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지누션이 돌아왔다. 그들의 디지털 음원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만사 제쳐놓고 음원을 틀었다. 흘러나온 음악은 트렌디한 힙합이 아닌 복고풍 뉴 디스코. ‘나에게 말해줘 사실을 말해줘 정말 네 마음을 말해줘’라는 후렴구를 멋지게 소화하던 엄정화와 함께 무대를 휩쓸고 다니던 그들의 모습이 스친다. 이번 디지털 싱글 앨범의 타이틀은 바로 ‘한 번 더 말해줘’. 이 곡은 에픽하이 타블로가 직접 프로듀싱한 음원으로 첫 리듬부터 우리가 원해온 노래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무려 11년 만에 돌아온 지누션은 첫 데뷔 무대 때처럼 설레고 두려웠다고.
“마치 1997년 2월 14일, 저희 1집 정규 앨범의 첫 무대를 앞둔 기분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해요.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다시 한 번 좋아해주실까? 응원해주실까?’ 하는 걱정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하지만 컴백에 대한 두려움이 무색할 정도로 ‘한 번 더 말해줘’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음원 공개만으로 1위를 한 것이다. 4집 앨범의 타이틀 곡 ‘전화번호’가 하지 못한 1위를 11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룬 셈이다. 그 시간 동안 YG에서 이사직을 맡으며 후배들을 양성해온 그들이 다시 무대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후배들의 뒷바라지를 잠시 접고 욕심을 부려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이후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지누는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스토리를 털어놨다.
“4집 앨범 활동을 마친 뒤 자연스럽게 YG에서 후배를 양성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 때문에 무대에 다시 선다는 게 매우 창피하고 쑥스러운 일이라 생각했죠. 그런 저에게 션은 지칠 줄도 모르고 다시 시작할 마음이 없느냐는 질문을 계속 해왔어요. 매번 거절하던 저에게 션이 ‘난 사람들에게 가수가 아니라 사회복지가로 알려져 있어’라는 말을 했어요.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저만 용기를 내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두 사람이 컴백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더 늦어지면 하고 싶어도 못 할 것 같았다’. 사실 션은 <토토가>에 출연하기 두 달 전 양현석 대표에게 컴백에 대해 의논했다. 이때 양현석의 첫 질문은 “지누도 같은 생각이야?”였다고. 지누의 확답이 없었기에 고려해보자는 정도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지난 11년 동안 음악에 대한 꿈은 접질 않았어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될 것 같아 현석이 형에게 먼저 말을 꺼낸 거예요. 그러다 <토토가> 무대에 서게 됐는데, 가사를 외우지 않았는데도 입에서 저절로 나오고 안무도 몸이 기억하더라고요. ‘아,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토토가> 무대는 제겐 음악으로 돌아가야겠다는 확신을, 지누에겐 용기를 주었고, 현석이 형에게는 그때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거죠. 현석이 형의 진두지휘 아래 곧바로 몇몇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했어요. 그중 저희 콘셉트와 가장 잘 맞는 타블로의 곡을 디지털 싱글 앨범 타이틀로 선택했죠.”
이 음원을 의뢰하고, 작업하고, 선보이기까지 많은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지누션과 녹음을 진행했던 에픽하이 역시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에픽하이는 본인들이 언제까지 힙합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였다. 보통의 뮤지션들이 그렇듯, 나이를 먹으면 대부분 프로듀서로 전향하는데, 그들에게 지누션의 컴백은 앞으로 10년은 더 힙합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된 것이다.
“곡을 받고 뮤직비디오가 나오기까지의 기간이 짧았어요. 여러 쪽에서 저희를 잘 밀어준 덕분이죠. 사실 이번 곡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 번 더 말해줘’는 뉴 디스코라는 장르예요. 억지로 연출한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 힘을 빼고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지누션다운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었거든요.”
지누션의 뮤직비디오에는 1970년대부터 2015년까지 시대의 변화를 담고 있다. 뮤직비디오 속 지누션은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다가 아이팟이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70년대생인 그들이 듣고 자랐던 힙합부터 힙합에 미쳤던 80년대, 전성기를 누린 90년대, 그리고 2015년까지 그들이 살아온 세월을 모두 담은 셈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뮤직비디오에는 많은 카메오가 출연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뮤직비디오 촬영에만 21시간이 걸렸어요. 길고 힘든 촬영이었죠. 하지만 많은 지인이 흔쾌히 함께해주셨어요. <무한도전> 멤버들의 경우 전원 참석하기로 했지만, 스케줄 문제로 유재석씨와 하하씨만 함께하게 됐어요. 노래 중에 ‘오늘 밤은 무슨 밤? 지누션 밤!’이라는 소절이 있어요. 그 소절에 위너, 에픽하이 등 YG 식구들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죠. 파티 그 자체였어요.”
지누의 말에 따르면 지누션의 모든 섭외를 션이 담당하고 있단다. 이번 뮤직비디오 역시 모든 카메오에게 직접 연락했다. 지난 앨범에 도움을 줬던 숱한 해외 아티스트 역시 그의 섭외 덕분이란다. “빅뱅이 가는 월드투어에서 오프닝 무대를 저희가 하려고 해요.(웃음) YG 같은 경우 워낙 글로벌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어 해외 진출 역시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번 디지털 싱글을 계기로 정규 앨범을 내게 된다면 많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장난기 있는 대답을 하다가도 정확하게 목표를 말하는 두 사람의 어투에서 연륜이 묻어난다. 무대에 서기 위해 연습하면서 과거 전성기 때 모습을 모니터링했다고. ‘날아다니는’ 모습에 본인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단다. 그때처럼 젊진 않지만 그간 묵혀둔 음악에 대한 갈망을 쏟기 위해 연습에 열을 올렸단다. “션의 경우 마라톤이나 운동을 꾸준히 해서 체력적인 문제는 없는데, 저는 좀 문제가 있을 듯해요.(웃음) 하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쓰러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즐기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금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가족과 지인들의 지지가 컸기 때문이다. 션은 애처가답게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연습 시간은 주로 저녁으로 맞췄죠.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요. 평소 육아나 집안일을 도와주는 편이었는데, 이젠 아내가 많은 부분을 도맡아하고 있어요. 저의 가장 큰 지원군이죠. 아내도 아내지만 아이들의 응원도 큰 힘이 돼요. 노래를 계속 틀어줬더니 저희 셋째는 랩을 외우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뮤직비디오가 나왔다고 말했더니 일어나자마자 보여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들은 알뜰살뜰 후배들의 뒤를 챙기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신만의 라이프를 사는 전형적인 40대 남자의 모습이다. <토토가> 이후 많은 팬들이 지누션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오랜 시간 현역에서 물러난 그들이 돌아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돌아왔다. 11년이란 시간이 훌쩍 흐른 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가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돌아온 두 남자, 웰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