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가 늘고 지방이나 해외 근무가 늘면서 주말부부도 많아졌다. 자녀가 대도시나 해외로 유학 가는 것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기러기 엄마,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경우도 많아져 가족 간의 만남이 주(週) 단위가 아니라 월(月) 단위나 연(年) 단위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가족이, 특히 부부가 오랜 기간 떨어져 살다 보면 갈등이 생기게 된다. 하루에 한두 번 하는 화상 통화나 문자, SNS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정서적 공허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A씨는 남편과 5년에 걸친 열애 끝에 결혼했다. 자녀들의 성장과 함께 남편이 운영하는 사업 규모도 커졌고, 인건비 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국에 회사를 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부부가 따로 지내는 날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사나흘씩 다녀오던 중국 출장이 나중에는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더 적을 정도가 되었다.
A씨는 수험생인 자녀들이 있는지라 남편이 사는 곳에 자주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어쩌다 한번 가보면 남편은 하루 종일 회사 일로 바빠 밤늦게 잠깐 얼굴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아는 이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 며칠씩 가 있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지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전화나 SNS로 연락하면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이 없는 집안을 건사하면서 자식 잘 키우고 친인척의 대소사까지 모두 챙겨온 A씨에게 남편의 이혼 요구는 청천벽력 같기만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A씨는, 중국에서 지내는 동안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고, 부부처럼 한집에서 산 지 오래된 것은 물론 그들 사이에 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신감과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불 꺼진 집에 혼자 돌아온 뒤 대화할 사람도 없이 쓰러져 자곤 했을 남편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험생 자녀들 뒷바라지에, 남편 없는 집안 살림에, 너무나 힘든 나날을 보내온 자신도 남편 없는 외로움을 버티며 살았지 않은가? A씨는 남편의 행태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이혼을 결정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기에 마냥 버틸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의사는 확고했다. 서울에 있는 집과 약간의 저금은 모두 A씨에게 줄 테니 자신은 몸만 놓아달라고 했다. 그래도 A씨가 이혼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더 이상 서울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로부터 3년 후 이혼 소장이 날라온 것이다. 법적으로는 부부지만 다른 처자식과 살고 있는 남편을 ‘내 남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 A씨는 이 모든 고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명숙 변호사의 사랑과 전쟁 쉰한 번째
글쓴이 이명숙 변호사는…
25년 경력의 이혼·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을 맡고 있다.
- 이 변호사의 어드바이스
A씨가 이혼을 원하지 않을 경우, 남편이 ‘유책배우자’이므로 이혼이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이 확고하고 중국에 또 다른 가정과 사업체가 생긴 이상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국내에는 아무런 재산이 없고 해외에 머무는 배우자의 경우, 위자료나 재산 분할,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판결이 나더라도 이를 실제로 받을 방법이 없으므로 판결 자체가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다. 사랑도 결혼생활도 자주 보고 교감하는 가운데 신뢰가 커지는 것이지, ‘잘 있겠거니’ 하고 방치했다가는 떠나기 마련이다. 부부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정서적 교감과 눈을 마주치며 나누는 대화가 없으면, 그 사이에 무수한 사람과 일들이 들어서고 결국 멀어지기 마련이다. 결혼은 두 사람을 영원히 묶어두는 마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