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 내원하는 아이들 중 밥을 안 먹는 것이 문제가 되어 오는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흔히 ‘식욕부진’이라는 것인데요. 증상이 다양합니다. 영·유아의 경우 이유식을 뱉어내기도 하고 밥을 입에 물고 삼키지 않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밥을 한 끼 먹이는 데 3시간이나 걸린다는 아이도 있고요. 이런 아이들은 편식이 심하거나 음식 섭취량이 적어 대개 몸이 마르고 쉽게 피곤해합니다. 이쯤 되면 ‘밥 먹이기 전쟁’이 시작되는데요. 엄마는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혼내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아이들은 자주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아빠들은 이 복통을 꾀병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혼내 이래저래 아이들은 식사 시간이 스트레스가 됩니다.
사실 밥을 입에 물고 있는 증상은 식욕부진과 약간 다릅니다. 밥을 물고 삼키지 않는 것은 목에 열이 정체되어 발생하는 ‘연하곤란’과 같은 증상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연하곤란이라고 했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고 제가 쉽게 표현한 것인데요, 이렇게 밥을 물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편도가 잘 붓거나 고열이 오르고, 잦은 감기로 고생하는 증상을 동반합니다. 감기를 앓기 전후로 목에 열이 몰리면 삼키지 않는 증상이 더욱 심해집니다. 이런 아이들의 경우는 억지로 밥을 먹이는 것보다 목에 있는 열을 내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진짜 식욕부진입니다. 잘 먹는 아이들은 소화효소가 활발히 분비되어 금방 소화되기 때문에 식욕이 왕성합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소화효소가 충분히 분비되지 않으면 배에 가스가 잘 찹니다. 이럴 땐 조금만 먹어도 더부룩하게 느껴 밥을 적게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는 자주 복통이 오고 심한 경우 토하기도 합니다. 억지로 한 숟가락 더 먹이려고 하면 토악질을 하거나 실제로 체하기도 합니다.
보약을 먹어 소화액 분비를 자극하면 입맛이 돌아 그 이후로 쭉 잘 먹는 아이도 있지만, 보약을 먹을 때뿐이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전자는 소화액의 원료 자체가 준비되어 일정한 자극을 받으면 잘 분비되면서 지속적으로 밥을 잘 먹는 아이로, 자생력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후자는 소화액의 원료 자체가 적어 자극을 줄 때만 살짝 나와 밥을 잘 먹다가 결국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가는 경우입니다. 또는 보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는 아이는 소화액의 원료 자체가 많이 부족해 자극이 있어도 소화액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식욕부진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잘 먹는 것보다 꾸준히 잘 먹을 수 있게 소화효소가 충분한 몸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화효소의 원료가 되는 고기를 적은 양이라도 매일 먹이는 것을 추천합니다. 식욕부진이 있는 아이들은 어차피 흡수량이 적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고기 한 점을 갈아 안 보이게 주든, 푹 익혀 무르게 만들어 주든 매끼 고기 한 점을 먹인다는 생각으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기 대신 생선도 좋습니다. 많이 안 먹는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 고기를 챙겨 주면 반드시 보답합니다. 많이 먹어 다 흡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자주 챙겨 흡수율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체력은 잘 소화된 음식으로부터 나옵니다. 체력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소화를 잘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소화 기능은 대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발달하여 완성됩니다. 그러니 사실상 이 시기가 인생에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2015년 올 한 해도 잘 먹고 튼튼한 아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한의사 김수경은…
진료 전문 11년 차 한의사. 한약만큼이나 식생활 개선을 강조하며, 블로그 ‘한의사 김수경의 착한 밥상’ (blog.naver.com/kidzfood)을 운영 중이다. 2008년 개그맨 이윤석과 결혼한 8년 차 주부로 ‘남편 건강 프로젝트’를 몸소 실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