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은 삼장법사를 필두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뒤를 잇는다
하늘 맑고 바람 시원한 가을, 역사 나들이 장소로는 궁궐이 제격이다. 궁궐 방문객들을 제일 먼저 맞는 것은 ‘서수’와 ‘잡상’이다. 때로는 무시무시하고, 때로는 신기하게 보이는 서수와 잡상을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서수(瑞獸)’란 글자 그대로 ‘상서로운 짐승’이란 뜻으로 특정한 동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린이나 해태 등 주로 상상 속에 등장하는 동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궁궐 안의 서수는 보통 계단 중앙의 답도(국왕 전용로) 양옆이나 다리 난간, 주요 건물 주변에 있는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경복궁 앞을 흐르는 금천의 영제교 위에는 혹 물길을 통해 들어올지도 모르는 잡귀를 노려보는 듯한 서수가 혀를 쭉 빼물고 있으며, 근정전 주위에는 부부 동반에다 아이까지 거느린 서수 가족이 눈에 띈다.
정전 주위에는 서수 가족이 보인다.
궁궐에는 서수 말고도 사악한 기운을 막는 영물이 또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잡상(雜像)이다. 궁궐의 건물, 왕릉의 정자각 지붕 위에 인형 비슷한 것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잡상이라 한다. 건물의 규모와 지위에 따라 보통 5개에서 많게는 11개까지 늘어서 있다(경복궁 경회루의 잡상이 11개로 가장 많다). 이는 중국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형상화한 것으로, 혹 들어올지도 모를 잡귀신을 막기 위한 것이다. 아무래도 소설 속에서 수많은 요괴와 악마를 물리친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았나 보다.
제일 앞에서 잡상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삼장법사. 그 뒤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나란히 서 있다. 물론 아무리 봐도 우리가 상상하던 <서유기>의 등장인물들과 닮지는 않았다. 지난번 살펴본 대로 조선시대에 새로 발령을 받아 궁궐로 출근하는 관리는 일종의 통과의례인 ‘신참례’를 하는데 이때, ‘고참’ 앞에서 궁궐문 지붕에 있는 잡상 10개의 이름을 순서대로 단번에 외야 했다고 한다.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마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천산갑, 이귀박, 나토두가 그 이름들이다.
경복궁의 금천교인 영제교의 서수.
궁궐로 들어오려는 잡귀를 쫓아낸 것은 서수와 잡상만이 아니었다. 궁궐 앞을 흐르는 금천을 가로지르는 금천교에는 귀신 얼굴을 새겨 넣었고, 근정전 주변에는 서수뿐 아니라 12지신까지 두어 사악한 기운의 범접을 막았다. 또한 궁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정전 주위에는 ‘드므’라는 항아리에 물을 담아놓았는데, 이는 불을 일으키는 화마가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놀라 도망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궁궐에 드나들며 피해를 입히는 것 또한 잡귀만이 아니었다. 궁궐 건물의 처마에 삼지창이 있거나 그물로 막아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제비를 막기 위해서였다. 제비가 처마 밑에 집을 지으면 배설물 등으로 인해 건물이 상하고, 또 제비를 노리는 구렁이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글쓴이 구완회는…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역사학도로서 저서 <아빠가 알려주는 문화유적 안내판>이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청소년 권장도서, 경기도 교육청의 수행평가 추천도서 등으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중학생을 위한 딱 2시간 한국사>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