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한 풍선껌을 한 번에 3개나 줘도 말없이 씹고, 노출 화보 때문에 쫄쫄 굶은 사람 앞에서 냄새 폴폴 풍기며 김밥을 먹어도 “대단한 거 먹는 줄 알았는데 별거 없네”라며 농담을 건넨다. 초면인 기자와 편한 오빠 동생처럼 아옹다옹한다. 인터뷰를 마친 뒤 생각하니 그의 입장에선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는 요즘 대세 장수원이 아닌가?
한때 수만 명의 소녀 팬을 열광시킨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이하 ‘젝키’)의 장수원이 전무후무한 로봇 연기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아무런 기대 없이 출연한 KBS <사랑과 전쟁>에서 보여준 ‘발연기’로 데뷔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나 했는데,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았다. 드라마 속에서 그가 했던 “괜찮아요? 다친 데 없어요?”라는 대사는 2014년 최고의 유행어로 손꼽히고, 장수원은 톱스타만 찍는다는 통신사 CF를 찍기도 했다. 한마디로 전화위복. 최근엔 <미생>을 패러디한 tvN <미생물>에 출연하며 뜨거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제껏 안 좋은 의미로만 쓰이던 ‘발연기’ 캐릭터로 호감을 산 최초의 연예인인 셈이다.
“처음에는 코믹한 캐릭터로 관심을 받는 게 어색했어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제가 의도해서 만든 이미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대중이 좋아해주시는 느낌을 받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친근한 이미지로 바뀐 것도 좋고요. 이제는 스스로 즐기고 있어요.”
그렇다. 어떤 사람은 이제 장수원의 얼굴만 떠올려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장수원은 [snl 코리아] <개그콘서트> 등에 출연해 자신이 희화화되는 것도 피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웃는 것이 데뷔 18년 이래 처음일 터.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궁금했다.
“초반엔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어요. 웃긴 이미지에 대한 부담도 크게 없었고요. 앞으로 노래할 때 걸리적거릴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가수로 컴백해 발라드 곡을 부르더라도 제가 진중하게 노래하면 웃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목소리에서 나오는 감정이나 감성이 전달될 테니까요. 이런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에요.”
인기에 대해서도 놀랍도록 덤덤하다. 같이 일하는 매니저가 장수원은 반응이 너무 미지근해서 재미없다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
“많이 찾아주시니 기쁘긴 한데 그 기쁨에 취해 있을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크게 개의치 않고 싶은 마음이랄까? 인기라는 게 얼마나 거품 같은 것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마 과거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에서도 매우 뿌듯해하고 뭔가 이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직장인들이 매일 출근하듯이 저도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가족들 반응은 어떤지 물었다. 한동안 방송에서 보기 힘들던 그가 이제는 CF, 드라마, 예능을 종횡무진 누비며 활약하고 있으니 반가울 만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가족들도 덤덤한 편이에요. 젝키 때처럼 팬들이 너무 몰려와서 이사 갈 정도는 돼야 ‘얘가 인기가 많구나’ 하실 텐데 요즘은 그런 팬들은 없어서….(웃음) TV에 나오면 ‘얘가 요즘 조금 움직이나 보다’ 하시는 정도죠. 저도 집에 가서 ‘CF 찍었다, 스케줄이 뭐다’ 등 얘기를 시시콜콜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장수원은 1980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36세다. 여전히 젝키 때의 순수한 얼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나이보다 어려 보이지만 어느새 30대 중반을 넘어섰다. 동갑내기 멤버였던 고지용은 재작년에 결혼해 아들을 얻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지는데 아직은 뭔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진다는 게 조금은 부담스러울 거 같아요. 다만 엄마가 많이 아쉬워하시죠. 위로 형이 하나 있는데 둘 다 아직 결혼을 안 해서 다 같이 살고 있거든요. 엄마가 그러시죠. 손주 언제 안겨줄 거냐고….(웃음)”
사실 장수원은 꽤나 건실한 청년 사업가다. 자신의 소속사도 직접 꾸리고 있고, 유니폼 제작 사업과 남성용 맞춤 슈트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유니폼 사업은 꽤 잘돼서 다들 알만한 프랜차이즈 업체, 호텔 등의 유니폼도 많이 맡아서 하고 있단다. 알고 보면 사업가 기질도 다분하고 부지런하다.
“아침 9~10시에는 운동하러 가려고 노력해요. 보통 연예인들은 오전 11시에 일어나면 아침형 인간이라고 하는데 비교적 일찍 일어나는 편이긴 하죠. 운동 후에는 스케줄대로 일하거나 주로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요. 직접 영업도 하고요.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의외라고 하는데 주변에서는 안 그래요. 소속사를 직접 운영하는 건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전 이대로가 좋은 것 같아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특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장수원과 김재덕은 그 어렵다는 <무한도전> 노래방 오디션까지 통과하며 당당히 검증을 받았다. 또 1990년대 가수를 논하면서 젝키를 빼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출연하지 못한 것이 아쉽진 않았을까?
“지금도 이렇게 바쁜데 ‘토토가’까지 나갔으면 기절했을 거예요. 요즘 매니저 형이 스케줄을 어찌나 많이 잡는지…. 최소 3가지가 안 되면 불안해한다니까요.(웃음) 대신 ‘토토가’ 2탄에는 꼭 출연하고 싶어요. 그때쯤이면 ‘로봇 연기’ 인기가 끝나갈 테니 ‘토토가2’로 이어가야죠. 그리고 <미생물> 감독님이랑 또 다른 패러디 작품 하나 하고요.(웃음) 각자 하는 일이 있어 god처럼 완전체로 컴백하긴 힘들겠지만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옛날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요. 노랑 풍선을 든 팬들도 함께하고요.”
장수원은 솔직하고 여유가 넘쳤다. 낯도 안 가렸다. <미생물> 속 ‘장그래’ 같은 순둥이인 줄 알았는데 웬걸, 상남자에 가깝다. 전쟁 같은 연예계 바닥에서 그 흔한 구설수 하나 없이 18년간 버틸 수 있었던 이 남자의 단단한 내공,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