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집밥’은 사전적인 의미가 강했다. 이지데이(www.ezday.co.kr)를 통해 집밥 인식 조사에 참여한 493명의 사람들은 ‘집밥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35.3%가 ‘집에서 먹는 밥’이라 답했다. 다음으로 ‘가족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밥’이 28.2%로 많았고, ‘부모 또는 배우자가 차려준 밥’(21.3%)이 그 뒤를 이었다.
‘집밥’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41.8%가 ‘따뜻하다’고 답했고, 건강하다(27.8%)와 맛있다(26%)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 집밥에 대해 이성적인 코드와 감성적인 코드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집밥을 원한다는 사람은 91.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집밥을 챙겨 먹는 이유에 대해 ‘정을 느낄 수 있어서’(41.6%) ‘정서적으로 좋다고 생각해서’(20.1%) ‘맛있어서’(17.8%)라고 답했으며, 챙겨 먹지 못한 이유는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 같이 모이기 힘들어서’(43%) ‘귀찮아서’(21.7%)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까워서’(14%)라고 답했다.
평론가 김헌식은 SBS 스페셜 <먹방의 시대>를 통해 사람들이 ‘먹방’에 열광하는 이유는 “가족 해체와 공동체적인 가치에 대한 갈구”라고 진단하고 “혼자 밥 먹기 싫은 사람들이 먹방에 집착하고 소셜 다이닝을 통해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인 가구 비율이 계속 증가하면서 정에 굶주린 사람들이 집밥의 감성을 그리워하게 되었다는 것.
26년째 어려운 이웃에게 급식 봉사를 하고 있는 다일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는 “예나 지금이나 ‘밥’은 중요한 소통 수단”이라며 “밥을 나눈다는 것은 음식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만 아니라 미래의 꿈과 비전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셜 다이닝 플랫폼 ‘집밥(www.zipbob.net)’의 박인 대표는 이러한 집밥에 대한 유행은 형태만 변할 뿐 지속 가능한 흐름이라고 평했다. “생각해보면 이처럼 사람의 온정을 느낄 수 있는 모임은 형태만 달랐을 뿐 늘 존재했습니다. 오프라인 동호회부터 시작해 온라인 커뮤니티, 트위터 번개당 등을 대표적으로 SNS가 발달하면서 가속이 붙은 거죠.” 다시 말해 사람들이 ‘먹방’과 ‘집밥’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맛’이 아닌 ‘정’이고 ‘온기’다.
‘집밥’이 요즘 대중 매체 최고 이슈
1 ‘집밥’도 먹고 돈도 벌고
먹방(먹는 방송)의 원조라 불리는 아프리카TV(개인 방송 플랫폼)의 ‘먹방 BJ’는 음식 먹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며 이를 통해 돈을 번다. 현재 ‘먹방’ 수는 3천 개에 달한다. 인기 BJ로 활동 중인 박서연씨는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과 미국 뉴스 전문 채널 CNN에 소개되기도 했다. ‘먹방’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기도 한다.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추성훈의 딸 사랑이와 MBC <일밤-진짜 사나이>의 샘 헤밍턴, <일밤-아빠! 어디가?>의 윤후의 공통점은 음식 먹는 장면을 통해 큰 인기를 얻고 식품 광고까지 따냈다는 것.
2 ‘집밥’ 주제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등장
JTBC의 <집밥의 여왕>은 4명의 출연자에게 요리 재료와 방법 등 공통의 미션을 부여하고 집밥 만드는 솜씨를 경쟁한다. 맛에 대한 신랄한 평가와 서로에 대한 뒷담화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매회 출연자들의 음식 솜씨와 살림도구 등이 또 다른 이슈를 낳고 있다.
3 ‘집밥’ 레서피 요리책과 ‘집밥’ 감성 에세이 연이어 출간
깔끔하고 소박한 집밥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레서피북과 집밥의 따뜻한 감성을 담고 있는 에세이북이 인기다. <한복려의 엄마의 집밥> <엄마가 차려준 밥상: 집밥이 그리울 때> <믿을 건 집밥 뿐이다> <만원으로 차리는 일주일 집밥> 등 집밥을 테마로한 요리책이 1년 새에 10권이 넘게 출간되었다. 또 일본 살림의 여왕 유키마사 리카의 요리 에세이 <저녁 7시 나의 집밥>과 세계 각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부엌을 직접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함께 먹는 경험을 담은 <킨포크 테이블> 역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집밥의 정의는?
‘집밥’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집밥을 챙겨 먹는 이유는?
'집밥'의 추억
‘엄마’ ‘온기’ ‘손맛’…. 집밥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단어들이다. 사람들이 집밥을 잊지 못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세트 메뉴처럼 음식에 딸려오는 그리운 이에 대한 특별한 기억 때문이다. 집밥에 대한 향수를 끄집어냈다.
“극심한 입덧을 멈추게 한 것은 엄마의 집밥이었다”
김혜영(방송인)
엄마 고향이 경상도라 멸치젓이나 죽순 등 지역색이 강한 음식을 많이 먹고 자랐다. 첫째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해 비린 것은 입 근처에도 못 댄 적이 있다. 그때 엄마가 만들어준 멸치양념장을 먹고 거짓말처럼 입덧이 줄었는데 만드는 법은 멸치젓에 들어 있는 삭힌 멸치를 잘게 다져 고춧가루, 깨, 마늘, 송송 썬 파를 넣고 같이 버무린다. 엄지손가락만 한 어린 상추와 쑥갓에 양념장과 밥을 올려 쌈을 싸주셨는데, 지금도 그 음식이 가장 그립다.
“매일 아침 부엌에 쌓여 있던 노란 도시락이 집밥이다”
이보은(요리연구가)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정말 부지런하셨다. 매일 새벽 4시에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4시 반부터 5남매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는데, 고등학생 땐 점심·저녁으로 2개씩도 들고 다녔으니까 하루에 6~8개의 도시락을 싸셨다. 그럼에도 아침마다 새 반찬을 만들고, 반찬 종류도 4가지 이상이었다. 건어물볶음, 콩자반, 장조림, 장아찌, 소시지부침…. 등교하자마자 짝꿍이 내 도시락 뚜껑을 먼저 열어볼 정도로 엄마의 도시락은 인기가 좋았다. 지금도 당시 친구를 만나면 내 도시락이 유별났다고 기억할 정도니 당시 엄마의 정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릇까지 온도를 맞추는 것이 집밥이다”
송도순(방송인)
부엌에서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들리면서 비린내가 진동하면 십중팔구 엄마가 석쇠에 굴비를 굽고 있는 것이다. 살을 발라 우리 밥숟가락에 올려주고 엄마는 대가리가 맛있다며 그것을 모아 끓여 드셨다. 그땐 정말 맛있어서 드시는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엄마가 되니까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따뜻한 음식을 담을 때는 그릇부터 데우고, 찬 음식 역시 그릇까지 차게 해서 음식과 그릇의 온도를 맞췄다. 이 역시 당시엔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엄마 나이가 됐을 때 그렇게 하기 위해 얼마나 큰 정성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집밥은 고소한 참기름 냄새다”
정미경(<우먼센스> 라이프스타일 팀장)
후각이 예민해서인지 ‘집밥’ 하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부터 떠오른다. 별다른 양념 없이 소금으로 살살 무친 콩나물무침에서, 손수 밀가루 반죽을 밀어 끓여주신 칼국수에서, 마가린 넣고 비빈 달걀간장비빔밥에서, 거의 매일 밥상에 올라오던 김구이에서 늘 참기름 냄새가 났다. 엄마가 밥상을 차리면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해주실까 냄새로 점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엄마가 많은 양의 김을 한꺼번에 잴 때 온 부엌에 가득했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좋았다. 김 한 장 깔고 김솔로 참기름을 듬뿍 묻혀 슥슥 문지르고 그 위에 맛소금을 솔솔 뿌리셨다. 그걸 켜켜이 쌓아두고 뒤집어 반복하고 석쇠에 끼워 한 장씩 앞뒤로 구워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금방 한 밥에 갓 구운 김을 얹어 먹으면 그 노란 참기름이 밥에 삭 스미는 느낌이 났던 것 같다.