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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다, 지성

JI SUNG

연기에 대한 열정을 눈빛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 이보영을 향한 사랑은 그것보다 더 컸다. 하루라도 빨리 아빠가 되고 싶다는 그. 멋있다, 지성!

On March 30, 2015

지성을 만났다. MBC 드라마 <킬미, 힐미>가 끝난 지 닷새 만이다. 블랙 슈트를 입고 나타난 지성은 극 중 ‘차도현’의 부드러운 눈빛과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재치 있는 입담은 ‘페리박’을 닮아 있었고, 순수한 소녀 감성은 ‘안요나’, 작품을 향한 진중한 태도는 ‘안요섭’과 비슷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직도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그는 겸손했다. “지성의 재발견”이라는 말에 “감사할 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칭찬에 몸 둘 바 몰라 하는 모습에 극 중 오리진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신세기’가 떠올랐다. <킬미, 힐미>의 7가지 인격이 모두 지성 그 자체였던 거다.

지성은 <킬미, 힐미>에서 어린 시절 학대받은 기억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는 보호색으로 7가지 인격을 만들어낸 ‘차도현’을 연기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고생부터 구수한 여수 사투리를 쓰는 ‘페리박’, 폭력성을 띤 ‘신세기’와 젠틀한 ‘차도현’까지, 개성 강한 7개 캐릭터를 한 작품에서 소화하기가 어디 쉬웠으랴. 16년 연기 내공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성은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한 회에 한 가지 감정 신도 힘들다는데 넘쳐나는 감정 연기를 소화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고. 아직도 ‘차도현’과 ‘신세기’ 그리고 다른 인격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는 그다.

 


드라마 종영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까지 후유증이 있던 작품은 없었는데 이번 작품은 유독 힘드네요. 오늘 인터뷰 자리는 순전히 저를 위한 자리입니다. 제가 아프지 않게, 우울증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 자리라고나 할까요.(웃음)

뭐가 그렇게 힘들었나요?
많은 인격의 감정을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힘들었어요. 몰입하려고 노력했고, 어느 날부터는 그들에게 완전히 빠진 느낌이랄까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거예요. 촬영장에서 하염없이 운 적도 있어요.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캐릭터들을 떠올리면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해지기도 해요. 이제 아빠가 되니까, 우울해할 틈을 주어선 안 되겠죠?

<킬미, 힐미>는 캐스팅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어요.
알고 있어요. 다른 배우들이 캐스팅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미팅도 진행 중인 상황이었죠. 그때 우연히 <킬미, 힐미>의 시놉시스를 봤어요. 소재가 특이해서 연기할 맛이 나겠다 싶었죠.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왜 제안이 안 들어오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운명처럼 저한테 연락이 왔고요.

경쟁작 <하이드 지킬, 나>와 많이 비교됐죠.
소재가 비슷해요. 방송 시간도 똑같고요.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비교 대상이 있다고 해서 의식한 적은 없었어요. 다만 마음이 안 좋기는 하죠. 그 작품도 분명 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고생하며 만들었을 테니까요. 사실 배우라면 누구나 존재감도 없는 작품에 출연했던 과거가 있어요. 그런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흥행 실패는 있을 수 있는 일이고요. 단지 저에게는 <킬미, 힐미>가 소중할 뿐이죠.

작품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김진만 감독님과 <떨리는 가슴>이라는 옴니버스 드라마를 같이 한 적이 있어요.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이런 감독님이라면 내 진심을 담아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죠. 그게 출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예요.

황정음씨와 다시 만났어요.
안 그래도 서로 “대체 우리는 무슨 인연인 걸까”라고 이야기했어요. 이쪽 일을 하면서 두 작품을 같이 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이번에도 역시 잘 맞았어요. 정음씨에게 고마워요. 상대 배우가 받아주지 않으면 제 노력이 무의미하거든요. 정음씨 특유의 완벽한 리액션 덕분에 7가지 인격을 연기할 수 있었고 더욱 빛이 났죠. 정음씨는 훌륭한 배우예요. 같이 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오케이!

 


직접 부른 OST ‘제비꽃’도 화제가 됐어요.
모든 인격을 대변하는 곡이에요. 저 자신에게 불러주는 노래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동안 수고했어,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전했을 거야. 잘했다, 쉬어라’라는 의미로 스스로 ‘제비꽃’을 불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여러 개의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요?
이상하게 부담되지 않았어요. 캐스팅된 뒤 바로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인지’만 생각했죠. 부담을 느낀 시간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마흔 살이 다 된 남자 배우의 다양한 나이대의 연기를 시청자들이 공감해주실지 의문이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내려놓자’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연기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제가 언제 또 여학생 교복을 입고 연기할 수 있겠어요. ‘신세기’처럼 아이라인을 그리고 연기하는 것도 그렇고요. 저에게는 모든 캐릭터가 소중했어요. 오래 기억에 남을 거예요.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죠?
괴성을 지르는 장면이 있는데, 엄청 크게 소리 질렀어요. 일단 하긴 했는데 목이 다 상했더라고요. 성대결절이 와 급하게 병원에 가서 치료받은 뒤 겨우 촬영할 수 있었죠. 드라마가 막판으로 갈수록 ‘생방송’ 수준이었어요. 대본을 받고 바로 촬영하는 상황이었죠. 지나고 보니 스스로 놀라워요! 제 안에 다른 인격이 해낸 건가? 하하. 목요일 방송분을 수요일에 모두 촬영한 적도 있어요. 정말 대단한 건 그걸 해냈다는 거예요.

드라마가 아동 학대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면서 호응을 얻기도 했어요.
어린 ‘차도현’이 학대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힘들어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건 연기가 아니었어요. 아역 배우의 연기를 보고 계속 눈물이 나는 거예요. 실신할 정도로 많이 울었어요. 요즘 사회가 팍팍해서 안 좋은 사건 사고가 많은데, 아동 학대를 주제로 다룬 드라마에 출연한 것에 자부심도 생겼어요.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고요.

드라마를 통해 얻은 인기도 어마어마해요.
요즘 아이돌급 대우를 받고 있어요.(웃음) 아역 배우들이 저한테 원하는 호칭을 묻더라고요. 오빠가 좋은지 삼촌이 좋은지요. 그 친구 아버지보다 제 나이가 더 많을 수도 있는데….(웃음) 그래도 영원히 오빠죠. 계속 연기를 할 거니까. 언젠가는 또 만날 텐데 내가 늙어도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죠.(웃음)

 


연기대상 후보라는 평가도 있어요.
주변에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는데 사실 반갑지 않아요. 생각해본 적도 없고 욕심 부리지도 않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배우로서 존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들죠. 감사해요. 다른 배우의 연기를 칭찬하는 기사를 보고 부러워한 적은 있는데 대상까지는….(웃음)

얻은 게 많네요.
정말 많은 걸 얻었어요. 너무 얻기만 해서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요. 다양한 감정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동료 배우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했거든요. 고생해준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요.

극 중 ‘안요나’가 바른 립틴트가 동이 났다는 소식은 재미있어요.
‘안요나’의 잇 아이템이죠.(웃음) 뛰어가면서도 바르고, 가만히 있을 때도 발라서 완판됐다고 하더라고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전 여자가 아닌걸요. 하하. 해당 브랜드에서 화장품을 증정해 주시길래 아내한테 생색내며 선물했어요.

여성 화장품 광고 모델 제의가 들어온다면 할 의향은 있나요?
물론이죠. 그렇게 되면 제가 최초 아닌가요?

또 재미있는 건 지성씨의 ‘매너손’이었죠.
정음씨가 차에 탈 때 머리를 손으로 가려주는 걸 두고 매너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습관이 중요한가 봐요. 저는 제가 그렇게 행동하는지도 몰랐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여자는 남자한테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아요. 아내가 묻더라고요. 자기한테도 그러냐고요. 제가 키가 크니까 본인이 보지 못하는 건데 말이에요.(웃음)

이보영씨는 드라마를 보고 뭐라고 하던가요?
촬영장에 팬분들을 초대한 적이 있어요. 5백 명 넘는 팬 앞에서 ‘안요나’를 연기하며 핑크색 교복을 입고 뛰어 다녔죠. 하필 그날 아내가 몰래 촬영장에 왔어요. 궁금했나 봐요. 사람들은 다 웃고 즐거워하는데 아내는 마음이 아팠대요. ‘우리 가장이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고 있구나’ 싶었대요. 그 후 대우가 달라졌어요. 도시락도 싸줘요.

황정음씨와의 키스신을 두고는 뭐라고 안 하던가요?
별 말 안 하던데요.(웃음)

곧 아빠가 되는데 기분이 어때요?
시간이 너무 안 가요. 6월 말이 출산 예정일인데 왜 이렇게 안 가는지 모르겠어요. 빨리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기가 배 속에서 커가는 게 보이니까 신기해요. 태어나는 그 순간 벅찬 마음에 많이 울 것 같아요.

1999년 SBS 드라마 <카이스트>로 데뷔한 지성은 ‘곽태근’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했다. 잘생긴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언론과 평단, 시청자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올인> <애정의 조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뉴하트> 등의 작품에서 활약했고, 최근에는 <대풍수> <비밀>에 이어 <킬미, 힐미>까지 히트시키며 명실상부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사랑스러운 아내 이보영을 얻었으니, 그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성공한’ 남자다. 좋은 배우,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고민 중이라는 지성은 당분간은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

CREDIT INFO
취재
이예지
사진
나무액터스
2015년 04월호
2015년 04월호
취재
이예지
사진
나무액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