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지쳐 보였다. ‘트로트의 황제’로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 송대관은 현재 아내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수백억의 빚을 지고 있다. 게다가 투자금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5월에는 그가 애지중지했다는 이태원동의 집까지 팔았다.
지난 5월 27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는 송대관과 그의 아내 이모씨의 공판이 열렸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캐나다 교포 A씨로부터 부동산 분양 투자금 명목으로 3억 7천여 만원을 받고 개발도 하지 않고 투자금도 돌려주지 않은 혐의다. 앞서 두 번의 공판이 열려 시비를 가렸지만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송대관은 언론을 의식한 듯 뒷문을 이용해 조용히 법정으로 들어갔다. 피고인석에 앉은 그의 모습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가수의 신분으로 무대에서 보여주던 밝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입을 굳게 다물고만 있었다.
사기꾼 낙인, 가수 생활에 직격탄
3차 공판이 끝나고 며칠 후,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일 송대관을 인터뷰했다. 우연찮게도 그날은 송대관의 생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일이라고 뭐 별 다를 것 있겠어요? 우울한 생일이죠, 두 아들이 미국에서 잠시 들어왔어요. 아빠로서 아들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한 살 더 먹는 것이 싫어서 생일 케이크는 하지 말자고 했어요. 조용히 가족과 보냈습니다.”
그가 먼저 3차 공판일 당시 법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유명 연예인으로서 ‘사기죄’라는 불미스러운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착잡했을 터. 깊은 한숨에서 그간의 답답한 심정이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숨길 것도, 피하고 싶은 것도 없다”며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피고인석에 앉아 고소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마음이 심란했어요. 제가 나서서 직접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많이 답답했어요.”
고소인 A씨와 송대관은 서로 ‘처제’ ‘형부’ 라 부를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그런데 아내 이씨가 투자금을 모집한 충남 보령 땅의 개발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이들 사이가 틀어졌다. A씨의 주장은 송대관이 이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 송대관은 “잘 몰랐다”는 입장이다.
“시시비비는 법원에서 다 가려줄 거예요. 그런데 저는 대중 앞에서 노래해야 하는 가수예요. ‘가수 송대관이 사기를 쳤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제 상황이 말이 아니에요. 이 일이 잘 마무리된다 해도 저는 이미 대중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될 것만 같아 심란합니다.”
그의 말처럼 사기 혐의는 송대관의 명성에도 크나큰 타격을 주었다. 아직 혐의가 입증된 상황이 아님에도 하루아침에 ‘유명 가수’에서 ‘사기꾼’으로 낙인찍힌 것.
‘차표 한 장’ ‘네 박자’ ‘유행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그를 요즘 방송에서 통 볼 수 없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활동에 제동이 걸리면서 그는 점차 대중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라이벌 가수 태진아와 해마다 함께 진행해오던 연말 디너쇼도 작년에는 건너뛰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디너쇼를 건너뛴 건 꼭 저의 재판 때문만은 아닙니다. 요즘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디너쇼를 해도 수익을 거두기 힘드니까요. 그래서 잠시 접은 것뿐이에요. 혹시라도 저 때문에 태진아씨가 피해를 입을까 연락도 자제하고 있어요.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태진아씨가 많이 걱정을 해줬습니다. 마음만으로 감사하죠. 제 아내의 불찰로 이런 일이 생긴 건데 저로서도 많이 미안하죠.”
그의 목소리에서 착잡함이 묻어났다. 얼마 전 터진 세월호 사건으로 잡혔던 행사마저 줄줄이 취소되면서 삶은 더 팍팍해졌다. 유명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할 시련이 그에게는 큰 산인 듯했다.
송대관의 눈앞에 있는 또 하나의 숙제는 아내 대신 갚아야 할 빚이 2백억대라는 사실이다. 아내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진 빚은 연대보증인인 송대관에게 고스란히 넘어왔다. 그 빚을 갚지 못해 송대관이 소유하고 있던 경기도 화성의 땅과 이태원동의 단독주택은 한때 경매에 넘어갔었다.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내면서 가까스로 경매 집행은 막았지만, 현재는 이마저도 매각해 처분한 상태다. 수십 년간 모아온 재산이 한순간에 날아간 셈이다.
특히 이태원동 주택에 대한 송대관의 애정은 각별했다. 2001년 경매에 나온 부지를 매입해 5년에 걸쳐 신축한 것이었다. 그는 ‘네 박자’가 히트하고 한 층 올리고, ‘유행가’가 히트하고 한 층 더 올리는 식으로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집을 지으며 행복한 노후를 꿈꿨다. 집의 인테리어 하나하나에도 손수 공을 들였고, 지인을 만날 때도 항상 그 집에서 만났다. 이태원동 집은 그만큼 송대관의 손때가 묻고 추억이 어린 곳이었다.
“지난 5월에 제가 그렇게 아끼던 이태원동 집을 팔았어요. 지금은 식구들이 월세 살고 있어요. 내 소유의 경기도 화성 땅도 팔았습니다. 있는 것을 내다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은 노래해서 얻은 수입으로 계속 갚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당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고 ‘에이, 모르겠다’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러지 않아요. 저 책임감 없는 사람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내를 믿는다
아내의 사업 실패로 그의 연예계 활동에 제약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 재산도 다 날렸다. 이쯤 되면 제아무리 몇십 년을 함께한 부부라도 사이가 틀어질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럼에도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여전했다. 3차 공판이 열린 날에도 법정을 나오며 눈물을 흘리는 아내에게 “기운 빠지지 않도록 건강 잘 챙겨야 한다”며 다독였다.
“소송 때문에 죄인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 제 아내는 밝고 쾌활한 사람이에요. 따르는 친구도 많고요. 아내가 추진하던 부동산 개발 사업도 계속 진행하고 있어요. 아웃렛을 유치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하더군요. 그게 잘만 되면 집은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는 거잖아요. 조금 더 지켜봐주세요.”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헬스클럽에 나가 운동을 한다. 날이 좋으면 지금 머물고 있는 곳 근처에 있는 양재천변을 걷기도 한다. “건강해야 노래도 부르고, 그래야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바람 잘 날 없는 송대관의 삶에 든든한 뿌리가 되는 것은 바로 신앙이다. 그는 한때 찬송가 앨범을 냈을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작년 연말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측이 마련한 ‘축복 철야 찬양 간증집회’에서 마이크를 쥐고 강단 위에서 히트곡을 열창하기도 했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사기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된 작년 가을께에도 그는 여러 차례 청평에 위치한 기도원에서 찬양을 불렀다. 아내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바로 다음 날에도 기도원 강단에 서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아내에게 청구된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바로 그날에도 그가 있던 곳은 기도원의 강단 위였다.
“힘들고 비참한 일이 많아요.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음이죠. 아내가 욕심을 부려서 사업을 하다가 그게 잘 안 됐어요. 광고하겠다기에 제 사진 한 장 준 죄로 저까지 어려움에 처했고요. 부부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매스컴에서는 저를 무슨 사기꾼으로 몰더군요. 마음에 어떤 거리낌이 있다면 감히 교회 단상 위에 서질 못하겠죠. 저는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찬양하고 기도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송대관의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교회에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나가요. 한참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져요. 욕심이 없어지고 용기가 생깁니다. 제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바로 이겁니다. 작년에는 교회에서 하는 간증집회에 많이 나갔어요. 그런데 당분간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재판이 다 끝나고 깨끗한 상태에서 강단에 서고 싶습니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에게 섭외 요청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 이런 시기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희희낙락하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며 거절했다. 하지만 그 역시 방송에서 유쾌하게 이야기하던 그때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월세를 살며 고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쨍 하고 해 뜰 날’이 머지않아 올 거라는 것이다.
“아직 소송 중이라 당당하게 대중 앞에 나설 수는 없지만, 내년엔 모든 것이 정리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때쯤이면 무대 위에서 신나게 노래도 부를 수 있을 거예요. 제일 먼저 ‘쨍, 하고 해 뜰 날’을 크게 부를 겁니다. 그때까지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1 송대관의 부인 이모씨가 3차 공판이 끝난 후 법원 문을 나서고 있다.
2 지난 5월 매각한 이태원 집. 송대관은 이 집을 신축할 당시 상당히 공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