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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작가

우린 모두 다 미생이야

작가의 인생은 ‘완생’이냐고 물으니 그 역시도 ‘미생’이란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미생들에게 던지는 그의 메시지.

On December 04, 2014


버티기 한판이다. 바둑에선 살지 죽을지 모를 상황에 몰린 말을 ‘미생마(未生馬)’라고 한댔다. 인생에서 미생마로 남지 않고 완생하기 위해서는 버티는 수밖에 없다. 잘난 이든, 못난이든, 완벽하든, 모자라든 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한다. 윤태호 작가는 그런 삶을 그리고 싶었다. 특정한 사람들의 드라마가 아닌, 각자 자기 삶을 완성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폼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지만 한편으론 소박하게 사는 소시민이 되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인기, 실감하시나요?
책이 많이 나가서 실감하고 있습니다.(웃음) 단행본이 꾸준히 나가고는 있었지만 tvN에서 <미생>이 방영되기 전에는 90만 부 정도 나갔는데 드라마가 시작된 뒤로 60만 부가 더 발행됐다고 하더군요.

<미생>을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울컥할 때도 있었습니다.
혹자는 인생의 나침반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1백만 부를 넘었을 때부터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이 온 것 같습니다.(웃음) 인기 비결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보통 드라마든, 영화든, 만화든 샐러리맨을 다루는 작품을 보면 위대한 일을 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려요. 큰 플랜트 공사나 몇 조원짜리 계약을 따낸 사람들의 이야기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사막에서 와인을 따고 건배하며 계약서에 사인하는 사람은 단 몇 명일 뿐이죠. 드러난 사람들이 업적을 이뤄내기까지 파티션 밑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작은 숫자와 점 하나에 분노하는 모습이 자기 이야기 같고, 그런 이야기를 풀려고 했던 게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범한 이야기라 더 큰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상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일부러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걸 쓰면 사실관계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고 제가 전하려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할 수 없어 일반적인 만화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덤덤하고 평범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죠.

실제로 한 회사에서 취재 협조를 받으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고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한 종합상사에 공식적으로 취재 요청을 했지만 업체의 운영 노하우 등이 노출될 수 있어 거절당했죠. 그러다 웹툰으로 <미생>을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친한 동생의 남자친구가 종합상사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어 두 사람의 데이트에 따라다니며 취재했습니다. 연재 후엔 만화를 본 여러 회사에서 협조를 해주겠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를 엮어가야 했기 때문에 몇 분을 더 만나 취재해야 했어요. 하지만 취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드라마를 쓸 때 톤 자체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3~4명을 제외하곤 다른 분들의 제안을 다 거절했습니다. 그 3~4명의 취재원들과는 요즘도 만나고 있고요.

왜 하필이면 종합상사였나요?
여러모로 봤을 때 가장 회사의 본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비스를 한다는 개념이 아닌, 물건을 판다는 개념에 딱 맞는 회사니까요.

사전 작업 시간이 3년이나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안 풀려서였어요.(웃음) 저와 계약한 출판사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만드는 회사였어요. 계약 당시엔 몰랐다가 후에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실용서가 많더군요. 하지만 저는 실용서를 만들 생각이 없었어요. 2년간 고민했죠. 그러다가 출판사에 먼저 미팅을 신청했어요. 바둑의 고수가 나와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건 못 하겠다고요. 계약이 파기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오히려 저의 말을 듣고 더 좋아하더라고요.

계약 당시는 만화 <이끼>의 연재가 끝난 뒤였는데 1년 뒤에 영화가 개봉했어요. 영화는 인기를 끌었고 출판사에서는 ‘알아서 잘할 분한테 우리가 감히 제안을 했나’라는 생각에 비상이 걸린 거예요. 내부적으로 ‘지금이라도 작가님이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도록 제안하자’라는 의견과 ‘이미 작가님이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며 의견이 갈렸죠. 하지만 제가 한 제안 덕분에 이야기의 방향성이 더 선명해졌고 이후 척척 진행을 할 수 있었어요. 출판사 쪽에서 제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미생>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테마를 먼저 잡아요. ‘무엇을 위한 이야기다’라는 이야기의 축을 잡는 것이죠. <미생>은 회사에 있기 위해서 집에 다녀오는 사람이 아니고, 집에 가기 위해 회사에 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근데 그게 왜 힘든가? 회사라는 건 뭔가? 계속 생각했어요.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지만 저는 일 자체도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영업3팀’이라고 하는 곳은 꿈동산 같은 곳이라고 설정했죠. 대학생이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싶다고 꿈꾸죠.

사원이 된 뒤엔 대리, 과장이 됐을 때를 상상하죠. 그 평범한 사람들의 지향점을 모아놓은 게 영업3팀이고, 모두 잘하려고 노력하는데도 왜 일하기가 힘든가? 그걸 그리려고 한 거예요. 그렇게 테마를 잡고 난 뒤 작품의 제목을 정해요. 원래 출판사에서 제안했던 제목은 ‘고수’인데 전 싫었어요. 바둑의 고수가 직장인들에게 뭔가를 조언한다는 게 어색했죠. 주인공이 바둑의 고수일 순 있지만 삶의 고수는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바둑의 고수라고 한들 아무한테나 “그건 아니야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하는 건 무례하고,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생마’라는 바둑 용어를 제목으로 사용했어요. 고수와는 반대의 의미이기도 하죠.


<미생>이라는 작품이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를 작가로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주는 작품이에요.

인물들의 심리가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 것이 힘들진 않았나요?
데뷔한 지 20년 넘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기술은 어느 정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작품은 그것만으로 되는 건 아니죠. 생각한 에피소드를 취재한 내용과 어떻게 접목시켜야 하는지가 중요하죠. 통찰력이 없으면 접점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 힘들어요. 접점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를 많이 고민합니다. 취재원들을 만나서 정보를 캐기보단 ‘왜?’를 많이 묻게 돼요. 보고서를 쓰라고 했으니 쓰면 되는데 왜 그게 힘든 건지, 어디까지가 2팀의 역할인 건지 계속해서 꼬리를 잡으며 구체적으로 물어나가는 거죠. 그럼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테이블에 있는 모습이 그려져요. 그리고 구체화되는 과정 중에 동의를 하거나 공감하는 과정들을 겪게 되는 거죠.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었어도 작가님의 인생이 접목되지 않고서야 이런 깊이가 느껴질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취재의 힘이 없었으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땐 나이가 제일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마흔 여섯인데 만약 너무 어려서 취재원들이 해준 좋은 말들을 들을 귀가 없었다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조직생활을 해보진 않았어도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출판사나 신문사처럼 관료화된 조직 문화라는 걸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봤고, 이들에겐 우리와는 다른 어떤 점이 있었는지도 알게 됐죠. 그렇게 평소에 제가 느꼈던 바가 취재를 하면서 보완되고,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숙성된 생각들이 합쳐져서 내레이션이 나오고,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대사가 돼서 나오기도 하는 거죠.

그럼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장그래인가요?
오 과장입니다. 워커홀릭.


작품을 보면서 모두 다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도 여전히 미생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전히, 누구나 미생이지요.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자기 직업에서 성취가 크다고 해서 그 사람이 완전해졌느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직도 갈등하는 지점이 많고, 스스로 의심하는 지점도 그렇고 모순이 너무 많아요. 되게 폼 잡으며 살고 싶은 욕망이 있으면서도 소박하게도 살고 싶고, 도의 관점에서 보자면 미혹되는 게 여전히 많아요.

작가님이 이 정도의 만화를 낸 걸 보면 어느 정도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했거든요.
답이 나와서 대사가 나올 때도 있지만, 아직 진행 중인 고민이라서 대사가 나올 때가 더 많아요. 그리고 입으로 멋있는 말 떠들어놓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웃음)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기까지 작가님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을 텐데요,
가족들도 옆에서 많이 응원했을 거고요.

<이끼>를 연재하기 전 3년 정도 슬럼프에 빠졌었어요. 그땐 1년에 1천만원 정도의 수입만 있었죠. 그때 아내는 처갓집에서 돈을 빌려오곤 했어요. 뒤늦게 9천만원의 빚을 졌다는 것을 알았죠.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게 <이끼>였어요. 역시 ‘핀치’에 몰리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구나 생각했죠.(웃음) 통장에 잔고가 있으면 창작이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결국 창작은 마음의 빚에서 비롯되는 거죠.(웃음)

그 어느 때보다 인간적인 작가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네요.
인간적이라기보단 게으른, 나태한 작가죠.(웃음)


아직까지 꿈을 찾지 못한 사람도 많고,
일은 하고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미생>이 직장인 만화다 보니 기업 특강을 많이 가는데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요. “창작자는 꿈을 이룬 사람인데 그 삶은 어떠냐?”는 거죠. 제가 어릴 때 “만화가가 될 거야”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만화가라는 말 앞에 ‘어떤’이라는 수식어가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건강한 만화가, 성실한 만화가, 약자를 보호해주는 만화가 등 수식어가 있어야 하는 거죠. 꿈을 물을 때 “하고 싶은 직업이 뭐야?”라고 묻잖아요? 그 질문이 잘못된 거예요.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어야 맞는 질문이고, 그게 ‘꿈’인 거죠. 아이들은 의사, 만화가, 선생님이 될 거라고 해요. 근데 생각해보면 꿈꿨던 직업을 이루는 순간 꿈은 없어지는 거고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진짜 꿈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죠.

샐러리맨이라고 꿈을 저버린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자신이 되고 싶은 걸 직장생활 하면서 이루면 되는 거예요. 어릴 때 위대한 샐러리맨이 되겠다고 꿈꾸는 어린이는 없잖아요. 근데 ‘나는 남을 속이는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라는 꿈은 어떤 직업에, 어떤 위치든 상관이 없는 거죠. ‘나는 약자를 돕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건 어떤 직업을 가져도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제가 어릴 때 꿈꾸던 만화가도 지금의 제 모습과는 좀 달라요. 지금의 나는 성공을 위해 남한테 피해를 주기도 하고 남을 속이기도 하고 기만하기도 하고, 거의 괴물에 가까운 사람이 돼버렸어요.

그건 제가 어릴 때 꿈꾸던 사람은 아니에요. 우리 같은 직업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걸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사람이 아무리 거짓말을 잘해도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속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걸 평생 직업으로 20년 넘게 하다 보면 자신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어요. 자기 기만적인 이야기이거나, 내면이 부족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드러내야 하는 직업이 갖고 있는 비참함이 있어요.

그럼 감히 묻자면, 만화가님은 꿈을 이루셨나요?
아직 멀었죠. 멀었어요. 젊은 사람들보다도 이루기 더 힘들 거예요. 왜냐하면 46년 동안 살아온 게 있어서 때를 벗겨내야 하거든요.

어떤 수식어가 붙은 만화가가 되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아직까진 그냥 되게 멋있는 만화가가 되고 싶어요. 간지 나는.(웃음)

허영만 선생님의 문하생으로도 있으셨죠? 물려받은 버릇이 있나요?
취재 욕심. 허영만 선생님이 남다르시죠. 그걸 옆에서 하도 보다 보니까 그게 당연한 과정처럼 됐어요. ‘내가 특별한 취재를 하고 있어’ ‘특별한 일을 하고 있어’가 아니라 ‘내가 만화로 밥 먹고 살려면 당연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죠.

덕분에 선생님의 작품은 예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더라고요.
허 선생님은 정말 전력으로 하시죠. 취재를. 제겐 분에 넘치는 칭찬 같고요.

그래서 더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만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구력이 안 되면 소재주의라는 욕을 먹게 되죠. 패턴은 똑같은데 항상 소재만 달라지는 그런 작품요.

마지막으로 <미생>을 통해 이 메시지만은 전달하고 싶다는 게 있다면?
얼마 전에 취업 준비생들이 인터뷰를 왔어요. 제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생각할 때 어떤 건 하면 안 될 것 같고, 다른 취미가 더 맞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근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자격증도 없이 자기 자신의 주치의가 되더라고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면서 스스로 자꾸 답을 만들고 진단을 내려요. 진단 내리기 전에 자기가 주치의로서 자격이 있나 살펴보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남이 가르쳐주는 지식은 많이 배웠잖아요. 근데 자기 스스로 자기를 볼 줄 아는 거울을 만드는 과정은 없더라고요. 스스로 진정한 자기 자신의 주치의가 됐으면 좋겠어요. 인문학이라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학문이거든요. 타인을 향한 게 아니라 자기가 세상을 보는 관점, 자기가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자기 자신이에요. 자신에 대해 공부를 한 뒤에 스스로를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고 전하고 싶어요.

  • 윤태호 작가가 직접 뽑은 <미생> 어록 BEST 3

    1_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2_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다.
    3_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다.
CREDIT INFO
취재
이현경·전유리 기자, 박지현 객원기자
사진
이진하, 최항석, tvN 제공
장소협조
빨간책방 카페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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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이현경·전유리 기자, 박지현 객원기자
사진
이진하, 최항석,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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