 가사예요. 단순히 야한 가사를 두고 ‘박진영스럽다’고 말하는데, 사실 제 스타일은 ‘어머님이 누구니’와 ‘대낮에 한 이별’ ‘놀 만큼 놀아봤어’를 모두 합쳐야 비로소 완성돼요. 제가 부른 모든 음악을 합쳐야 진짜 박진영다운 곡이 탄생할 수 있을 거예요.”
지난 20년 동안 소신으로 대중을 공략한 덕에 대중이 인정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뚜렷한 개성으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가수가 된 박진영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높아진 국내 가요 시장의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 신인 가수나 신생 기획사도 성공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물론 저도 기득권층에 속하지만 분명히 바꾸고 싶어요. 신생 기획사도 대형 기획사와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업계에서 영향력을 가진 분들을 만나 설득도 해봤고 토로도 해봤어요. 하지만 이내 벽에 부딪히고 말았죠. 한번은 음원을 사재기 하는 사람을 잡아달라고 검찰에 신고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고요. 절망적이었어요.”
대중은 박진영을 향해 ‘존경’과 ‘신뢰’의 시선을 보낸다. 투명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섹스어필했던 패기 어린 청년이 누구나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 엔터테이너가 됐고, 내로라하는 아이돌 그룹을 키우는 엔터테인먼트사의 수장으로 우뚝 섰다. 전쟁같은 연예계, 거칠고 모진 풍파에서도 쓰러지지 않았던 그다.
“3년 전에 별의별 짓을 다 하는데도 회사의 주식 평가 총액이 1조원을 넘지 못했어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지금의 회사 시스템으론 절대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것이었죠. 미국 진출을 통해 유니버설이나 워너브라더스 같은 대형 유통사의 구조를 이해했어요. 그러면서 ‘박진영이 없는 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죠. 처음에는 회사 식구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그래도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밀어붙였고 3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야 조금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박진영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보다 팀원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렇게 발표한 곡이 ‘미쓰에이(miss A)’의 ‘다른 남자 말고 너’ 그리고 ‘어머님이 누구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미쓰에이와 박진영은 음원 사이트 1, 2위를 다투며 한지붕 가수끼리 선의의 경쟁을 펼쳤고, ‘피프틴앤드(15&)’의 ‘사랑의 미친 짓’도 투자비용 대비 높은 수익을 거뒀다.
“다음 목표는 독자적 음반 회사인 레이블을 만드는 거예요. 3년간 서브 레이블을 만들어 아이돌을 발굴해왔는데, 관리해야 할 부분이 많아 위험 요소가 있더라고요. 뮤지션 위주로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에 ‘스튜디오 제이’라는 음반 회사를 만들었어요. 지소울(G.Soul)과 피프틴앤드가 소속되어 있죠. 미국의 유니버설이나 워너처럼 JYP라는 본사 아래 수십 개의 레이블이 운영되고 유통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자신이 없어도 되는 회사를 만드는 게 궁극적 목표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후배들의 스케줄을 일일이 확인하고 그들의 컨디션을 세심하게 체크한다. 소속 연예인의 기사를 놓치지 않고 서치하고 댓글을 통해 반응을 면밀히 살핀다. 자신의 앨범 활동부터 소속 가수의 프로듀싱 그리고 후배들의 안위 확인까지, 박진영의 24시간이 모자라는 이유다.
“JYP엔터테인먼트는 모든 연예인에게 그의 기사를 이메일로 보내요. 댓글을 보고 요점을 정리해서 보내주죠. 그들은 회사에서 보낸 이메일만 봐도 자신을 둘러싼 대중의 반응이나 최근 트렌드의 흐름 등을 알 수 있어요. 안 좋은 반응 때문에 상처받을 때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가르쳐요. ‘여론의 흐름과 방향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교육하죠. 다만 어린 친구들은 그들의 부모님들과 상의해요.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분들의 자녀에게만 이메일을 보내요. 간혹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상처받는 경우가 있거든요.”
최근 미쓰에이 수지와 배우 이민호의 열애에 대처하는 그의 태도, 일명 ‘박진영 리더십’도 화제다.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소속 아티스트에게 열애설은 앞으로의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박진영은 쿨했다.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그는 연예계에서 ‘통 큰 사장님’으로 통한다.
“후배들을 혼내는 두 가지 기준이 있어요.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을 때나 게으르게 행동할 때는 누구보다 단호해요. 데뷔하고 3년까지는 연애하지 말고 친구도 만나지 말고 그냥 연습에만 미쳐 살라고 가르치죠. 이후에는 자유롭게 연애하라고 해요. 수지도 마찬가지예요. 그녀가 연애하는 게 잘못한 일은 아니잖아요. 만약 마약이나 담배, 음주 운전, 폭행 등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 크게 화를 냈겠죠.”
박진영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땀 흘리며 노래하는 스스로를 칭찬했고, 자신이 만든 모든 곡을 자식처럼 아꼈다. 노래할 수 있고 춤출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하며 웃는 그의 미소는 스무 살 청년의 열정을 닮아 있었다.
“저는 제 직업이 좋아요.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해요. 저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아마 1%도 안 될 거예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이런 춤을 출거야’ ‘이렇게 하면 잘될까?’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오르면 그건 정말 ‘일’일 뿐이잖아요. 제 삶을 재미있는 일들로 꾸미고 싶어요. ”평생을 딴따라로 살아온 박진영에게 묻고 싶다. 네 어머님은 누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