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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해 푸쳐핸섭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사람, 꽤나 진지하다. “인생 뭐 있겠어? 한다면 하는 거지” 하고 쿨하게 말하는 중년의 아저씨, 박명수의 도전은 계속된다.

On June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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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를 칭하는 수식어는 몇 가지나 될까? ‘2인자, 벼멸구, 흑채 1기 개그맨, 거성, 고유명수, 육잡이, 찮은이형, 서래마을 휴 그랜트, 민서 애비, 방배동 살쾡이, 그레이트 박….’ 그를 떠올리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는 수식어만도 어림잡아 10여 개가 넘는다. 그는 “10년째 같은 캐릭터”라고 하지만, 사실 박명수만큼 오랜 시간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예능인은 드물다. 근래 들어서는 ‘방배동 살쾡이’의 활약이 단연 눈에 띈다. 그는 요즘 가수, 작곡가, 작사가, DJ, 음반 프로듀서 등 뮤지션 박명수의 매력을 발산하는 중이다.

그간 유재석의 그늘에 가려 박명수의 매력을 낱낱이 보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에 그가 연사로 등장하는 토크 콘서트 현장을 찾았다. 그의 등장과 함께 울려 퍼진 노래는 6년 전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 때 제시카와 함께 부른 ‘냉면’. 마이크를 잡고는 홀로 무대 위에 올라 전곡을 완창했다.

“한때 여름을 강타했던 제 노래예요. 분위기 좀 띄워보려고 불렀는데 기억을 못 하시네요. 저 원래 립싱크 전문 가수인 거 아시죠? 어쩌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하게 됐네요. 저 실제로 보니까 어때요? 스타일 괜찮지 않아요? 요즘은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하고 관리도 받고 있어요. 아시겠지만 제 몸이 살이 찌거나 그렇진 않잖아요. 물론 얼굴은 흘러내리고 있지만.(웃음) 유재석? 걔도 얼굴 엉망이에요. 인기가 만들어낸 허상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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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부터 강렬하다. 강연이 있었던 날은 화창한 주말. 그는 “이런 날 ‘가족과 함께하기 싫어서’ 혼자 관객석에 나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며 박명수다운 강연을 시작했다.

“요즘 집에 있으면 저도 힘들어 죽겠어요. 조금 쉬려고 하면 아이가 깨우고 와이프가 깨우거든요. 얼마 전엔 강아지까지 사서 집에서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래도 저 같은 남자 어디 없습니다. 제 와이프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제 손을 꼭 잡아요. ‘오빠, 난 다시 태어나도 오빠랑 결혼할래’ 하면서요. 저 그 얘기 듣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웃음) 그리고 와이프가 아주 난처한 질문을 하죠. ‘오빤 어떻게 할 거야?’ 하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다시 태어날 일은 없어.’(웃음) 물론 다시 태어나면 지금 와이프와 결혼하겠지만, 거의 반백년 살아온 입장에서 볼 때 인생은 한 번뿐이에요. 다음 생애가 있으면 안 되고, 그런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인생이 살맛나는 거예요.”

말은 독하게 하지만 사실 박명수는 애처가로 유명하다. 그의 아내 한수민씨는 마포구 도화동에서 피부과를 운영하는 의사다. 유재석은 이 부부를 두고 ‘서래마을 브란젤리나 커플’이라 말했고, 박명수의 아내 한수민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박명수의 사진 밑에 ‘서래마을 휴 그랜트’라는 해시태그까지 붙였다.

“예전에는 하루에 담배를 두 갑씩 피웠어요. 거의 매일 술에 빠져 살았고요. 그랬더니 언젠가부터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한번은 A형간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죠. 그때 아내도 저에게 전염돼 2인실에 같이 누워 있었어요.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웃음) 그때 왜 A형간염에 걸렸는지 생각해보니 다 <무한도전> 때문인 것 같아요. 자꾸 땅바닥에 있는 거 주워 먹어서 그런 건데 김태호 PD는 그걸 몰라요.”

올해로 <무한도전>을 한 지도 10년이 됐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20~30대였던 멤버들은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의 아빠가 됐다. 그중 가장 맏형인 박명수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여섯. 한번은 “아이고, 나 이제 힘들어서 못 하겠다”라고 했더니, 유재석이 “형, 형은 10년 전에도 힘들다고 했어” 하더란다.

“<무한도전>을 벌써 10년 했어요. 10년 동안 정준하는 만날 바보짓만 하고, 저는 한결같이 성질만 내고 있어요. 유재석이 혼자 다 해먹어서 저는 방송이 늘지를 않아요.(웃음) 그렇다고 시켜달라고 말도 못 해요. 못하면 ‘못한다, 재미없다’ 잔소리가 엄청나거든요. 멤버들끼리 오래 하다 보니 짜증 날 때도 있었죠. 제가 방송에서 와이프 얘기 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해도 계속 이야기하고…. 처음에는 엄청 짜증 났지만, 그래도 한 배를 탄 친구들이니까 참는 거예요. 못 참겠으면 그게 친구겠어요? 웬수지.”

그의 오랜 캐릭터는 ‘2인자’다. 유재석 옆에 서서 이따금 쎈 개그를 던지며 “재석아, 난 너 없으면 안 돼”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다. 그런 그가 ‘메인’이 돼 <무한도전>을 장악했던 때가 있었으니, 바로 ‘박명수의 어떤가요’ 특집 방송. 3년 전쯤 방송된 이 프로젝트는 그가 직접 만든 곡을 <무한도전> 멤버들이 불러 화제를 모았다.

“저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대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죠. 그래서 내린 결론이 ‘기술을 배우자’였어요. 나만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던 거죠. 제가 클럽 댄스를 좋아해 평소 눈여겨보던 게 일렉트로닉 음악 프로듀싱이었거든요. ‘박명수의 어떤가요’는 제가 직접 제안한 프로젝트예요.”

본격적으로 작곡의 길에 들어선 박명수는 당시 ‘박명수의 어떤가요’ 특집을 위해 3개월간 밤낮없이 작곡을 공부했다. 당시 정형돈이 부른 ‘강북멋쟁이’는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음악 전문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는 등 인기가 대단했다. 작곡가 박명수의 재발견이었다. 작년에는 아예 방배동에 ‘G-Park’이라는 이름으로 녹음실을 차리고 ‘명수네 떡볶이’ ‘Don’t go’ 등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발매했다. 그가 최근에 작업한 곡은 지난 3월에 발표한 ‘바보야’. 가수 소찬휘와 함께 부른 이 곡은 발매 직후 각종 차트에서 10위권 안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남자, 꽤 진지하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박명수가 진짜 작곡가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런데 전 그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했어요. 오는 6월 12일, 13일에도 잠실에서 열리는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해요. 이것도 벌써 3년째예요. 만약 3년 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지금 어떻게 됐겠어요? 다음 주 월요일엔 캐나다 밴쿠버와 토론토에서 공연을 해요. 예전엔 캐나다가 어디 붙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정말 제 인생에 아주 큰 변화죠. 이 일을 시작하면서 얻은 부가가치도 상당해요. 이제 디제잉이 또 하나의 직업이 된 거예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을 때, 지금 실행하라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일찍 죽는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정말 늦은 때다.”
“티끌 모아 티끌.”

얼핏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박명수의 어록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데뷔 23년 차 박명수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문구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세계적인 DJ가 되겠다’는 꿈을 꿨을 때가 제 나이 마흔셋이었어요.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감각 있는 DJ들이 20대인 걸 생각하면 상당히 늦은 나이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게 맞아요. 그런데 그러니까 바로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시다시피 세계적인 DJ가 되려면 영어가 필수잖아요. 그날로 바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죠. 아직까지 실력이 많이 늘진 않았지만, 그게 제 꿈을 위한 작은 한 걸음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놀랐다. 마흔이 넘은 나이, 그것도 예능인으로서는 최정상의 위치에 있는 박명수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그의 목표는 세계무대란다. 국내에서 누리는 인기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는 세계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반 레이블 회사에 전화를 걸었어요. 물론 제가 한 건 아니고 영어 잘하는 친구 시켜서요.(웃음) 같이 앨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건 이메일로 보내라’는 답변이 왔어요. 그래서 메일을 써서 보냈는데 야속한 사람들이 답장도 없네요.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순 없잖아요. 잔머리를 굴려 이번에는 세계적인 DJ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죠. ‘나는 한국에서 유명한 셀럽이자 DJ G-Park이다. 내가 만든 노래인데 네가 한번 편곡해보지 않을래?’ 하고요.”

최근엔 인스타그램도 시작했다. 국제무대에 서려면 세계의 유명 아티스트들과도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방배동 살쾡이의 타깃이란다. “한류 열풍까지 감안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DJ를 하는 남자가 세계적인 DJ에게 함께 작업하자는 연락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처음엔 ‘얘 누구야?’ 하겠지만, 어쨌든 궁금해할 거예요. 그러면 제 인스타그램을 클릭하겠죠. ‘아니, 팔로어가 이렇게 많아? 얘 되게 유명한가 보다’ 생각하게 만드는 게 제 목표예요. 지금 그 DJ는 팔로어가 2백만이에요. 지드래곤은 4백만이고요. 저 지금 40만인데 올해 안에 1백만 넘길 거예요. 여기 오신 분들 다 저 팔로어해주세요.(웃음)”

그간 박명수의 진심을 너무 몰랐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것, 그러니 지금 당장 실행할 것”, 요즘 박명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록이다.
“2013년 함께 무대에 섰던 세계 DJ 랭킹 3위인 티에스토는 전용기가 있고, 1년 수입이 1천억이 넘어요. 최근에 전용기 싸게 내놨다던데 머지않아 제가 구입할 거예요. 남자로 태어나서 멋지게 한번 살아야죠. 좋은 거 못해보고 죽으면 억울해 어떻게 눈감아요? 제 이런 모습 때문에 와이프가 저를 그렇게 사랑하나 봐요.(웃음)”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고생을 많이 하셨고, 엄마는 늘 우울했다. 그는 그때의 기억 때문에 철이 일찍 든 것 같다고 했다. ‘하루빨리 성공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다’는 것이 어린 명수의 바람이었다.

“내 인생이 불행하다면, 그건 내 대에서 끊겨야죠. 2세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부모는 없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아무리 피곤해도 벌떡 일어나 학원에서 공부하게 돼요. 지금 뭐라도 하나 배워야 해요. 저는 민서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키우고 싶어요. 딸이라서 불안한 마음도 있지만, 영어 열심히 가르쳐 세계 시장에 보낼 거예요.”

강연이 끝날 때쯤 객석에서 디제잉과 유재석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물었다. 강연 내내 속사포처럼 이야기하던 그가 잠시 주춤한다. “하아… 아직까진 유재석인 것 같아요. 얘 없었으면 저 거렁뱅이 됐어요.(웃음)” 엔딩은 웃음바다였지만, 이날 박명수가 안겨준 것은 웃음 그 이상이었다. “이래서 아내가 나를 사랑한다”던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방배동 살쾡이’ 박명수의 무한도전이다.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기자
2015년 06월호
2015년 06월호
취재
정희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