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한 질문지가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반짝이는 눈을 가졌고 섬세했고 무엇보다 애주가였다.
취중 토크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어떤 것도 숨기거나 속이거나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기대되고 흥분돼요. 취중 토크를 진행해본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취해 그냥 취중으로 끝난 기억이 있습니다.(웃음) 오늘은 정신을 부여잡아봐야죠.
훨씬 나아요. 유쾌한 미남이시네요. 그래봤자 묶인 몸인데요 뭐. 실물 보면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제게 동안이라는 단어가 절대 가까운 단어가 아니거든요. 첫 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도 나이가 좀 있는 중년 남성의 역할이었고 데뷔 이후 줄곧 애 아빠 역할을 많이 했죠. 처음엔 그게 좀 스트레스였는데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노안인 사람이 갈수록 더 젊어 보인다는 말요. 그래서 그 말만 믿고 좀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최근 드라마를 끝냈어요. 여유가 좀 생겨 평소 기회만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었던 팝페라에 도전 중입니다. 개인적으로 ‘일 디보’라는 팝페라 팀을 좋아해서 벤치마킹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새로운 그룹을 하나 만들었어요. 성악 하는 친구 둘과 뮤지컬 하는 친구, 그리고 저까지 네 명이 뭉쳤죠. 벌써 활동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네요. 최근에 공연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봐주셔서 그 뒤로 공연 요청이 은근히 있더라고요.
팝페라라니 조금 의외인데요? 평소에 알고 지내는 성악가 한 분이 제 목소리 톤을 듣고 성악을 해도 괜찮겠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 절 불러서 ‘도’부터 ‘솔’까지 “아아아아~” 해보라기에 했죠. 그리고 아주 높은 음역대도 불러봤더니 잘한다고, 성대는 서양에서 가져온 것 같다며 칭찬해주시더군요. 그 뒤로 친구들을 소집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 후 술’ 모임으로 모여서 연습하죠. 예전에 원래 뮤지컬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인어아가씨>에 캐스팅되어 연예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죠. 그런데 <인어아가씨>가 큰 인기를 끌었고 자연스럽게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서 멀어졌어요. 그래서인지 무대에 대한 갈증이 계속 있었어요.
앞으로 무대에서 많이 볼 수 있겠네요? 연예인이 되고 난 뒤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연극 쪽을 돌아보지 않았어요. 유명해진 뒤 사건이 벌어졌고 결국에는 원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도 날 받아준 곳이 연극 무대였죠.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해요.
최근에 광고 촬영을 했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맞아요. 지하철에 광고가 걸려 있는데 치과 광고죠. 광고주는 와이프. 아직 모델료를 지급받지 못했는데 곧 1인 시위 들어갈 예정이에요.(웃음) 사실 저를 모델로 써서 광고 효과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저를 써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죠.
신혼 생활은 어떠세요? 이제 조금 있으면 결혼 2주년이 되네요. 여전히 신혼 같으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근데 신혼 생활을 이전에 겪어본 게 아니니까 어떤 게 신혼 같은 것인지 잘 모르겠고 그냥 철없이 살고 있죠. 같이 장도 보러 가고 둘 다 먹는 거 좋아해서 밤에 야식 먹으러 나가고요. 드라이브도 가끔 하고 그래요. 와이프가 제일 많이 달라진 게 술이에요. 예전에는 술을 정말 못 마셨거든요. 그런 아내가 술을 먹더라고요. 맥주 한두 병 정도? 어떤 날은 퇴근해 들어가면 집에서 이미 맥주를 한잔하고 있는 거에요. 그럼 저도 합류해서 같이 주거니받거니 술병을 기울이죠. 저도 술을 잘 마시지는 않는데 술자리를 좋아해요. 결혼 후에도 여전히 술자리가 즐거운데 그래도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술 먹고 후배나 선배들 등 쳐주는 게 일이었는데 지금은 부부 동반으로 다니니까 그렇게 술을 많이 먹을 일이 없어요. 최근에는 부부 동반으로 클럽에도 갔다 왔죠. 정말 즐거워요.
항공권 마일리지 때문에 아내와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웃음) 제가 외국에 나가야 할 일이 있었고 항공권 마일리지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가 자신한테는 마일리지가 많다는 거예요. 근데 그걸 가족만 쓸 수 있다고 해서 농담처럼 “혼인신고부터 먼저 하자”고 했죠. 그 말에 아내가 선뜻 “오케이” 한 거죠. 사실 혼인신고도 아내가 혼자 했어요. 전 얼굴이 알려져서 같이 가면 말이 많아질까 봐 와이프가 서류를 들고 가서 접수했죠.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거든요. 웨딩드레스도 혼자 고르게 했는데 차 안에서 조용히 기다리면서 미안한 마음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가 드레스 입은 것도 보지 못하고 결혼식 당일 날 처음 봤는데 “이런 미인과 결혼하게 되다니!”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때 정말 예뻐 보였어요.
지금도 예뻐 보인다는 말이죠?(웃음) 예뻐요! 오늘 아침에도 “뭐 입고 갈까?” 하니까 “잠깐만~” 하더니 미리 다 골라놓은 옷을 내놓더라고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티셔츠부터 머플러까지 다 아내가 손수 맞춰놓은 거예요. 아마 스타일리스트 비용이 제 모델료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저희 이렇게 살아요.
다시 예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요? 예능, 정말 재밌고 즐거워요. 왜 안 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제가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시청자들이 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조심스럽게 도전하고 싶어요. 예능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데 제가 나오면 모든 사람이 웃을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해보게 됩니다. 제가 대중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지, 아직 스스로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예능에 함께 출연했던 사람들과는 아직 연락하고 있나요? 이틀 전에도 (김)태원이 형이랑 (이)경규 형이랑 소주 한잔했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티격태격했어도 결국 형님들이 감싸주고 다독여주셨거든요. ‘아픈 손가락’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아요. 제가 성격이 좋아 형님들과 잘 지낸다기보다 제가 연락을 해도 형님들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니 관계가 계속될 수 있는 거죠. 제가 누를 끼치는 동생이 아닌가 싶어 늘 죄송스러울 따름이에요.
예능 체질인가요? 누가 뭐래도 전 배우예요. 아주 오래전에 인터뷰했을 때 “연기와 예능 중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대답했죠. “뭐든지!”라고. 지금도 변함없어요. 사건 이후에도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자숙의 시간이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전에는 ‘내가 이런 걸 왜 해’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고 해요. 연기에 대한 욕심이라기보다는 간절함이에요. ‘이걸 꼭 하고 싶어’라는 간절함이죠. 최근 종영한 사극 <삼총사>에서 맡은 캐릭터가 변발이었거든요. 사전 미팅 때 변발을 해야 한다고 하면 거절할 줄 알았나 봐요. 변발도 분장 중 하나인데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오히려 전 감사했어요.
특별히 하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며칠 전 침대에 누워 TV를 본 적이 있어요. 뭘 봤는지 생각은 잘 나지 않는데 불을 끄고 들어오면서 와이프가 “에이그~ 곧 하게 될 거예요”라고 하는데, 제 눈빛이 그렇게 보인 건가 싶어 쑥스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어요. 좋은 사람한테는 기회가 금방금방 오더라며 절 위로해주는 아내가 고맙게 느껴졌어요. 하고 싶은 역할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어요. 남자 나이 마흔이면 불혹이라는데 저는 계속 ‘호혹’이야. 자꾸 혹하고 싶어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죠. 촬영장에서 나이 드신 연기자 선배들을 보면 ‘나도 저 나이 될 때까지 건강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말하면 ‘그때까지 연기하자’란 생각이겠죠.
잘 맞는 부부인데도 같이 살면서 불편했던 점이 있나요? 제가 열이 많아 잘 때는 다 벗고 자는데 아내는 솜이불을 덮고 자요. 그래서 결국 저는 바닥에서 자곤 했죠. 아내가 부부는 같이 자야 한다고 해서 저는 더워도 조금 참고 아내는 추워도 조금 참으면서 서로에게 맞춰갔어요. 분명 쉬운 일은 아니죠. 아내도 많이 참고 기다려주었고요. 물론 종종 다투기도 하죠. 하지만 일요일엔 교회에 가야 하니까 아무리 다퉈도 아침 9시에는 풀어야 해요. 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어요. 저도 원래 교회에 다니긴 했는데 이렇게 매주 나가기는 처음이거든요. 근데 아내와 교제하고 얼마 안 되어 교회에 가면서 손을 흔들면서 걸어가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결혼하면 이건 매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싸운 뒤 냉전 기간이 오래가봤자 일주일이에요. 아내는 힘들었을 때 가장 큰 힘이돼요. 아픈 과거까지 다 잊게 해주죠.
아내가 네 살 연상인데 나이 차이를 느끼나요? 너무 젊어지지 말라는 말을 아내가 가끔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내가 연상이어서인지 저를 많이 돌봐주고 이해해주죠. 무엇이든 혼자서 해내려 하고 많이 참곤 해요. 내조를 잘하는 여자예요. 그러니 저도 외조를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중국 환자들을 대할 수 있는 CEO 과정을 공부하고 있어요. 지금 공동 CEO로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데 제가 그 분야에 대해 전혀 몰라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열심히 공부 중이에요. 중국에서 아직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다행이에요.
가끔 저를 깎아내리려고 “병원 문 닫아주고 기사 노릇 해주는 셔터맨 되려고 결혼했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참 마음 아파요. 제가 아내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텐데 말예요. 지금은 아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같아 속상하지만 이제 곧 그녀에게 꼭 필요한 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가졌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요? 너무 이른 기사가 났었죠. 기사를 검색해보니 “다음 달 아기 아빠 된다”고 나왔던데 사실 그달에 유산됐어요. 노력은 하고 있는데 아내도 아이를 갖기에는 힘든 상황인 걸 알거든요. 이미 결혼 전부터 우리 둘 사이에 아이가 없어도 좌절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서 사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머니도 이미 알고 계셨거든요. 게다가 우리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아요. 저를 만나기 전에 아내는 아픔을 한 번 겪었고, 아들이 있었아요. 고등학교 1학년인데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이제는 친하게 지내요. 전 철없는 아빠예요.
학교 교무실에도 한 번 불려가서 아들 대신 혼나기도 했고, 잔소리 들으면서 “예예~” 하기도 했고요. 결혼하고 나서 가장이라는 이름표가 달리다 보니 좀 더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이가 아직 아빠라고는 안 해요. 갑작스레 아빠가 생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본인 스스로 하고 싶은 날이 있겠죠. 그래도 요즘은 제가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면서 라면 끓여달라고 졸라요. 아이가 지금 사춘기라서 학교에서 무슨 사고라도 칠까 봐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 학교 체육 선생님이 제 후배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하면 바로 연락이 오죠.
교육관 같은 게 따로 있나요? 저는 딱 하나 있어요. 어디서든지 환영받고 필요한 사람이 되자.
운동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어쩌다 연기 쪽에 발을 들이게 된 건지?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꿈은 탤런트였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절 대학에 보내야 하는데 공부를 못하니 운동 쪽으로 전략을 바꾸신 거죠. 결과적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제가 하고 싶은 연극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운동을 좋아해 골프 같은 건 즐기고 있죠.
아직도 첫 무대가 기억나나요? 네, 지금도 똑같이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요. 무대엔 막이 내려져 있고 무대 뒤쪽에선 다들 긴장한 채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가다듬죠.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딩동댕~” 하고 울리면 그때부터 심장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팝페라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아주 좋은 기분이죠.
멘토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나요? 2002년부터 추석과 설날엔 항상 박근형 선생님께 선물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왜냐면 그분이 제게 연기를 가르쳐준 선생님이기 때문이에요. 그 감사한 마음이 잊히질 않고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늘 같은 걸 보내드리는데 딱 한 번, 너무 어려울 때 배로 바뀌긴 했어도 그분께는 꼭 선물을 챙겼습니다. 보통 대본 리딩 시간이 2시간이에요. 오전 8시에 시작해서 10시까지, 두 시간이면 끝나는데 박근형 선생님은 계속 다시 읽으라며 제가 똑바로 연기할 때까지 잡아주셨죠. 결국 사미자 선생님은 중간에 집에 먼저 가셨어요.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서 이를 악물고 진짜 연기가 되도록 노력했죠. 그때 참 많이 배웠습니다. 지금도 후배들이 어떻게 해야 연기를 잘할 수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하면, “난 아직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내가 배운 걸 그대로 이야기해줄 수는 있다”며 선생님이 제게 일러주신 걸 그대로 이야기해주죠.
앞으로 어떤 배우이고 싶나요? 연기 잘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어요. 연기 잘하는 연기자가 되자. 요즘은 다양한 매력을 풍기는 친구가 많잖아요. 근데 저는 다른 것보다 연기력으로 승부하고 싶어요.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지금처럼 유치하게, 철이 들지 않은 상태로 서로 사랑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살고 싶어요.
김성민은 브라운관에서 활약하며 한창 주가를 올리던 예전보다 지금이 더 바빠 보였다. 남편, 아빠, 사업가, 학생, 팝페라 가수, 연기자라는 더 많은 이름표가 달렸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의 웃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여유로워 보였다. 기분 좋은 웃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