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목소리로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조관우. 무대에서만큼은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그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다. 근래 들어 그는 각종 예능·영화·가요 프로그램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는 자신보다 키가 훌쩍 커버린 두 아들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늦둥이 남매를 낳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가 하면, 영화 <조선 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에서는 거문고를 다루는 ‘조 악공’으로 출연해 연기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선 인간문화재 5호인 아버지 조통달과 탄탄한 피아노 실력을 갖춘 둘째 아들 조현군까지 삼부자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꾸며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조관우의 재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가장 화제를 모은 건 KBS2 <불후의 명곡> 설 특집 방송이었다. 조통달과 조관우 부자는 ‘엄마야 누나야’라는 동요를 새롭게 편곡해 함께 불렀는데, 여기에 둘째 아들 조현군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삼대가 꾸민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군데군데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있었고, 기립 박수도 터져 나왔다. 무대는 끝났지만 감동은 여전하다. 화제의 중심에 선 이 삼부자를 조관우의 일산 자택에서 만났다.
<불후의 명곡>에서 보여준 무대가 화제가 됐어요.
조관우 삼대가 무대 위에 서는 건 사실 제 오랜 꿈이었어요. ‘엄마야 누나야’라는 곡을 제가 부르고, 거기에 아버지가 ‘심청가’의 한 소절을 판소리로 불러주셨죠. 그리고 아들 현이가 피아노 연주를 했고요. 그 자체로 뜻깊었어요.
조통달 처음엔 괜히 아들의 노래에 판소리를 끼워 넣어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죠. 가수로 활동하는 아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했던 거예요. 그런데 설득하더라고요. 이기는 부모가 있나요?
조현 저 역시 썩 내키지 않았어요. 아빠 말씀대로 중요한 무대잖아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음악인으로 자리 잡은 분들인데 제가 끼는 게 맞는지 고민도 됐고요. 사람들 이목이 집중되는 데다 혹시 틀리기라도 하면 그게 또 저의 기록으로 남는 거니까 부담됐거든요. 결국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권하셔서 참여하게 됐어요. 연습할 땐 할아버지고, 아버지고 없더라고요.(웃음) 대선배님들과 작업하는 기분으로 위압감이 엄청났어요.
조관우 무대에 올라가기 전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저야 다른 가수들이랑 이미 경합을 치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아버지는 국창이시잖아요. 누군가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게 달갑진 않았죠. 혹시라도 상처받으시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고요.(웃음)
조통달 좋은 추억이 되었어요. 아들과 저, 손주가 같은 분야의 음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예술이 주는 감동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습하는 과정에서도 아들과 은근히 텔레파시가 잘 통하더라고요.
조현 학업을 하면서 무대에 올릴 곡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아빠도 신경이 많이 쓰이셨나 봐요. 저더러 학교 안 가도 좋으니 열심히 하라고 하셨어요.(웃음)
특히 조현군의 피아노 실력이 화제가 됐어요. 대단하던데요?
조통달 주변에서 현이 칭찬을 많이 해요. 요즘은 손주 자랑하고 다니느라 바빠요. 현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살아 저랑은 정이 많이 들었어요. 가만 보면 저를 꼭 닮았다니까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에요. 생각한 대로 안 되거나 마음에 안 들면 뒤집어엎는 고약한 성질도 비슷해요. 저도 어렸을 때 남의 집 창고에 불 지르고 그랬거든요.(웃음) 역시 내 손주야.
조현 할아버지, 그래도 전 불은 안 질렀어요.(웃음)
조관우 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했는데 안 배우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레이 찰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이>를 보고 나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곧이듣지 않았어요. 그런데 얼마 후 또 피아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진지하게 다시 물어봤죠. 그랬더니 중국 뮤지션 주걸륜처럼 되고 싶대요. 주걸륜은 피아노 치고, 노래도 하고, 배우도 하고, 감독도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잖아요.
조현 아빠, 주걸륜 얘기는 너무 옛날 이야기잖아요.(웃음) 음악을 하려고 결심한 게 초등학교 때부터였어요. 음악으로 방향을 정하고 나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 공부를 더 해보라고 권하시더라고요. 결국 전 초등학교 마치고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이수했지요. 사실 제 입장에선 학교를 그만둔다는 게 무척 힘들었어요. 검정고시를 패스하지 못하면 결국 전 ‘초졸’이잖아요. 그런데 두 분 생각은 달랐어요.
괜히 다른 쪽에 힘 빼는 것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음악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신 거죠. 지금은 남들보다 1년 이른 나이로 실용음악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두 분 말씀을 듣길 잘한 것 같아요. 예전보다 책임감이 생겼고, 음악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됐거든요.
음악적 재능은 타고나는 건가 봐요.
조통달 제 어머니도 국악인이세요. 따지고 보면 4대째 음악을 하고 있죠. 아무래도 부모가 계속 음악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니까 자식들도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조관우 현이는 순전히 노력형이에요. 득음하신 아버지를 꼭 빼닮았죠. 저는 얘가 집에 있다는 걸 피아노 소리를 듣고 알아차릴 정도예요. 외출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피아노 앞으로 간다니까요. 자기 인생을 걸며 열심히 하는 모습은 아빠로서도 배울 점이 많아요.
조통달 외모는 지 아버지를 쏙 빼닮았지. 난 아까도 현이가 자기 방에서 자고 있는데 깜짝 놀랐어. “관우야, 너 왜 여기서 자고 있니?” 하고 말할 정도였죠. 지금은 관우가 살이 많이 빠졌는데, 30대 때는 현이처럼 볼도 통통하니 잘생겼다고. 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도 엄청 잘했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 현이는 못 하는 게 없네.(웃음).
조관우 나중에는 저보다 훨씬 뛰어난 뮤지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피아노 배운 지 1년도 안 돼 콩쿠르에서 우수상 받고, 지역 대회에 나가서도 클래식 부문 특상을 받았어요. 그러더니 또 어느 순간 재즈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작년에 제 음반 작업에 두 아들도 함께 참여했는데 큰 아들 휘가 작사를 하고 현이가 작곡과 편곡을 맡았죠. 실험적인 작업이라 처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는데, 이놈들이 저를 무슨 신인 가수 다루듯이 하는 거예요.
“가사를 흘리지 말아라” “박자가 늘어진다” 하면서요. 솔직히 웬만한 작곡가들도 저한테 그런 말 못 하거든요. 황당했죠. 성질을 버럭 냈더니 “그럼 저희한테 맡기지 마시든지요” 하면서 따지대요. 이번 4월 11일에 있는 제 콘서트 때도 현이를 게스트로 부르려고요. 나중에 몸값 비싸지기 전에 얼른 계약서 쓰자고 할 거예요.(웃음)
조현 저는 아빠가 굉장히 훌륭한 뮤지션이라 생각하고 존경해요. 진짜로요.(웃음) 한국 음악사를 짚어봤을 때 아빠는 90년대 가수 중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에요. 다만 본인의 색이 너무 강해 새로운 도전을 할 때 그만큼 실패할 확률도 높죠.(웃음)
아빠를 따라 음악을 하는 아들에게 조언도 많이 해주셨을 것 같아요.
조통달 처음에는 심하게 반대했어요. 가수는 딴따라라고 싫어했고 심지어 판소리를 하겠다고 해도 반대했죠. 저는 소리도 통성이나 진성으로 내는 것만 옳다고 생각했어요. “아아~” 하면서 가는 목소리를 내기에 ‘고자 성음’이라면서 화도 많이 냈죠. 기타도 몇 번 때려 부숴버렸고요.(웃음) 그런데 얘가 자기 딴에는 진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모양이에요. 그룹사운드 보컬을 하겠다면서 아예 집을 나가버렸거든요. 그리고 얼마 후 저에게 용돈 하라면서 당시 3백만원을 보내준 거예요. ‘어, 요놈 봐라?’ 하면서 속으로 내심 기뻤어요. 친구들이랑 술을 한잔하면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관우는 완전 자수성가한 케이스예요.
조관우 일부러 주변 사람들에게 국창 조통달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아버지께 누가 될까 싶어 이야기를 안 했던 것도 있어요. 아버지가 인간문화재이신 데다 노력을 통해 득음하고 판소리를 하고 계시는데, 저는 그에 비해 너무 쉽게 가수가 된 건 아닌가 싶었거든요.
조현 그런 점에서 저는 아버지께 불만이 많았어요. 본인은 자수성가하신 후에 아버지의 존재를 밝히셨으면서 저에겐 제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공개하셨잖아요. 제가 웬만큼 열심히 하지 않고서는 ‘조관우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떼기 힘들지도 몰라요. 언젠가는 ‘조현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아버지께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조관우 현이는 불만이라고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라요. 예전엔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을 하면서도 잘 살 수 있었어요. 그만큼 그 시장이 컸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중요한 건 누구 아들인지가 아니에요. 때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죠. 솔직히 어릴수록 기회가 많은 게 사실이잖아요.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아버지 등을 밟고라도 아들이 빨리 성장할 수 있다면, 저는 좋아요. 부모 마음이 이래요.
조통달 아, 맞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취소할래요. 제가 얼마 전에 실시간 검색어 5위를 했더라고요. 관우는 6위였고!(웃음)
얼마 전엔 조관우씨가 영화에도 출연하셨던데요? 보고 깜짝 놀랐어요.
조통달 아시다시피 제가 창극을 했잖아요. 관우가 영화를 찍게 됐다면서 ‘눈 뜬 장님’은 대체 어떻게 연기하면 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심 봉사’를 생각해봐. 자, 이렇게!” 하면서 연기 시범을 좀 보여줬죠.(웃음)
조관우 아이고 아버지, 저 연기 아버지가 알려주신 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웃음)
조현 아버지가 연습을 엄청 열심히 하셨어요. 매일같이 배우분들 찾아다니면서 조언을 구하고 밥 먹다가도 젓가락 들고 연기 연습을 하시곤 했죠. 신기한 게 진짜 연기력이 점점 느는 게 보이는 거예요. 솔직히 처음엔 걱정했거든요. “노래나 할 일이지 발연기가 웬말이냐”고들 하실까 봐서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 아빠가 할 수 있는 한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열정적으로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일도 기적처럼 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조관우 연기는 노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노래는 실전보다 연습할 때가 오히려 더 잘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연기는 ‘슛’ 들어가면 그렇게 잘될 수가 없어요.(웃음) 제가 원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거든요. 영화 시사회 때는 정말 가시방석이었어요. 맨 앞줄에 원로배우 이순재 선생님이 계셨고, 바로 뒤엔 김혜자 선생님이 계셨거든요. 대형 스크린에 제 얼굴이 나오는데 진짜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요. 영화가 끝나고 이순재 선생님께서 악수를 청하시면서 “영화 잘 봤어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시는데 어찌나 창피하던지.(웃음)
삼부자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여요. 실제로는 어떤 아버지예요?
통달 예전엔 제가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웠어요. 성격도 불같아 관우에게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들이 방송에서 “아버지가 왕년에 술 마시고 TV를 몇 대 부쉈다”고 폭로한 건 너무한 것 아니에요?(웃음) 요즘은 관우에게 미안하다고 해요. 그때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가슴에 맺혔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겠어요? 노래할 때 관우 목소리가 유독 애절하게 들리는 건 저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조관우 저 역시 마음은 자상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아요. 휘나 현이는 다 컸지만 제겐 막둥이들도 있잖아요. 아이들이 “아빠!” 하면서 안기면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그런데 솔직히 많이 놀아주진 못해요. 조금 놀아주는 듯하다가 귀찮아지면 금방 누워버리죠.(웃음)
조현 마음으로는 저희를 많이 생각하시는데 표현을 잘 못하세요. “아빠, 놀다가 몇 시쯤 들어갈게요” 하고 밤에 전화를 하면 제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기다리시잖아요. 통화할 땐 무심한 척하시다가요. 저를 얼마나 생각하시는지 느낄 수 있어요.
조관우 제가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재혼했잖아요. 아이들에게 고맙죠. 아빠를 이해해줬고, 엄마를 잘 따라주니까요. 애들 엄마에게도 많이 고마워요. 쉽지 않은 일인데 아이들을 저보다 더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니까요.
조현 사실 아빠가 재혼하시는 것에 별로 신경을 안 썼어요. 아빠도 아빠 인생이 있는 거니까요. 그래도 만약 엄마가 저를 구박하는 새엄마였다면 아빠에게 싫다고 말씀드렸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엄마는 오히려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보다 더 잘해주세요.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털어놓게 되는 것도 엄마고요.
조통달 저도 며느리에게 참 고마워요. 처음엔 엄한 시아버지였거든요. 그런데 제 시어머니를 잘 따르고 가정을 행복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니 참 기특하더라고요. 또 우리 귀여운 막둥이들을 둘씩이나 낳아줘 고맙고요.(웃음) 며늘아, 하은이 목소리 들어보니까 판소리 시켜야 할 것 같더라, 에헴!(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