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폴렛 화이트 원피스 하이어디즈, 이어링·네크리스 모두 블랙뮤즈.
“보통은 있는 그대로의 캐릭터를 연기하면 되는데, <왔다! 장보리> 속 ‘연민정’은 달라요. 단순히 ‘연민정’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연기하는 ‘연민정’을 표현해야 하는 독특한 캐릭터죠. 그래서 더 연기하는 맛이 나고요. 작가님이 배역에 대해 설명해주실 때 ‘못된 짓을 해도 슬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런 주문이 아니었어도 아마 저는 ‘민정이’를 미워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친엄마한테 못되게 구는 거나, 거짓말의 끝을 보여주는 극악한 행동 자체는 미워도 이름 그대로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캐릭터잖아요. 그렇게 발버둥을 쳐도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게 짠하기도 해요.”
레이스 블랙 롱 드레스 페이우, 이어링·브레이슬릿·링 모두 블랙뮤즈.
이유리, ‘국민 암 유발자’가 되다
시청률 35%를 찍었다는, 그 유명한 MBC의 간판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에디터는 표지 촬영을 위해 극 중 이유리의 캐릭터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했다. 다행인 건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을 굳이 수소문할 필요 없이 대부분의 지인이 드라마의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었고, 하나같이 극 중 이유리의 배역인 ‘연민정’을 욕했다. 그것도 아주 격하게. 그래서 드라마가 얼마나 재밌기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도대체 ‘연민정’이 어떻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가 싶어 방송국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처음엔 3분 미리보기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다 결국 회당 700원의 비용을 결제하며 전편을 보게 됐다. 아, 이 중독성 짙은 드라마의 힘이라니. 착한 여주인공 ‘보리보리 장보리’가 드라마의 인기 비결이기도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한몫하는 배역이 바로 이유리가 연기하는 ‘연민정’이다. ‘연민정’의 악행은 멈출 줄 모르고 점점 수위를 높여간다. 혹자는 그녀의 악행에 시청자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며 ‘국민 암 유발자’라는 닉네임을 붙이기도 했다.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는 심산으로 시청자들은 매주 TV 앞으로 모여든다. 갑자기 ‘확!’ 하는 것보다 ‘슥-’ 하는 게 더 무서운 법. 국민 며느리에서 국민 악녀로 등극한 이유리는 그 한 끗 차를 칼같이 연기해낸다. 회를 거듭할수록 ‘연민정’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는 건 이유리의 농익은 연기력 때문이리라.
착한 욕심쟁이, 연기를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유리는 촬영하는 내내 마치 첫 화보 촬영 전날 거울을 보며 밤새 포즈 연습을 할 법한 신인처럼 ‘열심히’ 포즈를 취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이를테면 립스틱 컬러의 농도를 자기가 원하는 딱 그만큼으로 맞추길 원했고, 벨트 하나 이어링 하나까지도 마음에 쏙 들 때까지 바꿨으며, 심지어 아이라인은 손수 수정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걸 불편해하지 않았다. 할 말 다 하면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들지 않는 건 분명 재주다. 그 비결을 곰곰 생각해보니 이유리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반드시 구현하지만, 에디터와 포토그래퍼,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가 원하는 것 또한 들어줬다. 고집스러운 그녀의 취향은, 결과적으로 타인의 의견이 수렴될지언정 그저 스스로 맡은 일과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유리식 착한 욕심이었다. 연기를 할 때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레이 니트 슬리브리스·와이드 팬츠 모두 디누에, 레드 가르보 햇·와이드 벨트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링·브레이슬릿 모두 프란시스케이.
“스모키 화장을 짙게 하고 희번덕거리며 막 소리 지르는 악역이 아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상도 못할 거짓말로 남을 궁지에 빠트리기를 일삼다 들킬 만하면 그보다 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국민 악녀가 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욕먹으려고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죠.”
“시청률이 잘 나와서 행복하고 감사해요. 식당에 가서 밥 사 먹을 때 눈총 받고 뒤통수 따가운 거 느낄 때 인기(?)를 실감하죠. 이런 것도 인기라고 하는 거 맞나요?(웃음) 다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왔다! 장보리> 속 제 모습을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는 걸 봐도 신기해요. 최근엔 인기의 척도라 불리는 ‘야구 시구’도 했다니까요.”
슬릿 롱 드레스 하이어디즈, 이어링·브레이슬릿 모두 블랙뮤즈, 큐빅 포인트 힐 슈대즐.
뭘 해도 최선을 다할, 그래서 최고가 될 배우
한때는 ‘국민 며느리’라 칭하던 이유리가 악역 세 번 만에 ‘국민 악녀’로 등극했다. 업계에 ‘착하다’고 소문나 있고, 10분만 같이 있어도 명랑·쾌활·긍정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그녀가 브라운관 속 ‘꼴도 보기 싫은’ 연민정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다. 장난기 그득한 개구쟁이 같은 눈을 가진 그녀가 말이다. 결혼 후 신앙 안에서 서로를 섬기고 응원해주다 보니 연기가 더 편해졌고, 점점 더 행복하단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얼굴에 그리 써 있지 않은가? 하는 짓은 미워도 예쁘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얼굴, 그게 바로 행복하다는 증거니까. 뭐든 부단히, 무던히 노력할 것 같은 배우 이유리. 그 노력이 억척스럽지 않고 영민해 보인다는 거, 그게 앞으로 그녀의 연기 인생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는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